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한가위를 맞으며…

‘더도 덜도 말고 꼭 한가위 만큼만 하여라’라는 옛말이 올 추석엔 웬지 그리 마음에 와 닿을 것 같지 않다.

2개월 가까이 계속되는 의료계 파행, 상승 에너지를 완전 소실한 폭락 주식 장세, 휘발유값 인상 등 심상치 않은 물가에다, ‘박지원게이트’로 인한 여야 갈등과 덜렁 개회식만 한 채 장기 표류하는 식물 국회, 여기에 때 아닌 태풍 프라피론 피해까지….

한가위는 풍성한 수확의 결실이 있기에 항상 여유롭고 흥겨웠다. 그러나 올 추석을 맞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도심공원에는 갈 곳없이 방황하는 소외된 노인들의 처진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젊은이들이 떠나 버린 시골 농가에선 태풍에 떨어진 과실을 추스리지 못하는 애끓는 농부들의 한숨 소리가 그 어느 때 보다 깊다.

추석이면 도시로 몰려 갔던 가족들이 시골 사랑방에 모여 못다 나눈 정을 나누느라 밤이 새는 줄도 몰랐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도로를 메운 차량중 상당수가 추석 연휴 나들이 차량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맘 때면 해외 여행을 떠나는 인파로 국제선 공항은 더욱 붐빈다.

이제 들뜬 마음을 가다듬고 주위의 그늘을 돌아 보자. 모진 질병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양로원의 노인들, 꿈을 잃고 정마저 말라 버린 고아원의 아이들, 그리고 신체 장애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장애인들…. 그들에게 한번쯤은 눈을 돌려보자. 그리고 작은 기쁨에도 미소짓던,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 곳에야 말로 진짜 풍요로운 한가위가 있을 것이니.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0/09/06 18:24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