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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도로위의 세일즈맨 ‘V맨’

전국의 자동차 대수가 1,170만대. 국민 4명당 한명꼴로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휴일이면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는 예외없이 주차장으로 변해버린다. 주말 나들이에 나서면 으레 두세 시간은 길이 막혀 고생할 각오를 해야한다.

하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 대낮, 매캐한 매연과 후끈거리는 아스팔트 위에 몇시간 갖혀 있다보면 아무리 참을성 있는 사람이라도 짜증이 난다. 이런 상습 정체 지역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속칭 ‘V맨’이라고 불리는 임시 상인들이다. 이들은 자동차가 정체된 곳이면 나타나 운전자와 승객을 상대로 음료수 빙과 과자류 등을 판다.


차 심하게 막힐땐 오징어가 인기

연휴 마지막날인 8월15일 경기도 화성군 구포2리의 306번 국도변. 이 도로는 갯벌 휴양지로 이름난 제부도와 대부도로 연결되는 편도 1차선 국도. 휴일이면 하루종일 차가 몰리는 상습 정체 지역이다. 최근에는 도로확장 공사까지 진행중이어서 주말이면 차량으로 하루종일 거북이 걸음을 하는 곳이다.

차가 밀리기도 전인 오전 8시경, 이 국도변에는 뻥튀기와 오징어 음료수 옥수수 등을 실은 소형 트럭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양손에 과자와 음료수를 가득 든 채 길게 늘어선 차량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제부도 입구 10㎞전부터 늘어선 길거리 상인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40~50명.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100m 정도의 간격을 둔 채 도로에서 물건을 팔았다. 뻥튀기가 가장 많았고 오징어 호도과자 옥수수 찐빵 과자 도너츠 칡차 과일 커피 콜라 생수 등 품목도 다양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의 연령층도 20대 초반에서 50대까지 폭넓게 퍼져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음료수 같이 무거운 것을 직접 손에 들고 차 사이를 누비며 다녔고 나이든 사람들은 주로 도로변에 세워놓은 차 옆에서 물건을 팔았다.

대부분 부부였으며 남자는 물건을 들고 직접 파는 역을 담당하고 부인은 차에서 호도과자를 굽거나 물건을 정리하는 보조역을 담당했다.

이 일을 4년 넘게 해오고 있다는 윤대훈(45) 양승옥(44) 부부는 “IMF 직전 부식유통 사업을 하다 큰 손해를 본 뒤 ‘큰 돈 안들이고 식구를 먹여 살릴 방법이 무엇일까’ 고심하다 이 일을 시작했다”며 “휴일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매일 나와 장사하면 직장 다니는 것보다는 벌이는 조금 나은 편이다”고 말했다.


핸드폰으로 정보교환

휴일이면 아침 8시30분에 나온다는 윤씨는 “4계절 중에 나들이를 많이 가는 봄이 가장 장사가 잘 되고 오전에는 뻥튀기, 오후에는 옥수수나 음료수가 잘 나간다.

정체가 극심한 때에는 이상하게도 오징어가 많이 나간다”며 “가격은 음료수 종류는 1,000원이고 나머지는 2,000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오후 4시까지는 제부도 방향에서 장사를 하고 오후 돌아갈 시간이 되면 반대편 쪽으로 건너간다.

윤씨에 따르면 이들의 휴일 하루 평균 매출액은 40만원, 평일에는 10만원 내외 수준. 한달 평균으로 어림잡아 총 300~400만원의 매출을 올려 150만원 내외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작년보다 매상이 줄어 힘들다”는 윤씨는 “이 부근에서 장사하는 차량수만 대략 20대가 넘는다. 서로 길이 막히는 정보는 상인들끼리 핸드폰으로 알려준다. 비록 뜨내기 장사지만 남의 구역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등 상인간의 도의는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로 위에서 장사를 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도로공사’라고 부른다. 또 손가락으로 물건 가격을 가린킨다 해서 ‘V맨’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주말이나 공휴일 차량이 몰리는 지방도로나 국도면 어디든 달려간다. 경기도 부근에서는 김포·강화, 동두천·포천, 퇴계원, 일산, 송추, 의정부, 양평 부근의 국도와 지방도로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마스크 쓰고 팔면 매상‘뚝’

