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 열전] 장성익 3R 사장(下)

기술력으로 일어섰고 매출의 80%를 해외시장에서 올리는 3R이지만 장성익 사장의 기술관은 좀 독특하다. ‘기술력 1위=최고의 제품 혹은 최고의 기업’이란 일반의 상식을 뒤집는다. 최고의 기술로 만든 제품보다는 가장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그의 철학이다.

“현실적으로 세계 최고란 기술은 존재할 수 없어요. 우리만 할 수 있는 기술도 없어요. 오늘 가장 앞서 가는 기술일지 모르지만 내일이면 바뀝니다. 그래서 연구팀에게 항상 잘 팔리는 제품을 개발하라고 주문하지요. 기술이 뛰어난 것과 잘 팔리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런 기술철학도 IMF위기 시절에 터득한 것이다. IMF위기는 그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여전히 학생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장 사장을 어른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 시장의 생리를 터득한 셈이다.


신세대 감각, 대학시절엔 록그룹 멤버

그러나 일에서 벗어나면 여전히 신세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그다. 서울대 시절 록서클에서 전자기타를 다뤘던 손감각을 못잊어 요즘도 시간만 나면 뮤직 비디오를 즐겨보고 회식자리에서도 녹슬지 않는 노래솜씨를 과시한다. 또한 누구보다도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해 여직원에게 인기가 높다.

한 여직원은 “사장님은 여직원 모임에 가끔 참여해 여성 및 남성심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결혼 컨설팅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3R 사업은 크게 4개 분야로 압축된다. 주력제품인 DVR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영상보안 분야와 인터넷 화상 솔루션, 디지털 TV 장비 사업, 데이터 전송 및 네트워크 사업 등이다. 디지털 영상보안 분야는 이미 자리를 굳힌 상태. 국내보다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 해외에 더 알려져 있다.

인터넷 화상 솔루션은 장 사장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 승부를 걸고 있는 분야다. 무엇보다 초당 15프레임 이상의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한 다자간 화상채팅 시스템을 인터넷 채팅사이트인 ‘하늘사랑’에 제공해 화상채팅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3R의 사업중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중국의 전력통신 개발사업. 지난 6월 중국 국가전력부 산하 전력과학기술연구원과 중국내에 보급될 전력선 통신 기술을 공동개발키로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측과 공동투자한 대련의 임가공 공장에서 곧 전력선 저속모뎀이 생산됩니다. 단기적으로 2만여개를 생산, 납품할 예정인데 시장 규모가 1억개 정도는 되니까 도전해볼 만하지요. 그 다음은 전력선을 이용한 고속 인터넷 통신(PLC)사업입니다.” PLC는 당초 한국계 일본인 손정의가 낸 아이디어다. 장 사장은 그것을 드넓은 중국땅에서 상용화할 방침이다.


"중국시장은 세계 최고브랜드의 각축장"

중국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설명은 쉬우면서도 상세하다. 평소 회의 스타일도 그런 편이다. 남의 얘기도 충분히 듣고 자기의 구상을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열심히 보고한 뒤 장 사장의 설명을 듣고는 오히려 무안해하는 직원도 가끔 있다고 한다.

화제가 중국시장 진출쪽으로 넘어가자 그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너도 나도 중국으로 뛰어드는데 신중해야 합니다. ‘인터넷 기술 조금 가져가면 통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죠. 중국시장은 세계 최고 브랜드의 각축장이어서 중국측 파트너를 어슬프게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는 중국의 무서움을 잘 안다. 한때 우리나라의 청계전 전자상가가 그랬듯이 중국의 심천에서는 아무리 최첨단 제품이라도 한달만 지나면 똑같은 걸 만들어낸다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한번 잘 고른 파트너는 100가지 기술보다 낫다”고 했다.

해외진출과 함께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사내 결속력. 벤처는 대기업보다 작지만 효율적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창업시 어려움을 함께 했던 초기인력과 사업확장 단계에서 몸담은 인력이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직은 부족하나 한 고비는 넘겼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직원 개개인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모든 문제를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회사는 진짜 문제다. 그 회사는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적 정서에다 서로간 이해 관계와 갈등 요소를 어떻게 조화하고 승화할 것인지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A&D 전략으로 경험부족 보완

그의 약점은 역시 경영상 경험부족인 듯하다. “어떻게 보완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스코시스템스의 A&D(인수후 개발) 전략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대답했다. A&D란 경쟁력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 나아가 시장을 선도하는 전략이다.

“모든 분야에서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다 잘한다는 말은 거꾸로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과 통합니다”라는 그는 A&R 전략을 통해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3R이 OEM 방식으로 제품을 납품받아 소프트웨어를 깐 뒤 시장에 내는 현재의 판매전략도 그런 경영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로 그게 가장 부가가치가 높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개발회의에는 반드시 참여한다. 회의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시장을 보는 눈이다.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은 기술 그 자체만 보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시장은 기술자의 눈과는 다르게 움직입니다. 시장은 기술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요구하지요.”

자랑 같지만 그는 연구소에서 개발을 담당한 경험도 있고 시장도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그런데도 개발 방향을 정할 때 기술팀과 늘 티격태격한다고 한다.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인데 기술팀쪽에서도 사장이 여전히 큰형님 같아 논쟁을 벌이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했다.

그가 내세운 경영 이념은 회사명칭 그대로 3R이다. 끊임없는 연구(Research), 속도(Rapidity), 그리고 디지털 혁명(Revolution)이다. 현재의 성장 추세로 가면 올해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523억원과 88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속도지만 그는 “나보다 더 훌륭한 CEO(최고경영자)가 나오면 언제든지 물러날 용의가 있다”며 “결코 현재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장 사장의 그런 마음가짐이 눈에 보이지 않는 3R의 진짜 힘인지 모른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09/07 18:5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