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현실에는 ‘다시’란 단어가 없다

탁, 탁, 타닥… 두더기 잡기 게임이란게 한때 인기였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플라스틱 방망이를 들고 고개를 내미는 두더지 머리를 힘차게 두들겼다. 그 재미는 잠깐. 두더지가 여기저기서 동시에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방망이는 타격 목표를 잃고 허둥대다 지켜보는 이들의 아쉬운 탄성과 함께 ‘게임 오버’가 된다.

지난 8월 말로 집권 하반기에 접어든 김대중 대통령 앞에 터져나오는 현안들을 보면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보는 듯하다. IMF로 초래된 경제위기를 하나 둘 잘 수습했던 전반기와는 전혀 다르다.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후유증이 채 아물기도 전에 윤철상 발언(선거비용 실사개입 의혹)이 터졌고, 한빛은행 사건(대출외압설)이 불거졌다. 의약분업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유가 폭등행진에 주가 폭락, 물가 불안, 태풍 ‘사오마이’ 엄습,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 포기 등 숨이 턱에 찰 정도다. 일부에서는 IMF의 ‘후(後)폭풍’ 조짐이라고 한다. 두더지 게임같았으면 이미 ‘게임오버’다.

그러나 현실은 게임과 다르다. 게임은 다시 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는 ‘다시’란 단어가 없다. 그래서 지켜보는 국민이 더 답답하다.

이렇게 답답한 때에 주간한국은 창간 36주년을 맞았다. 1963년 한국 최초의 정통 시사주간지로 태어나 극심한 우리 역사의 굴곡을 지켜보며 성장해 왔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존재가치가 빛났던 지난 세월이었다.

또다시 어려운 시절을 맞아 36주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우리 나라 최고 전통의 주간지에 걸맞는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09/2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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