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23)] 프로테옴 시대

인간 게놈프로젝트의 열풍이 한바탕 지나가고 얼마간 잠잠한 듯 싶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잠잠함 뒤에 더욱 부산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위 ‘후 게놈시대’를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게놈프로젝트(유전자 지도)를 바탕으로 한 프로테옴(Proteome, 단백질 지도)의 시대가 움트고 있다. 프로테옴은 게놈연구의 연장선이자 인간 전체를 분자 수준에서 조명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접근전략이다.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건물의 골격을 잡았다면, 이제 벽돌을 쌓고 모양을 꾸미고 내용을 채워야 하는 실질적인 작업이 남아 있는 것이다. 후 게놈시대의 수레를 이끌어 갈 두 개의 바퀴가 바로 게놈과 프로테옴이라는 말이다.

유전자란 하나의 단백질을 만드는 암호를 가진 일정한 길이의 DNA를 말한다. 인간게놈은 30억 개의 염기서열로 되어 있고, 그 중 3%만 유전자의 역할을 한다. 인간 유전자는 약 10만여 개로 추정하지만, 현재까지 기능이 제대로 알려진 인간 단백질은 9,000여 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머지 9만개의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의 기능을 파악해야 하는 막대한 과제가 남아 있다. 특히 5,000여 가지 유전병 가운데 겨우 15%만 그 유전자가 밝혀졌을 뿐이기 때문에 게놈정보를 이용하여 관련된 단백질을 탐색해내는 일은 필수적이다.

또한 질병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런 단백질의 활동과 기능을 조사해야 한다. 세포의 기능은 단백질의 복잡한 연쇄작용으로 이뤄지는데 그 종류와 기능을 이해해야만 암과 당뇨병 등을 치료할 더 좋은 신약을 빠른 시간 안에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1980년 미국의 과학자들은 인간단백질 인덱스라는 사업을 제안했지만, DNA가 작업하기에 쉽다는 이유 때문에 의회의 결정이 게놈프로젝트로 기울게 되었다. DNA분자는 4개의 염기로 구성되어 간단하지만, 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백질의 구조는 변이가 심하다는 이유였다.

현재 미국국립암연구소와 식품의약청은 결장암, 유방암 등 암과 관련된 단백질을 연구하기 위해 프로테옴 사업에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한편 바이에르, 머크 등 제약회사도 연합전선을 형성해서 프로테옴 연구에 돌입하고 있다. 특히 ‘인사이트’사는 몸의 각 부분의 단백질 지도를 작성하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들은 분자수준에서 인간해부도를 작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영국의 ‘글리코사이언스’사, 미국 ‘라지스케일 바이올로지’사 그리고 ‘프로테옴 시스템즈’사는 혈청이나 소변에 함유된 단백질을 분리하는 정교한 기술을 개발했다. 셀레라사는 단백질분리장치는 물론 단백질분석용의 고속질량분석기를 포함하여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고, 슈퍼컴퓨터의 용량도 10배나 확장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부단백질의 량이 지극히 적어서 분석하는데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DNA칩의 개발은 ‘셀레라’사를 오두막 사업에서 대규모 자동화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이었다. 프로테옴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도 더욱 강력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셀레라의 사장 크레이그 벤터는 단백질 칩이 인간 프로테옴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고 믿고 있다. 벤터는 단백질 칩을 이용하여 주어진 세포 내에서 단백질간에 발생하는 복잡한 상호반응망을 밝혀낼 계획이다. 미국 워싱턴대의 애버솔드 박사는 극소량의 단백질을 자동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칩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신약연구의 주요한 난제는 의약품의 예측할 수 없는 독성 때문에 임상개발의 최종단계에서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이다. 프로테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막대한 예산의 투자이전에 신약과 기존 의약의 잠재적인 부작용과 독성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 머지 않아 도래할 게놈과 프로테옴의 연합혁명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08/3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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