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그릇 역사기행] 산청(中)

無心의 경지, 가난의 아름다움

실비가 촉촉히 내리던 1985년 봄날, 일본 도쿄의 산토니 미술관에서는 일본의 명찻그릇 100선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16세기 조선시대에 구어진, 소박한 아름다움의 극치인 우리 찻그릇 20여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기행자의 눈길을 머물게 한 것은 ‘경남 산청 출토’라고 설명이 붙어 있는, 입술 부분이 약간 비뚤어진 찻그릇이었다. 오랜 세월 찻그릇으로 사용한 탓에 찻물이 배어 고색이 찬연해 보였다. 다소 거친 막백자 사발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가난의 아름다움에 대한 극치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을 스쳤다.

기행자는 마침 전시장에서 도쿄 국립박물관의 도자기학자 하세다니의 소개로 일본 현대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인사를 나눌 수가 있었다(후일 안도 다다오는 새로운 산토니 미술관은 설계했다). 한국에서 온 약관의 기행자를 거장 안도 다다오는 반갑게 대해 주면서 “조선 찻그릇의 아름다움과 일본 차실의 소박한 건축이 잘 조화가 돼 불세출의 빈자(貧者)의 미를 창조했다”고 했다.

당시 40대의 안도 다다오의 인품과 군더더기 없는 작품에 기행자는 첫 눈에 매료됐다. 오늘날 안도 다다오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현대건축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수년 전에는 한국에도 다녀간 바 있다.

기행자는 시골에서 흙일을 하다가 잡사(雜事) 때문에 도시로 종종 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도시에 시공돼 있는, 눈에 거슬리는 건축물을 보면서 ‘왜 한국에는 안도 다다오 같은 좋은 건축가가 나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건축은 그 시대와 사회의 얼굴이다.

1996년 도자기 전시회차 호주로 떠날 무렵 지금까지도 만나보지 못한 한국의 건축가 승효상이 지은 ‘빈자의 미학’이란 책을 발견하고 몹시 감격스러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도 과연 이러한 훌륭한 철학을 가진 건축가가 있었구나’ 하면서 빈자의 미학을 여러차례 정독했다. 기행자는 빈자의 미학을 곧 가난의 아름다움이라고 해석하고 싶었다. 원래 ‘빈’(貧)이라는 것은 ‘부’(富)에 대한 반율로서 빈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부를 쌓는 빈으로 오랫동안 동양철학이 주장하는 무심(無心)의 경지와도 통하는 것이다.

산청 찻그릇의 다소 거친 아름다움은 곧 가난의 아름다움이다. 16세기 막사발을 만든 조선의 남도 사기장인과 그 미를 발견한 일본의 차인들이 무심의 아름다움에 깊은 의미를 맛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처럼 가난의 아름다움을 생의 진실한 가치로 삼는 윤리성과 그것을 미의 궁극적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지고 그 시대를 살다간 조선 사기장인과 일본 차인의 세계가 오늘날 우리들에겐 그저 부럽기만 하다.

산청군 단성면 일대에는 도자기를 굽는 1차 재료인 고령토 광산이 여러 군데 있다. 양질의 고령토를 바탕으로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여러 마을의 가마터에서 분청사기와 백자를 구워오면서 독특한 산청 도자기문화를 형성했다.

그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되고 규모가 큰 가마터가 방목리 가마터다. 이곳 방목리 가마터는 1995년 통영∼대전간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관계당국에 의해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때 15세기 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친, 많은 양의 분청사기 찻그릇과 백자 생활용기들이 출토됐다.

오늘날 비록 고속도로가 가마터를 관통하고 있지만 그 옛날 산청요의 전통을 민영기 선생이 묵묵히 지켜오고 있어 무척 다행이다.

<현암 최정간 도예가>

입력시간 2000/09/19 18:4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