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장 정치꾼인가? 사기꾼인가?

막대한 정치자금 뿌리며 유력정치인과 친분 유지

데이비드 장. 55세. 재미동포 사업가.

미국 정계에 막강한 인맥을 자랑하는 데이비드 장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유력지 뉴욕 타임스가 8월28일 데이비드 장을 1면 특집기사와 사설로 다뤄 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2면에 걸친 장문의 특집 기사에서 데이비드 장이 그동안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리며 민주당과 끈끈한 관계를 쌓아올렸다고 전했다. 뒤이어 이 신문은 9월 1일자 사설에서 그가 공공연히 내세우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백악관이 해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데이비드 장은 누구인가. 이 신문은 그가 1990년 미국으로 건너온 이래 공화, 민주당을 오가며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린 결과, 미국인 로비스트들마저 혀를 내두를 만큼 유력 정치인들과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 외에 그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미 고위관리들과 격의 없는 대화

이 신문에 의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인맥은 실제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94년께 당시 조지 부시미 대통령의 측근인 로비스트 대니얼 머피를 통해 백악관과 접촉을 시작했으며 그때부터 백악관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현재도 클린턴 대통령이 주최하는 타국 정상들과의 만찬에 참석하고 대통령과 같이 특별 시사실에서 영화를 보거나 농구 경기를 시청했으며 클린턴대통령이 98년 11월 방한했을 때는 호텔방에서 같이 피자를 먹었다는 것.

물론 이런 개인적인 친분만은 아니다. 데이비드 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 클린턴 대통령의 친구이자 민주당의 재정책임자였던 테리 맥올리프를 98년 컨설턴트로 고용했으며 자신은 95~96년 민주당 로버트 토리첼리의 뉴저지주 상원의원 선거진영에서 재정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돼 선거자금 모금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번에 장씨가 연방 선거자금 수사단과 FBI의 수사를 받게 된 것도 바로 토리첼리 의원의 불법 선거자금 운용 여부를 추적한데서 비롯됐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드 장은 95년 이전에는 조지 부시 전대통령과 공화당 측근들과도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또 민주당쪽으로 돌아선 뒤에는 국가안보회의 중동 및 아시아 담당 위원들과 미국-이라크 대화 재개는 물론 북한 문제도 논의하는 등 고위 관료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수준이었다.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 가히 엄청난 인기를 가지고 있는 장씨의 이런 능력의 원천은 다름 아닌 정치인들에게 펑펑 뿌려지는 정치자금이다. 100여회에 걸쳐 총 32만 5,000달러의 선거자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주 리틀록에 지을 대통령 도서관에 최소 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불분명한 행적, FBI 수사선상에

뉴욕 타임스는 그러나 세금 신고 수입액을 초과하는 기부금을 남발, 결국 수사 대상이 된 데이비드 장을 희대의 ‘정치 사기꾼’으로 몰아세우며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미국 정치가들 역시 비난하고 나섰다.

이 신문에 따르면 데이비드 장은 자신에 대한 정보에서부터, 뚜렷한 실적없는 사업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90년 미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장씨는 두 개의 여권과 세 개의 주민 번호, 두 곳의 출생지와 세가지 생일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으로 결혼 신고가 돼있다.

뉴저지주 포틀리에 있는 작은 사무실은 클린턴 대통령의 친구,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측근 등이 각각 컨설턴트와 회장으로 일한 바 있을 정도로 화려한 인적구성을 자랑하고 있지만 주력 업종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수익은 어디서 발생하는 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가 오히려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미국내의 인맥을 활용한 보다 글로벌한 비즈니스였던 것 같다. 주로 미국의 적성국가에 수출을 추진한 그는 91년 당시 무역 제재국인 북한에 식료품 수출 허가를 처음으로 얻어내 94년까지 56만톤의 밀을 수출했고, 이라크에 앰불런스 등 각종 장비를 수출하기도 했다.

북한 밀 수출을 위해 신한은행과 LG인터내셔널로부터 6,000만달러를 받은 그는 북한으로 부터 7,100만달러를 돌려받지 못하자 토리첼리 위원으로 하여금 북한에 압력을 넣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일련의 상원의원들이 장씨의 요청을 대변해 장씨의 회사에 빚을 갚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지 말 것을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미 정치인 앞세워 대한생명 인수 시도

그가 시도한 가장 큰 거래는 지난 98년 대한생명 인수 건이다. 여기에도 미국의 정치인들이 동원됐음은 물론이다.

당시 파나콤이라는 회사 이름으로 대한생명 인수에 뛰어든 그는 앞서 언급한 클린턴 대통령의 친구 맥올리프를 이 회사의 투자역으로 고용하고 있었으며 로비스트 출신이자 조지 부시 전대통령 측근 대니얼 머피를 회장으로 앉혀놓고 있었다. 장씨의 변호사는 이후 연방 법원에서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당시 파나콤사를 대신해 한국의 고위관료들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뉴욕타임스가 만난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 이종구씨에 의하면 장씨가 토리첼리 상원의원 및 클린턴과의 막역한 관계를 자랑하며 뉴저지주 연금기금 등을 이용해서 대한생명 인수에 필요한 1조5,000만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또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에게도 토리첼리 상원의원 및 워싱턴과 뉴저지주의 여러 의원들로부터 데이비드 장을 추천하는 편지가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한생명 인수가 실패로 끝난 지난해부터 연방 수사국은 토리첼리 의원의 상원의원 선거자금의 불법 운용 여부를 수사하며 데이비드 장에 대한 수사를 함께 시작했다.

장씨는 변호인을 통해 “클린턴 대통령이나 토리첼리 의원등 공직자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해 왔으나 지난 6월에는 “불법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있으며 공직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자신의 주장을 번복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토리첼리 의원들을 비롯, 장씨와 관계를 맺었던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정치자금의 댓가로 그의 사업에 도움을 준 적은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그러나 FBI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자석처럼 미국 정치인들을 끌어들였던 그의 마당발이 어떤 은밀한 거래를 낳았을 것이라는 심증은 굳어져만 가고 있다.




이윤정 국제부기자

입력시간 2000/09/06 20:14


이윤정 국제부 y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