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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움직이는 거야"

동교동의 세대교체, '양甲' 미묘한 경쟁 가속화 예상

‘기회와 도전.’ 8·30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대의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1위에 당선된 한화갑 최고위원을 설명하는데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한 위원은 8,710명의 대의원이 투표에 참여한 경선에서 57.3%인 4,993표를 획득, 3,862표(44.3%)를 얻어 2위에 그친 이인제 최고위원을 1,131표(13.0% 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이로써 한 위원이 얻은 기회는 그야말로 그의 정치인생의 만개를 예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타가 공인하는 여권의 핵심 실세인 이른바 ‘동교동계’중에서도 그 중심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는 여권내 권력구도의 변화에 있어서나, 한 위원의 개인적인 정치사에 있어서나 일대 사건에 해당한다.

동교동계의 중심을 말하기 위해선 그동안 동교동계의 좌장 역할을 해왔고 이번 전당대회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된 권노갑 최고위원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적어도 최고위원 경선 직전까지만 해도 동교동의 중심은 여전히 권 위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선 결과는 이러한 등식이 더이상 불변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러한 변화의 기류를 사전에 감지, 최고위원 경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던 권 위원이 막후에서 한 위원의 1위를 막기 위해 들인 공은 “정도를 지나쳤다”는 것이 한 위원측의 주장이다.


달라진 위상, 세력판도에 중대한 변화

한 위원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 일부에서는 한 위원이 동교동계의 ‘신주류’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한 위원 스스로가 지난 1967년 6·8 총선때 당시 김대중 후보의 선거운동원을 자청한 이래 DJ와 33년여동안 불가분의 인연을 맺어온 ‘동교동 원조’이기 때문에 반드시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그럼에도 ‘신주류’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는 한 위원이 역경에 찬 야당시절은 물론, 바로 최근까지도 동교동계의 ‘비주류’로 통했기 때문이다.

명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동교동계의 ‘주류’였던 권 위원과 김옥두 사무총장, 최재승 의원 등 이른바 ‘권-옥-승 라인’에 의해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설명이다. 물론 권 위원측에서는 “한 위원을 똑같은 아우로서 통솔했을 뿐 따돌린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여권내 세력 판도에서 한 위원의 1위가 특별한 주목을 받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 위원의 급속부상을 용인했다는 점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김 대통령은 경선 이틀전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전당대회 관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번 전당대회는 당권·대권과는 관계없다. 사심없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한 위원에게 ‘김심’(金心)을 실어주는 듯한 인상마저 들게 했다.

한 위원과 1위 다툼을 벌이던 이인제 최고위원은 ‘충청도 대통령론’ 등 자신의 차기 대권주자 가능성을 주요 득표전략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에서 김 대통령의 발언은 이 위원에 대한 경고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김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또다른 주요한 지표가 김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의 움직임이다. 경선 막바지에 한 위원 진영에선 “민주당 청년조직인 연청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김홍일 의원이 대통령을 만난 뒤 한 위원의 지원에 나섰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이는 대략 사실로 확인됐다.

한 위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김홍일 의원이 움직였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동교동계 내부의 세력균형에 중대한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권-옥-승 라인’의 막내격인 최재승 의원이 막판에 한 위원을 도운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가능성·약점 동시에 안게 돼

분명 한 위원에게는 그 누구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가능성인지에 대해선 전망이 그리 뚜렷하지 않다.

한 위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 위원이 경선과정에서 누렸던 강점은 정치적 장래에 있어서 그대로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종 목표지가 대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 위원이 1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세 가지만 들라면 호남이라는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 당내 실세인 동교동계의 사실상 대표주자인 점, 김 대통령이 묵시적으로 용인한 점등을 꼽을 수 있다.

2002년 대선전까지 정치환경이 어떻게 변할 지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으나 현재로선 호남출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분석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또 한 위원이 김 대통령의 가신으로 분류되는 동교동계라는 외피를 쓰고 있는 한 한 위원은 김대통령의 비서 또는 참모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는 한 위원이 권 위원과의 경쟁과 대결을 통해 동교동계의 내부를 평정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점에선 한 위원은 이미 문희상 설훈 배기선 배기운 의원 등 동교동계 신진 소장파의 지지 속에서 대세몰이에 나서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김 대통령이 한 위원의 앞길을 틔워준 측면이 있다면 역으로 앞으로 김 대통령의 차기구상에 따라선 한 위원의 위상과 역할을 제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봐야 한다.

김 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졌던 당쇄신론에도 불구, 전당대회가 끝난 뒤 당3역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당직자를 유임시켜 당내 상호견제 및 세력균형을 꾀함으로써 이같은 용인술의 일단을 드러냈다. 한 위원이 1위를 한 여세를 몰아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기 보다는 1위를 하자마자 김 대통령은 한 위원을 견제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당권이냐 대권이냐” 기로에

한 위원이 당권을 생각하고 있다면 결과는 어떨까. 대권보다는 그 가능성이 한층 높다고 볼 수 있다.

호남지역에서 ‘포스트 DJ’의 역할을 하면서 확고한 당내 기반을 바탕으로 민주당 차기 주자와의 사이에서 당권·대권을 분리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한 위원이 김 대통령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호남지역의 ‘차기 관리자’로 가는 길에는 상당히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위원 진영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벌써부터 한 위원의 정치적 가능성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전국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의 여부가 관건이지 한의원이 ‘킹’이 되느냐, 또는 ‘킹 메이커’가 되느냐는 다분히 결과론적인 얘기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위원은 민주당 경선 1위라는 기회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정치환경에서 ‘엄청난 도전’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고태성 정치부 기자 tsgo@hk.co.kr

입력시간 2000/09/0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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