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빈곤이 강요된 우리 노인들

"사회참여의 길 마련해야"

통계청에 의하면 7월 1일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337만명으로 전체 인구 4,727만명의 7.0%를 차지함으로써 ‘노령화 사회’(aging society)가 도래했다고 한다. 2022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드디어 ‘노령사회’(aged society)가 올 것이라고 한다.

인구 노령화는 출산율이 낮아져 어린 인구가 줄어듦과 동시에 기대수명이 갈수록 높아져 노인인구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대수명이 높아지는 것은 장수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늘어난 노년기를 정말로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하루로 채울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더욱이 출산율 하락의 장기적 결과로 젊은 노동연령층 인구가 줄어들면 가족 차원에서나, 사회 차원에서나 노인들을 누가 보살필 수 있을지 그 해답이 분명치 않다.


도시화 과정에서 극도의 소외감

노인문제는 노령화 시대에 접어 들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급속했던 산업화, 도시화 등 지난 반세기의 엄청난 사회·경제적 변화는 특히 노인들에게 적응하기 힘든 것이었다.

인구 대부분이 살았던 농촌으로부터 산업화에 따른 갖가지 기회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행렬은 주로 청·장년들로 채워졌으며 뒤에 남은 노인들은 쓸쓸하게 스스로를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도시로 왔거나 도시에 살고 있던 노인들도 자신들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도시 환경과 문화 속에서 극도의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농촌이나 도시에서 노인들은 가장 빈곤한 사회집단의 하나로 남아 있다.

물론 일부 노인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엄청난 치부의 기회를 갖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다른 노인들은 오히려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같은 세대 내에서, 그것도 대부분 평등하게 출발해 이처럼 빨리 빈부격차가 벌어진 것은 인류역사상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런데 원시적인 사회보장제도 조차도 일부 안정된 직종에 속한 노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동안 연금 수급이란 일부 상대적으로 유복한 노인들에게나 돌아가는 혜택이었다. 물론 명목상 이런저런 노인복지제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한가지도 인상적인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생활보조금 명목의 수당은 한달치가 도심 식당의 한두끼 식사값에 불과한 실정이다. 텔레비젼의 전화성금 모으기 프로그램 같은 데 자주 소개되는 불우노인들의 처지를 보면 이들에게 국가는 그저 무관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빈곤한 사회집단으로 남겨진 노인들

우리 사회의 빈곤한 노인들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열등했거나 게을러서 빈곤해진 것이 아니다.

이들은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배려를 받기는 커녕 정당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허리가 휘도록 농촌과 도시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끼니를 때우기 조차 어려울 때에도 자녀를 교육시키고 성공시키기 위해 온갖 뒷바라지를 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세대의 오늘날은 이같은 노부모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노인들은 스스로의 경제활동을 통해서, 그리고 자녀들을 통해서 한국사회 전체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며 따라서 국가와 사회는 이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노인문제는 한국이 노령화 시대에 진입했기 때문에 앞으로 신경써야 하는 문제가 아니고 그동안 국가와 사회가 근본적으로 책임을 유기해왔던 문제이다.

노인인구가 청·장년 인구만큼이나 많아질 앞으로의 노인문제 대처는 그 기본원칙이 노인들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이어야 하지만 당장에는 농촌과 도시 빈곤지대에 유폐된 불우한 노인들에게 하루빨리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장경섭 서울대 교수(가족사회학 전공)

입력시간 2000/09/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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