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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 정동영, 새로운 도전

세대 벽 허문 '신선한 돌풍'

8·30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된 정동영 의원은 1953년생으로서 올해 만 47세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971년 46세의 나이로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에 선출됐을 때보다 오히려 한 살이 많다.

경선과정에서 정 최고위원이 나이를 밝혔을 때 상당수 대의원들은 예상외로 나이를 많이 먹은 사실에 놀랐다.

이미 재선의 반열에 오른 그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정치신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탓이다. 386세대가 무더기로 진출한 16대 국회에서 정 위원은 사실 그다지 젊은 편은 아니다. 정치입문이 빠르긴 했지만 대학시절 그와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이해찬 정책위의장은 이미 4선의 중진이다.


단기필마로 출마, 최대의 성공

아무튼 그는 8·30 전당대회에서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득표성적은 5등이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 최대의 성공을 거둔 후보로 그를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조직도 자금도 없이 단기필마로 출마, “치기어린 도전”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그가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차기 대권후보군의 하나로까지 떠오른 괄목상대할 변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 위원이 내건 모토는 ‘40대 기수론’이었다. 1971년 당시 YS와 DJ가 주창했던 모토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면 된다.

당시 유진산 신민당 총재는 40대의 도전을 ‘구상유취’(口尙乳臭)로 평가절하했지만 결과는 40대 젊은 후보들의 완승으로 끝났다. 정 위원은 이번에 김민석 추미애 의원과 함께 젊은 후보군으로 분류되었고 원로급 후보의 주공격 대상이 되었다.

“벌써 최고위원이 되어 나중에는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 “위아래를 몰라본다”, 심지어 “당돌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정 위원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의 지도자들 상당수가 40대”라는 논리로 대응했다. 결과는 정 위원의 당선이었다.

정 위원은 “당의 변화를 바라는 대의원들의 열망”을 최대 당선요인으로 꼽았다. 비록 젊은 후보 3인중 자신만이 당선되긴 했지만 ‘새 바람’에 대한 욕구가 집약되어 표현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을 단순한 겸양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정 위원 자신의 개인적 상품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당선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 위원은 대단한 웅변가다. 대중연설에 관한한 일가를 이뤘다는 소리를 듣는 이인제 위원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 그의 연설특징은 방송앵커 출신 특유의 정확한 발음과 힘있는 제스처, 그리고 청중의 감정상태에 부응하는 탁월한 조어력이다.

수려한 마스크가 감성적 목소리와 어우러지면서 자아내는 분위기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인제 위원이 타고난 성량과 카리스마적 분위기로 웅혼한 느낌의 연설을 구사한다면 정 위원은 청량음료처럼 상쾌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다. 성악에 비유하자면 바리톤과 소프라노의 차이쯤 된다.


친화력 있는 성품, 노장층 끌어 안아

깔끔한 외모에서 풍겨나는 도회적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꽤나 친화력있는 성품을 지녔다. 아무 손이나 붙잡고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다. 사람의 마음을 사야하는 정치속성상 뻣뻣하지 않은 인상을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다.

정 위원은 패기 넘치지만 결코 건방져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소장파 후보들과는 달리 보수적 노장층 대의원의 거부감이 적었다.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이러한 장점은 15대와 16대 총선 연속으로 전국 최다득표 당선을 한데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지난 6월 그만두기까지 40개월간 대변인직을 수행하며 쌓은 언론과의 교분도 도움이 됐다. 기본적으로 정 위원 자신의 선전(善戰)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언론에서 비교적 비중있게, 우호적으로 그의 도전을 평가해준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런저런 요인이 결합되어 경선 초반만 해도 당선권내 진입여부가 불투명하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타 후보 진영에서 ‘정동영 경계령’이란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권역별 합동연설회가 진행되면서 정 위원이 무서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적어도 연설회 현장에서 정 위원은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후보였다. 경선 후반부쯤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는 정 위원이 3위권을 놓고 김중권 박상천 후보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점부터 차기 대권후보군의 명단에 정 위원의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40대 기수론’에 차츰 무게가 실렸다.


지도자능력 검증받는 계기

정 위원은 경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의 출마를 ‘모험’이라 표현했다. 당시 모험이란 표현의 무게중심은 당선 가능성에 쏠려있었다. 최고위원에 당선된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그의 모험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정작 본격적인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 정 위원 본인이나 주변 사람의 공통된 인식이다.

최고위원이라는 자리 자체가 정치인 정동영의 성장을 보장하는 안전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너무 빨리 높이 올라 가버린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닥치는 ‘조로’(早老)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쉼없이 자신의 정치적 외연을 확대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이에 실패할 경우 더이상 할 일이 마땅치 않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이기 십상이다.

정 위원은 대중연설력, 친화력 등 정치인으로서의 기본소양을 갖추었다고 평가되지만 리더십, 조직관리능력 등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이제 그 시험대에 서게 된 것이다. 정 위원이 2년후 민주당의 ‘젊은 대안’으로 떠오르게 될지, 아니면 자리의 무게에 눌린 ‘젊은 원로’로 늙어갈지는 전적으로 그가 할 몫에 달렸다.



노원명 정치부 기자 narzis@hk.co.kr

입력시간 2000/09/0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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