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미국인이 보는 모스크바와 서울 언론

스탈린식 공산독재 체제나 권위주의적 군사전제 체제에 살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역사적 사변’을 맞으면 현재의 민주체제가 옛날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느낀다.

핵 잠수함 쿠르스크호를 북극해에 가라앉힌 러시아,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되고 200명의 이산가족이 50여년만에 상봉한 서울. 이 두 곳을 보는 미국인들의 눈은 불안하다.

제닌 바바키안은 러시아의 영문판 신문 ‘모스코 타임스’의 특집부장이다. 그는 “기록을 위해 나는 미국인임을 밝힌다. ‘당신은 조국을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난 어느 미국인들에게도 들은 적이 없다. 난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지 않고 내 조국을 비판할 수 있다”며 쿠르스크호 침몰사건을 둘러싼 모스크바 언론의 자세를 꼬집었다.

바바키안 부장의 가슴이 철렁한 것은 8월24일 오스탄키노 방송탑 화재가 나기 전 ‘TV6’의 심야 대담 프로를 볼 때였다. ‘RTR’TV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의 회견을 보고 난뒤였다. 이 심야 프로에 잠수함에 근무하는 두명의 아들을 가진 한 여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내 아들들에게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감사하느냐고요. 내 아들들이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것에”라고 말했다. “쿠르스크호에서 근무하지 않았던 것을 감사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이 여인의 정부 옹호 발언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 신사가 ‘왜 정부는 국제적인 구조 도움을 거절 했는가’ ‘러시아 해군의 구조체제는 왜 엉망인가’ ‘정부가 인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왜 인민은 그런 정부를 필요로 하는가”라고 묻자 이 여인이 대화에 참견했다. “당신은 애국심이 없군요. 우리는 조국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항상 그들의 조국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바바키안 부장은 이를 지켜보며 아직도 모스크바 언론은 그 보도의 행간을 읽어야 함을 느꼈다. 또한 쿠르스크호 사건 현장에 파견된 RTR의 특파원 마논토프가 푸틴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에서 모스크바 언론이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브루즈네프 시대로 돌아간게 아닌가 느꼈다고 쓰고 있다.

유신체제와 5.6공화국을 겪은 서울의 언론은 요즈음 미국인에게는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아시아 재단의 한국담당 스콧 스나이더 박사(‘벼랑 끝에서의 협상-북한의 협상 행태’의 저자)는 LA타임스에서 이렇게 밝혔다. “남한 언론의 자체 검열(Self-Censorship)이 미국보다 훨씬 심하다. 옛 관행은 사라지기 힘들다. 10여년전 정부는 어떤 사진을 쓸 것인지를 언론에 지시했다…모두 누가 지시자인지 알고 있고 정부권력이 어떤 경우에 유용하게 쓰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LA 타임스는 “북한과의 관계가 깨질까봐 걱정하는 한국”이란 꽤 긴 기사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침략 시뮬레이션을 취소하는 등 군사훈련을 축소했다. 또한 63명의 스파이들을 북한에 돌려 보내면서 납북자를 송환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어부들인 450명의 납북자 문제는 남한 언론보다 해외언론으로 부터 관심을 훨씬 많이 받았다”고 썼다.

해외 언론의 관심 덕인지 워싱턴 포스트는 8월27일자 사설 ‘감시받은 이산상봉’(chargoned Visits in Korea)에서 북한의 전제성을 비판했다.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북한 공산정권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시무시한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북측 인사 100명은…서울에 머무는 동안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었으며 고향은 커녕 심지어 가족의 묘지도 방문할 수 없었다.

북한으로 올라간 남한측 100명도 마찬가지 였다… 이런 전체주의적 행사 진행에 대해 남한 당국은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가 돼야 할 50년만의 가족상봉을 북한정권이 이토록 비인간적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8월30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언론자유의 신장을 ‘놀라울’정도의 발전으로 꼽았다. 북한과의 화해, 공존, 평화로 가는 길에 언론이 ‘자체 검열’이 강한 시대로 반동(反動)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09/0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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