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북한은 변하고 있다

좀 억지 같은 생각인지 모른다. 한반도를 지나간 제14호 태풍 ‘사오마이’는 남북한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긴장완화, 화해, 평화공존이란 통일문제에는 좋은 바람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그렇다.

북한 중앙연구소 정룡우 부소장은 9월16일 조선중앙TV에 나와 제14호 태풍이 이날 하오3시 함남 이원에 도착했으며 “비록 세력은 약해졌지만 북한을 통과한 태풍으로는 강한 태풍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강원도 고성에는 218mm, 개성 171mm, 이천 125mm, 통천 104mm, 황해북도 신평 136mm, 함북 김택 100mm 내렸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태풍의 진로에 대해 설명하고 철저한 대책 마련을 방송을 통해 강조한 것은 ‘6·15 공동 선언’후 변화된 모습이다. 북한은 15일에는 제네바에서 세계식량 계획의 캐서린 버트니 사무총장을 통해 “앞으로 4개월간에 약 19만5,000톤의 식량 원조가 절실하다. 북한의 겨울은 혹독하다. 만약 지원이 없다면 어린이, 임산부, 노인 등 수백만명이 식량난을 겪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북한은 8월 31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세계식량기구 아시아·태평양 지역회의에서 “북한의 올해 식량 생산량은 340만톤이어서 470만톤의 최소 수요량에 못미치고 있다. 국제사회의 원조가 예년의 80만톤에 이르지 않으면 부족량은 50~100만톤이 된다”고 보고했다.

북한의 이런 호소는 일본을 움직여 30만톤의 쌀 원조를 계획하게 만들었고, 한국에는 외국에서 사서라도 60~70만톤의 식량을 제공하려고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이형철 유엔 주재대사는 9월15일 기조연설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대한 미항공당국의 몸수색 사건에 언급하면서 “미국이 이 사건에 대해 자기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는 담보한데 대해 유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어떤 선의도 긍정적으로 호응해 받아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사의 이런 발언은 ‘벼랑끝에서의 협상-북한의 협상모형’의 저자며 아시아 소사이어티 서울 대표인 스콧 스나이더 박사에게는 엄청난 변화로 비쳐 졌을 것이다.

스나이더 박사는 1999년 말에 낸 그의 저서에서 북한의 협상 모형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위기’ ‘벼랑끝’ 전술,위약함을 피하기 위한 ‘지렛대 만들기’등 3대 원칙을 가진 협상술로 분석했다. 한국과 북한은 서로 ‘제로섬 게임’ 방법을 쓰고 있어 마치 무사들이 싸우듯 완전한 승리만을 위해 협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1992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둘러싼 남북한-미국협상에서 북한이 ‘6·15’전까지 보여준 협상 모형은 협박, 공갈, 협상중 퇴장 등 ‘위기’와 ‘벼랑끝’으로 치닫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또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열악한 위치와 협상자로서 북한사회내 생존을 위해 상대방에게 어려운 처지를 호소해 일방적 양보를 얻어내는 지렛대 협상을 했다고 그는 보았다. 그는 위기, 벼랑끝 외교는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외교 실체를 알게 했고 그래서 미국은 더 이상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그러나 ‘6·15’후 한 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통해 무사적 협상 패턴을 버리고 제로섬 게임 원칙을 포기했기 때문에 협상에 성공한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이고 ‘공동선언’에 나선 것은 게릴라 외교, 벼랑끝 외교에서 벗어나 남북이 경제적으로 서로 공존 번영하는 ‘윈윈’정책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나이더 박사에 덧붙여 하버드대 한국학 상임 연구원인 알렉산드르 만소로프 박사는 1980년대 후반 평양 주재 러시아 외교관이었던 경험을 살려 북한의 변화를 다른 시각에서 분석했다. 1995년부터 98년에 걸쳐 북한의 자연재해가 김정일 위원장을 개방과 개혁으로 몰고 왔다는 것이다.

“옛 소련에서 ‘개방’과 ‘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1985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공산주의의 무능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 개혁의 촉진제가 바로 홍수때문이었다게 곧 증명될 것이다.” 만소로프의 이 발언이 입증되기를 바란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09/2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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