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깨진 대박의 꿈] 깡통 찬 개미들…"죽고 싶다"

코스닥·주가폭락, 투자실패로 고통의 나날

“생각만해도 정말 미치고 환장할 지경입니다. 내가 왜 주식투자를 했는지, 타임머신이라도 있으면 몇달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시장이 좋을 때는 하루에 150만원도 쉽게 벌었는데 주가가 내리자 제가 가진 종목은 휴지조각이 되고 지금 우리 가족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이자 감당하기도 힘이 들 정도입니다.

아이들 교육비는 단 하루도 어김이 없던 제가 지금은 다음달로 미뤄 내야만 하는 한심한 처지가 돼 버렸습니다. 하락장세에 그만 두라던 남편의 말을 듣지 않은 게 뼈저리게 후회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주식에 투자하다가 2,000만원의 빚만 지고 주식을 포기했다는 주부 성은경(30·부산)씨. 그녀는 현재 주식투자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대형 할인 유통매장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생명보험에 들고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유언장까지 써봤지만 아이들이 눈에 걸려 그마저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 얼굴보기가 민망하고 식탁에 마주 앉는 게 지옥같습니다.” 성씨는 주위에 누군가가 주식투자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고 한다.

코스닥이 폭락하고 주가지수가 700선에서 맴돌자 성씨처럼 큰 손해를 본 개미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정보력이나 자금력에서 열세인 이들이 주가하락에서 받는 충격은 큰손이나 기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무용지물이 되고 빚마저 쌓이게 되자 소액투자자들이 받는 고통은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투자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전문상담사의 조언을 받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기도 한다.

개미투자자들이 느끼는 좌절과 실망감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인터넷 증권 사이트. 얼마전 인터넷 증권 사이트 팍스넷(www.paxnet.co.kr)이 주식투자 성공담과 실패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하자 개미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8월 한달 동안 성공담은 하루 2~3 건도 채 안되는 데 반해 실패담은 하루 10여 건씩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주식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사는 것마다 내리고 결국 남편 몰래 전세자금 1,000만원 대출까지 받았는데 이마저 깡통이 됐습니다.(중략) 아침 8시부터 오후까지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딸에게 먹을 것도 못해주고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는 괴로운 시간이었는데….(중략) 지금은 날려버린 원금을 벌기 위해 직장 구할 생각 뿐입니다. 돈 많이 버신 분들, 돈 좀 풀어주십시요.” (ID 해피주식)


증권사이트에 넘치는 실패담

“오늘따라 유난히 무능하고 술을 좋아했던 이모부가 생각납니다. 8개월만에 5,500만원이 240만원으로 줄어들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이것이 지금 나의 자화상입니다. 실직자, 지하철 노숙자 문제는 남의 얘기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믿어왔는데….” (ID 팔까말까)

또다른 인터넷 증권 사이트인 이큐도스(www.ekudos.co.kr)가 소액 투자자들을 위해 마련한 ‘깡통모임’ 동호회 게시판에도 최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과 주식시장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내는 글이 부쩍 늘었다.

atsy라는 이름의 투자자는 “미치고 팔짝 뛰겠습니다. IMF때 구조조정으로 퇴사당한 후 실업수당과 적금으로 모은 돈 6,700만원으로 주식을 했는데 500만원 정도 밖에 안남았습니다. 어떡해야 하나요? 그저 밥 먹고 살 정도만 회복하고 싶습니다”라며 애절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 ID 대박도사는 “증권사에서 추천해 샀더니 모조리 박살났습니다. 신문도 보지말고 증권사도 믿지 맙시다. 자기들이 미리 다 사놓고 개미가 들어가면 몽땅 팔아버리는 나쁜 놈들…”이라는 말로 증권시장에 대한 개미들의 불신과 원망을 대변했다. 라이코스(stock.lycos.co.kr)에도 “주가조작이 판치니 어째 주식이 잘 될 수 있겠습니까? 주식 망했다”(ID 주식평가맨)”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개미투자자들은 이처럼 실패담을 통해 주식에 손댄 자신을 후회하고 서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고 있다.

팍스넷 박순영 대리는 “최근 주식투자로 손실을 본 개미들이 속출하면서 이들의 고통스런 하소연도 늘고 있다”면서 “상처입은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새로운 길을 찾고자 정보를 나누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씽크풀(www.thinkpool.com)의 ‘지배’라는 ID의 투자자는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개미’라는 글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주가는 오르지 않는다. 개미는 생명이 조금씩 빠져나가 박제가 되고 있다. 이미 살아있다고 보기에는 무리다. 하루하루 주가에 일희일비하며 삶이 망가지고 있다. 빨리 주식시장이라는 개미지옥으로부터 빠져나가야 한다”며 주식 외에 다른 길을 찾도록 권유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자신의 실패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해 다른 사람이 참고하도록 건네기도 한다. ‘여유돈으로만 투자하라’ ‘주식을 모르면 하지마라. 나처럼 된다’ ‘성공하더라도 주식을 무서워해라’는 등 그들의 아픔이 엿보이는 조언이 대부분이다.


절망감에 빠져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도

하지만 격려나 신세 한탄에 그치지 않고 투자실패에서 오는 절망감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생각하는 투자자도 있어 우려되고 있다.

“2년 동안 못먹고 아껴둔 전재산을 6개월만에 잃어버리다니….(중략) 투자원금 모두 날리고 빚까지 지고 있습니다. 죽고만 싶습니다. 살아서 숨쉬는 자체가 고통입니다.”(팍스넷, ID 방화벽)

‘성산포에 가고 싶다’ 라는 글은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지금은 카드로 카드 빚을 갚으며, 늘어나는 빚을 막기 위해 새로운 카드를 만들고….(중략) 월 150만원도 안되는 월급쟁이가 현재 금융부채가 5,000만원이 넘으니 이젠 감당하기도 힘들군요.(중략)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수학여행 때 갔던 성산 일출봉의 아름답고 낙하하기 편안한 모습이…. (중략) 주식은 제 젊은 날 뿐만 아니라 남은 날마저 앗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팍스넷, ID 월급쟁이)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개미들의 좌절과 고통이 일부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300건에 달하는 실패담이 팍스넷에 올라 있으며 지난 8월22일 이 회사가 회원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5.3%가 주식투자로 손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주식투자를 위해 빚을 낸 사람도 52.7%에 달하며 투자자의 34.7%가 원금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 실패로 절망감에 빠진 개미들의 글은 심각한 사회문제의 가능성마저 엿보이게 하고 있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9/06 19:03


송기희 주간한국부 bara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