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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서울 성북구 월곡동(月谷洞)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만큼만 하여라’는 말이 있다. 이제 한가위 달이다.

‘해마다 한가위 달이 좋지만(歲歲中秋月)/ 오늘밤은 더욱 아름답구나(今宵最可憐)/ 온 하늘 바람과 이슬 고요한데(一天風露寂)/ 만리라 산과 바다가 한빛이로세(萬里海山連)/ 고국에서도 으레 같이 보게 될지니(故國應同見)/ 온 집안이 아마도 잠 못이루겠지(渾家想未眠)/ 그 누가 알리오 서로 그리워 하는 마음이(誰知相憶意)/ 여기나 거기나 다 같이 까마득함을(兩地客茫然).’ 조선조의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이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예문춘추관사(藝文春秋館使)로 명나라에 머물면서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다.

결실의 계절, 가을과 더불어 오곡풍등의 한가위 달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고향을 그리게 마련. 하물며 우리나라와 같이 남북분단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의 향수야 오죽하랴!

달골(月谷)을 찾아…. 월곡동은 본래 옛 한성부 동부인창방의 일부 지역으로 ‘내에 다리가 있었다’하여 ‘다릿골(굴)’이라 불렀다. 그 다릿골이 ‘다릿골-다리골-달골(月谷)’로 변해 월곡(月谷) 또는 교곡(橋谷)이라 부르기도 했다.

1914년 4월1일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한답시고 부제(府制)실시에 따라 월곡상리(月谷上里) 월곡하리(月谷下里)를 병합, 월곡리(月谷里)로 고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편입시켰다. 그 뒤 1936년 4월1일 다시 경성부에 편입시켰고 해방 뒤인 1946년 10월1일 동이름 변경에 따라 상월곡(上月谷) 하월곡(下月谷)으로 갈랐다가 1965년 4월19일 동제 실시에 따라 상월곡동 하월곡동으로 나뉘어졌다.

월곡동에는 ‘귀인묘터’(貴人墓基)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는 귀인의 묘가 셋 있었다는 데서 연유된 것이다. 이는 조선조 말 고종(高宗)의 후궁인 영보당 이씨(永保堂 李氏), 내안당 이씨(內安堂 李氏), 복영당 양씨(福寧堂 梁氏)의 묘소였다.

그뒤 모두 서오릉(西五陵)으로 옮겨졌다. 또 하월곡동에 ‘애기능터’(完王墓基)라 불리는 곳도 여기에 고종의 첫째 아들인 완왕이 일찍 돌아가 이곳에 묻힌데서 비롯된 땅이름. 이 완왕묘도 서오릉으로 옮겨지고 땅이름만 남아있다.

문득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이 생각난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니다.’

앞 냇물엔 거울 같은 맑은 물이 흐르다 보니, 그 물 위로 징검다리도 있었을 테고 또 목책 다리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화에 밀려 그 내가 모두 복개되고 옛 그림같은 다리골의 잔영은 찾을 길이 없다. 어쩌다 ‘다릿골’이란 땅이름이 월곡(月谷)으로 뜻빌림(意譯)됐지만 그래도 땅의 지기(地氣)는 속일 수 없는지…. ‘다릿골’이란 땅이름에 걸맞게 다릿골의 개천 따라 도시고속화도로의 다리가 높고 길게 얽기설기 놓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09/1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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