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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이락'이냐'? '비리연루'냐?

박지원 장관,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 개입의혹

권력형 비리의 몸통이 드러나는 것인가, 아니면 도주중인 피의자의 ‘물타기 작전’인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이 점입가경의 지경으로 가고 있다.

항간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이른바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의 개입의혹이 제기되면서 현정권의 실세인 박 장관이 폭풍의 한 가운데에 섰다. 일부에서는 지난해 김태정 전 법무장관의 구속까지 몰고갔던 ‘옷로비 사건’이 재연되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하고 있다.

당초 이 사건에 대한 고발을 접수받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을 때 언론은 박 장관의 이름은 커녕, 이니셜도 쓰지않고 그냥 ‘현직 장관’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박 장관 본인의 강력한 부인도 있었고 또 그의 개입 여부에 대한 정황증거가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언론에 대해 갖는 파워를 감안한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5공 정권 초기 YS의 단식투쟁을 ‘정치현안’이라고 썼던 것처럼 그저 ‘현직 장관’이라고 하던 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보증기금 지점장 폭로, 수면위로 떠올라

신용보증기금 전 서울영동지점장 이운영(52)씨의 메가톤급 폭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한빛은행으로부터 불법대출을 받은 아크월드 대표 박혜룡, 현룡 형제의 무리한 보증요구를 거절한 뒤 공교롭게도 청와대 사직동팀의 내사를 받았던 인물.

이씨는 지난해 초 사직동팀의 내사를 토대로 검찰이 1,000만원의 사례비를 받은 혐의로 소환하자 이에 불응한 채 잠적했었다.

이씨는 8월31일 세종문화회관 커피숍 세종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 장관을 겨냥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1999년 2월초 일면식도 없는 박 장관(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이 사무실로 자신에게 두 차례나 직접 전화를 걸어와 지급보증 압력을 가했다. “내가 청와대 공보수석인데 아크월드는 전도유망한 회사이니 15억원의 대출보증을 해줬으면 한다. 잘 부탁한다.”

물론 이씨의 폭로 내용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난점이 있다. 이씨가 일면식도 없는 박 장관의 육성을 전화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아울러 청와대 공보수석이라고 말한 사람이 과연 박 장관인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이 박 장관을 사칭했는지도 확증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이 갖는 의혹은 비상식적인 거액대출에서 시작한다. 건축자재 수입회사인 아크월드가 어떻게 1,004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는가가 의문의 출발이다. 한빛은행 관악지점이 전체 여신액의 70%가 넘는 거액을 아크월드에 대출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분산대출을 통해 위험도를 낮추는 대출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중 담보대출된 424억원의 담보는 168억원 상당에 불과했다. 시중은행이 기업대출을 할 경우 보통 대출금의 130% 정도를 담보로 잡는 관행도 무시됐다. 이같은 거액대출은 관악지점장의 대출재량권에서도 벗어난다.


갖가지 정황으론 의혹확대

비상식성은 한빛은행으로 하여금 대출을 해주도록 강요한 외부의 힘, 특히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박씨 형제는 한빛은행 고위 관계자들과의 회합에서 여러차례 ‘정치권 실세’를 운운했다.

특히 박혜룡씨는 ‘박 장관의 조카되는 사람’이라고 자처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구속중인 박혜룡씨의 동생 현룡씨는 박 장관이 현정부 출범직전 인수위 시절에 보좌관으로 데리고 있다가 청와대로 데려가 공보수석실 행정관으로 두었기 때문.

정치권 실세의 연루 의혹은 사직동팀의 개입으로 더욱 커졌다. 고위공직자 비리조사 전담기관인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이 무엇때문에 일개 보증보험 지점장을 수사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사직동팀은 “보증보험은 정부기관에 준하며 지점장은 1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자리”라며 “세 사람으로부터 이씨의 비리에 대한 투서가 있어 내사에 착수한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일 수도 있지만 이씨는 사직동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휘를 받는다는 점에서 박 장관의 연계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자신이 사직동팀의 내사를 받은 것은 대출보증을 요구한 박씨 형제의 청탁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씨 형제가 한빛은행으로부터 추가대출을 받기 위해 박 장관에 부탁해 신용보증보험에 보증을 요구했고, 보증이 거부되자 사직동팀을 동원해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사건 초기 박 장관은 자신과 박혜룡씨는 평소 연락이나 교류가 전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가지 정황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선 박 장관은 박씨 형제의 부친인 박귀수 전의원(9대)과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박 전의원이 사망했을 때 박 장관이 직접 문상을 간 적도 있었다. 최소한 박혜룡씨를 모른다고 한 박 장관의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박장관 "사실무근" 강력부인

박 장관은 이씨의 폭로 기자회견이 있던 날 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저녁 을 같이 하며 이 사건에 대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박 장관은 “사실무근”이라며 자신의 보증청탁을 강력히 부인했다.

박 장관은 “(검찰에 압력을 넣는다는)오해를 피하기 위해 검찰수사가 끝날 때까지 내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번 사건을 신용장을 위조한 사기이자 권력빙자 사기로 규정하고 있다.

이씨가 자신을 끌어들인 것도 박현룡씨를 보좌관으로 데리고 있었던 점을 역이용하는 것으로 해명했다. 전화압력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육성으로 사기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불법대출 사건을 ‘박지원 게이트’로 규정하고 있다. 정권의 도덕성을 공격할 수 있는 호재로 보고 공격수위를 최대한 끌어 올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9월1일 성명에서 “이운영씨에 사표를 종용했다는 차수병 보증보험이사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특보를 지낸 오랜 측근”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또 “박혜룡, 현룡 형제는 박장관 부인을 숙모라고 불렀다”며 박 장관의 개입 가능성을 강조했다.

박 장관은 “언론을 안고 정치를 해왔다”는 말을 흔히 한다. “과거 독재시절 야당이 믿을 건 언론 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하지만 언론 역시 최근엔 박 장관을 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 지난해 회장의 탈세구속건으로 정부와 대립했던 한 언론사는 전담팀을 구성해 박 장관의 비리 여부를 캐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뉴욕 한인회장에서 청와대 공보수석을 거쳐 문화관광부 장관까지, 야당총재의 ‘입’에서 대북 밀사에 이르기까지 DJ를 최측근에서 보좌해 온 박 장관이 최대의 시련에 봉착한 것은 틀림없다. “나는 내가 (사건에)걸리면 자살을 한다. 대통령 모신 사람들 중에서 자살한 사람도 있어야지”라는 비장함으로 자신의 떳떳함을 말하고 있는 박 장관의 정치적 운명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주목할 일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0/09/0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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