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미국 대선] 고어, 클린턴 딛고 대약진

미국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저력이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인가. 혹은 전당대회 특수효과(convention bounce)로 인한 반짝 인기인가.

2000년 미대선에 나설 주자들을 선출하기 위한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가 막을 내린 가운데 고어후보가 지지율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후보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 후 단 한번의 예외없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에게 밀리던 고어후보가 전세를 뒤집은 것이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8월3일 부시가 무려 16%포인트(CNN·USA투데이·갤럽공동조사)나 고어를 리드하자 워싱턴 일각에서는 올 대선은 이미 승부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성급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어가 유태인 조지프 리버만 상원의원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런닝메이트로 내세워 분위기 반전을 시도한 데 이어 전당대회가 끝난 이후 역전무드를 일궈냄으로써 이제 2000 미 대선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혼전양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전당대회 이후 지지율 급상승

고어의 상승세는 전당대회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민주당 전당대회 후인 8월18일~19일 CNN·USA투데이·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고어부통령은 비록 오차한계(플러스 마이너스 4%)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1%포인트 차이인 47%대 46%로 역전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어는 8월18일 공개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여론조사에서도 48%대 42%로 부시 지사를 리드했고 로이터 통신이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조그비와 공동으로 18~20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들 기관이 여론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44%대 41%로 추월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아니라 CBS방송이 20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고어후보는 45%대 44%로 부시후보를 앞섰고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지가 20일 공동실시한 조사에서도 고어가 48%대 44%로 우세를 보였다.

이같은 고어후보의 대약진에 대해 미국 정치분석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고어후보 부상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이른바 고어가 이른바 전당대회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선거의 경우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나흘동안 전당대회가 치러진 직후에는 항상 지지율이 상승하는게 상례. 예를들면 1996년 선거의 경우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자 당시 빌 클린턴 후보의 지지율이 9%포인트나 상승했고 공화당의 밥 돌후보도 5%포인트가 올랐었다.

또한 올해에도 전당대회를 먼저 치른 부시후보도 전당대회후 지지율이 11%포인트나 치솟았었다. 갤럽조사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 고어후보는 전당대회후 무려 17%포인트나 지지율이 수직상승해 전당대회 효과에 관한한 신기록을 세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하위계층 타깃 공약 주효

고어후보의 이같은 괄목할 만한 전당대회효과는 ‘탈(脫)클린턴’을 기조로 치밀하게 계산된 전당대회 프로그램의 완벽한 성공과 고어후보의 수락연설 내용이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어진영에서는 전당대회를 통해 ‘만년 부통령’‘클린턴의 후계자’등으로 각인된 고어후보의 이미지를 일거에 쇄신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갖춘 고어’로 홀로서기하기위해 개막일에만 클린턴 부부에게 연설기회를 준 후 다음날 바로 클린턴대통령을 전당대회 개최지인 LA를 떠나게 해버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는 클린턴을 뒤켠에 물러앉게 하고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고어후보에게 맞추려한 이 작전은 멋지게 성공했다는 게 선거전문가들의 평가다. 고어는 한걸음더 나아가 연단에서 부인 티퍼여사에게 진한 키스를 2차례나 퍼붓는 연기력도 과시했다.

이는 바람둥이 클린턴 대통령에 비해 고어의 경우 ‘내사랑 티퍼’밖에 없다는 ‘고의적인 시위’나 다름없었다.

고어는 또한 수락연설에서 유권자들에게 관심이 높은 교육, 저소득층을 위한 감세정책, 의료및 사회보장체제 개혁 등을 자세히 설파하고 특히 ‘근로계층’의 이익을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고어의 이날 연설은 워낙 공세적이어서 부시후보측으로부터 ‘계급전쟁(class warfare)’을 부추긴다는 비난까지 들을 정도였는데 이 작전 또한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정밀여론 분석결과 그간 지나치게 중산층 지향적인 정책을 펴온 클린턴 행정부에 식상한 민주당 일부그룹과 부동층 상당수가 고어지지로 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높은 여성과 노인층등도 교육개혁, 학원폭력 추방, 연금체제개혁 등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고어후보의 청사진에 높은 지지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갤럽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어후보는 전당대회전 무소속 유권자들로부터 33% 지지율을 얻어 52%인 부시에게 크게 밀렸으나 대회후에는 부시와 같은 43%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고어후보는 전당대회전 여성유권자들로부터 42%대 51%로 뒤졌었으나 대회후에는 오히려 58%대 36%로 역전했다. 연가계소득 2만~-5만달러인 중하위소득층으로부터도 고어후보는 40%대 53%로 뒤지다 49%대 41%로 추월했다.

이에대해 고어측은 “지지도 상승은 후보지명 수락연설에서 중하위소득계층을 주 타킷으로한 공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로 한 모험이 주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제 유권자들이 이미지가 아닌 쟁점을 중심으로 한 선거전을 바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TV토론이 대세 좌우할 것"

그러나 이같은 고어후보의 눈부신 도약이 선거에서의 승리로 이어질 것인지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전당대회효과의 상당부분은 대개 ‘거품인기’이게 마련이어서 통상 1~2주일이 지나면 4~5%포인트정도 지지율이 하락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스위크가 전당대회 1주일후인 8월25일 실시한 조사에서 고어는 46%대 42%로 4%포인트 리드했으나 전당대회 직후의 6%포인트 우세에 비하면 격차가 2%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거품이 빠진 것이다. 뿐만아니라 내셔널저널지 등이 전국 50개주를 상대로 선거인단 확보가능 상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전히 부시후보가 250표대 175표로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어후보의 분발에 대해 부시후보의 캐런 휴스 대변인은 “고어의 인기는 곧 사그러들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번 선거에서는 11월까지 치열한 싸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CNN의 정치해설가인 윌리엄 슈나이더는 “여름휴가시즌이 끝나고 국민이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노동절(9월4일)이후의 여론조사가 가장 정확한 지지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3차례 정도 실시될 TV토론이 결정적으로 대세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승용 워싱턴특파원

입력시간 2000/08/3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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