[남북이산가족 상봉] 이산의 아픔 그대로 남아있다

정부, 남북교류 지속·南南통합 짐 무거워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난 사람은 헤어지게 마련이고 떠난 사람은 돌아오게 마련이다. 8월15~18일 한반도에 뿌려진 눈물을 ‘달관의 미학’으로 표현하자면 이보다 적합한 말이 또 있을까.

반세기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림의 과정이 결코 ‘달관’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긴 기다림 끝의 짧은 만남은 또다른 고통을 낳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이 뿌린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기 보다는 ‘회한’의 눈물이었듯, 회한이 기쁨으로 승화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산의 아픔을 치료하기에 이번 만남은 너무 짧았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계속돼야 한다. 만남은 정례화를 넘어 보다 자유로워져야 하고, 이벤트 성격을 벗어나 밀도가 더 진해져야 한다. 이산가족이 고향을 방문하고 성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1,000만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이 모두 만남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이번 만남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남북한 양측의 인도적 해결 의지를 보여준 만큼 미래에 대한 이산가족의 기대는 더욱 크다. 상봉에 정치색을 강하게 담았던 북한의 태도 변화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방북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8·15에 이어)올해는 9월, 10월에 매달 한번씩 하고, 내년에 종합검토해서 사업을 해나갑시다”라고 말했다.

남북 당국은 우선 남한의 비전향장기수 62명이 송환되는 9월2일 적십자 회담을 갖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정례화를 위한 면회소 설치와 운영방안을 확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비전향장기수 북송은 남한측의 인도적 의지를 북한측에 확인시켜 이산가족 문제를 보다 원활하게 할 전망이다.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은 단순한 대면접촉을 넘어서는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짧은 만남으로 더욱 후유증을 앓게 될 가족들을 위한 조치가 고려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서신교환과 송금 등을 위한 상시적, 제도적 채널이 필수적이다.

이번 상봉은 남북문제에 대한 세대간의 차이를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젊은 세대의 무관심이 그것이다. 평소 시시콜콜 의견을 개진하던 네티즌들도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했다.

“짜증나는 이산가족 방송 대신 보고싶은 만화 프로그램이나 틀어달라”는 것에서 “3박4일의 체류비용만 얼마냐, 전부 세금인데 이벤트성 행사로 국민부담만 가중시킨다”는 항의성 내용까지 있었다.

이같은 신세대의 반응은 장차 통일과정에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통일 부담금’에 대한 기피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은 오히려 현재의 평온함을 깨는 교란요소로 인식된다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정부는 두 개의 짐을 동시에 지고 있다. 남북교섭과 함께 남한내 역량을 집결시키는 정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세대의 북한관은 아울러 정치권에도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정권 차원에서 이용하려는 징후가 보일 경우 자칫 통일 자체가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이번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1,000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랠 수는 없었다. 상봉대상에서 누락된 김상일(71)씨가 고향과 가족상황을 적은 표지판을 목에 걸고 생사여부만이라도 알려달라며 북한 보도진에 호소하고 있다.<조영호 사진부기자>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24 14:44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