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황혼…갈곳이 없다] 돈 없으면 설움받는 노후, 적절한 대책 필요

우리 사회가 점차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로 변해가고 있다. 출산율의 저하로 부양인구는 주는데 반해 의학의 비약적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피부양 인구가 급증하는 가분수형 인구 분포로 바뀌어가고 있다.

의학적 진보와는 달리 고령 인구에 대한 우리 사회구조의 변화는 아직 구태의연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정년퇴직해 20년 이상을 실직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노년을 보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고령 노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비전 마련과 지원 대책은 겉돌고 있다.

노인 문제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새로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1995년 모 재벌사의 계열사 사장을 지낸 뒤 정년퇴임한 김모(62)씨는 요즘 밤낚시를 유일한 삶의 낙으로 삼은 채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은퇴 당시 만57세였던 김씨는 ‘자식도 모두 출가시키고 30여년간의 회사생활에 지쳐 이제는 쉬면서 남은 여생을 살아가겠다’고 작심하고 그간 못했던 여행 골프 헬스 같은 다양한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을 3년 가까이 하면서 김씨는 웬지 모르게 자신이 자꾸 위축되는 듯한 느낌이 받기 시작했다. 매일 운동복 차림으로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자신을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 같은 생각에 낮에는 잘 돌아다니지도 않게 됐다.

지난해 초에는 ‘시간을 때울 겸 단순한 일거리라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직업 소개소를 찾았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김씨는 이런 무기력한 생활이 10년~20년을 지속될 것을 생각하면 밤에도 잠이 안온다.

최근 들어선 모아두었던 돈이나마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여행이나 골프 같이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는 삼가한 채 밤낚시만으로 소일하고 있다. 김씨는 정년 퇴직후를 대비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


최소한의 경제력 마련에 고심

김씨와 같은 ‘젊은 노인’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령화 문제는 큰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노인을 예우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경로(敬老)사상이 뿌리 깊은데다 고령 인구도 그리 많지 않아 노인 문제는 정부 정책에서 항상 뒷전에 밀려있었다.

그러나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화·분업화가 가속화하고 직장 내에서 구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고령자들이 조기퇴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여기에 핵가족화가 완전 정착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에 시작했다. 또 의학의 발달로 평균 연령이 10년 주기로 4~5세씩 늘어난 것도 원인이 됐다.

이런 심각성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준비된 노후’를 맞아야 한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돼 가고 있다. 노후에 대한 준비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보장이 첫손으로 꼽힌다. 노인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노인의 전화’에는 가난하고 경제력이 없는 노인의 하소연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걸려온다.

자녀와의 갈등으로 더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된 노인이 의지할 시설을 찾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인자녀가 최소한의 경비로 부모님을 모실 곳을 묻거나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노부부간이나 부모와 자식간의 재산권 문제에 대한 상담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많은 중년 부부들은 노후에 대비한 각종 저축이나 연금 보험 등에 가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행복하고 당당하게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경제력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노후위해 재산상속 안하겠다"

노년생활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함께 대두되는 것이 건강 문제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고령자들은 한두개 이상의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노인의 단골 질병인 치과계통이나 신경계통의 질병에 대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많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노인은 국가에서 무료 진료를 해주고 있지만 우리에겐 아직 요원한 일이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됐을 경우에만 의료혜택이 주어지나 자식이 없고 월수입 32만원 이하 등 각종 제약이 있어 선정 자체가 매우 힘들다.

현재 치매 중풍 등 중증질환 노인을 보호하는 정부 지원 요양원은 전국에 24곳에 불과하며 수용인원도 1,400명에 밖에 되지 않는다. 또 한해 예산에서 노인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0.30%에 불과하다. 대만의 3%, 일본의 17%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노후를 위해 자녀에게 재산상속을 하지 않겠다는 부부가 늘고 있다. 슬하에 세 남매를 두고 있는 회사원 박모(42)씨는 “이제 노후에 자식에게 의지해 사는 시대는 지났다”며 “아들은 대학 때까지, 딸 아이는 시집 갈 때까지만 돌봐준 뒤 그 이후는 아내와 단둘이서 지낼 생각이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재산은 아이들에게 주지 않고 아내와 여생을 보내는데 쓸 생각이다”고 말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황환혼갈등

노년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노인의 성 문제도 수면 위로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터부시했던 노인의 재혼 문제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논의되고 있으며 실제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결혼정보회사인 선우는 매년 가정의 달인 5월에 할아버지 할머니 각 500명을 초청해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다.

올해 이 사업을 주관한 선우의 정혜진씨는 “벌써 몇쌍의 결혼 커플이 탄생했고, 자식의 반대로 결혼까지 못했지만 한달에 한두번씩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는 커플이 많다. 이제 노인의 이성 문제에 대해 사회의 인식은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노년생활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는 반면 역으로 황혼 이혼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히 우리처럼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를 가진 사회에는 주로 할머니들이 먼저 이혼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70대의 한 노인은 “아내가 잠자리는 물론이고 이제는 아예 나를 상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말을 안하더니 이제는 아들집을 전전하며 나를 피합니다. 둘째네에 있어 찾아가면 첫째네로 옮기고…. 혹시 헤어지자고 할까봐 화도 못내는데 정말 더이상 참기 힘듭니다”라고 털어놓았다.

한국 가정법률상담소의 곽배희 소장은 “과거의 영화에 집착하는 할아버지일수록 외부 또래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고 심리적 보상을 아내로부터 얻으려고 한다”며 “문제는 할머니들이 이런 요구를 더이상 받아주지 않는 때가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의 성, 적당한 해소 필요

노인의 성은 감춰져 있을 뿐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적당하게 활용해야 활기찬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성의학자인 설현욱 박사는 “성기능은 50대가 되면 혈기왕성한 20대의 절반 정도로 떨어지지만 80대 노인도 젊은이의 80% 정도의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에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성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전화의 강경만(70) 사무국장은 “이 시대의 노인은 젊은 시절의 모든 노동의 대가를 후세에게 넘겨주고 정작 자신은 소외와 고독 속에서 살고 있다”며 “노인에게도 재교육을 통해 재취업을 길을 열어주던가 아니면 자원봉사 같은 일거리를 제공해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노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오늘날 노인 문제는 장차 고령화 사회를 살아야 할 바로 이 시대 젊은이의 미래 자화상이다. 이제 노년은 더이상 ‘보호받고 피부양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준비하고 만든 결실을 수확하는 시기’라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9/06 17:0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