V맨의 세계에는 몇가지 불문율이 있다. 가급적이면 가볍고 재고가 없는 상품을 취급해야 한다. 도로 장사는 거의 주말에만 팔기 때문에 상하거나 변질되는 제품을 선택하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장시간 도로를 누비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데 상품이 무거우면 기동성이 떨어져 결국에는 매출에도 지장을 준다.

그리고 매연이 심하더라도 가급적 마스크나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려선 안된다. 도로 위는 자동차 매연과 각종 먼지, 그리고 따가운 햇살 때문에 일반인은 채 몇분을 견디기 힘들다.

그렇다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면 판매량이 20~30% 가량 줄어든다. 비록 뜨내기 장사지만 상인이 얼굴을 가리면 사는 사람쪽에서 물건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얼굴이 검게 타더라도 맨얼굴로 장사를 해야한다.

차량 흐름을 방해해서도 안된다. 비록 이 장사가 도로가 밀릴 때 하는 것이지만 예비 손님인 다른 운전자의 신경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칫 물건 하나를 팔려다 교통소통을 방해해 다른 운전자를 화나게 하면 경찰서에 곧바로 신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 경찰관과 구청 직원이다. 이 장사가 무단 도로 점용을 하는 것이어서 법의 제재를 받는다. 이들 장사꾼 중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위반 스티커를 떼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한달 200만~300만원대 수입

최근에는 주말마다 옮기는 이동식에서 벗어나 아예 고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 V맨들도 생겼다. 가장 대표적인 곳의 하나가 성산대표 남단.

서부간선도로와 성산대교 남단 진입로가 만나는 이곳에는 시간대에 따라 하루 4팀이 번갈아가며 장사를 한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는 토스트,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호도과자, 오후 1시부터 7시까지는 찹쌀도너츠,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는 호도과자 차량이 판매를 한다.

이곳은 도로가 막혔을 때만 나타나는 일반 V맨들과 달리 ‘신호 따먹기’를 하는 곳이다. 서부간선도로쪽과 성산대표 진입로쪽 차량이 번갈아 가며 신호에 걸리는 순간을 이용해 재빨리 물건을 판다.

이들은 막히는 곳을 찾아 부나방처럼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매일 고정적 수입을 얻는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뜨내기 장사와 달리 자신만의 주력 메뉴 한가지씩을 정하고 음식 맛에도 신경을 쓴다.

주말에는 이동식 장사를 하는 사람이 많이 나와 앞에서 먼저 팔기 때문에 주말이라고 해서 평일보다 훨씬 장사가 더 잘되지는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한 차량당 평일 하루평균 15만~20만원의 매상을 올려 월 250만~300만원 정도의 순수익을 올린다. 하루종일 안전지대에 차량을 세워 놓기 때문에 경찰과 관할 구청의 단속이 이들에게 가장 큰 골치거리다.


엄청난 체력 요구하는 중노동

길거리 장사는 큰 자본없이 곧바로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IMF위기 이후 상당수 실직자들이 이 직업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보기와 달리 이 일은 엄청난 체력과 건강이 요구된다. 자동차 매연과 먼지가 뒤범벅이 된 도로 위에서 물건을 들고 뛰어다니는 일은 중노동에 가깝다. 실제 이 일을 오래한 사람 상당수가 기관지염이나 각종 폐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도로가 막히는 때면 나타난다는 점에서 V맨은 자동차 운전자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IMF위기로 직장을 잃은 실직자나 전직농사꾼, 막노동 일꾼 등 우리 사회의 어려운 서민이다.

비록 불법적인 장사지만 이들에겐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다. 요즘 들어 V맨이 다시 늘어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점차 살기 힘들어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0/09/0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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