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24)] 배아복제와 정치논리

최근 영국과 미국에서 인간배아 연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면서 그 찬반론이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윤리적 법적 규제조항을 마련했지만, 종교단체와 낙태반대운동가들은 충분하지 않다며 원천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클린턴 미 대통령은 생명을 구하고 생활을 향상시키는 등 줄기세포(체세포) 연구의 잠재적 이득을 역설했지만, 상원의원 샘 브라운백은 NIH의 규칙을 불법, 부도덕, 불필요하다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무고한 한 인간을 의도적으로 죽인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규제조항을 보면 과학자들은 수정 후 첫 2주 이내의 배아 세포인 동시에 시험관 수정을 통해 얻은 냉동 배아의 줄기세포만 사용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배아를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배아에 대한 대가의 지불을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배아에서 세포를 추출하는 것은 개인 회사에게 맡기고, 이들이 버린 배아만을 정부 프로젝트에 활용하도록 되어있다. 이는 민감한 이슈에는 가급적 국민 세금의 사용을 피하려는 우회전략이다.

과학적인 입장에서만 본다면 배아의 줄기세포는 궁극적으로 신체의 모든 조직과 기관을 만드는 기분단위다. 줄기세포 기술을 활용하면 당뇨병 환자는 배아 세포로부터 배양한,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을, 암환자는 건강한 골수를, 치매환자는 건강한 신경조직을 이식받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심장병, 파킨스씨병, 화상, 척추부상 등의 치료와 신약의 개발 등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배아의 활용에 대한 윤리적 사회적 부당함에 대한 주장도 거세다. 인디애나 주립대의 생명과학교수인 데이비드 프랜티스는 누가 세포를 얻든지 간에 세포를 얻기 위해서 인간배아를 죽여야 하기 때문에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배아의 줄기세포가 결코 조직 및 장기배양을 위한 유일한 길이 아니며, 어른의 장기에서 추출한 세포가 이식용 조직과 장기를 만드는 가장 안전하고 윤리적인 방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스턴의 아동병원 의사는 어른 피부세포로부터 방광을 만들어서 이식할 단계에 이르렀고, 메사츄세츠 대학의 의사들은 엄지손가락을 사고로 잘린 기계수리공을 위해서 연골세포를 이용하여 엄지손가락의 뼈를 만들었다.

최선의 길은 환자에게서 직접 세포를 추출하는 것이며, 그러면 이식한 장기에 대한 환자의 면역거부반응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줄기세포의 배양을 통해 새로운 배아를 만들어 낼 가능성과 배양된 줄기세포가 잠재적으로 무서운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런던대학의 스티브 존스 교수는 “복제는 단순히 성(sex)이 없는 생식일 뿐이다. 반세기 전 시체의 눈을 시각장애자에게 이식하는 것도 윤리적인 이유에서 허락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보편화되어 있다. 아마 50년 후면 줄기세포 연구도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펴기도 한다.

우리가 여기서 주시해야할 것은 양측의 주장이 이미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힘과 정치논리에 양심과 윤리가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배아의 줄기세포연구를 인준한 것은 영국과 미국뿐이 아니라 일본 역시 준비중에 있다. 이제 다른 나라도 뒤를 따를 것이다.

여기에서 수십 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부를 염두에 둔 선진국들의 정치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읽어야 한다. 늘 그러했듯이 선진국은 자신들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 향상되면 다시 엄격한 법안을 만들어 후발국은 제대로 기술개발조차 못하도록 할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거대 독점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장기와 의료시장의 독점을 향해 달려가는 선진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를 차원 높게 고심해야한다는 말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09/0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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