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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의 '큰 그림' 그리기

'2002'겨냥 치밀한 이미지 관리, 향후 행보에 정가 주목

시드니 올림픽이 시작되면서 정몽준 의원도 바빠졌다. 국회의원보다는 대한축구협회장으로 평판을 얻고 있는 정 의원인 만큼 시드니 올림픽은 또한번 그의 스포츠 외교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올림픽에 국한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스포츠 외교가 아닌 ‘스포츠 정치’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정 의원은 일찌감치 시드니로 향했다가 9월17일 급히 일본으로 떠났다. 국제교류재단에서 주최하는 한일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일의 전·현직 고위직 인사들을 포함한 각계 전문가들이 대거 몰려오는 대규모 행사다. 시드니 올림픽 이후 최대의 지구촌 스포츠행사가 2002년 월드컵인 점을 고려하면 그의 일본행도 착실한 기반다지기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정가에서도 최근 그의 스포츠 정치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당의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16대 국회에 들어서며 정치에도 큰 관심을 보여 온 그가 여당이 내건 최고위원 카드까지 외면하는 배경에 대해 많은 추측이 나돈다. 그는 아직까지는 현실 정치무대에 전면으로 등장하는 것을 꺼리는 상태다.


“올림픽 끝나면 정치에 전념하겠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아리송한 행보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정 의원의 측근들은 “올림픽 이후 그가 국내정치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 측근은 “정기국회도 열려있고 당분간은 외국행사를 줄이고 국회일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행은 그의 소속상임위인 통일외교통상위의 해외공관 감사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조심스런 ‘정계 U턴’의 배경은 뭘까. 재계에서 그는 ‘MJ’로 통하지만 아직 정가에선 MJ라는 호칭은 낯설기만 하다. 아직 그의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대그룹의 재력에 월드컵을 통해 대중적 호감을 얻은 ‘잠룡’ 수준의 정치인이라는 정가에서의 일반적 평가를 의식한 행보가 아닐까.

최근 그의 행보에서 주목을 끈 것은 김영삼 전대통령과의 회동이었다. 정 의원측에선 “우리는 누구든 만날 수 있고 앞으로 계속해서 만날 것”이라며 “지금은 현실정치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마련할 시기”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물론 공공연히 반(反)이회창 정서를 드러낸 YS와의 회동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정가에선 YS와 김윤환 전의원, 정몽준 의원이 연대하는 ‘반이회창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마저 나돌고 있는 상태.

아뭏든 그가 조금씩 잠룡의 틀을 벗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차기 대선을 불과 2년여 앞둔 시점에서 그가 택할 수있는 정치적 행보는 대략 3가지로 해석된다.


민주당 입당은 아직도 유효한가

그의 정치행보 중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길이다. 민주당에선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그의 효용가치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선 8·30 전당대회에서 김기재 의원의 낙선으로 부산-경남(PK) 출신 최고위원이 한명도 없다. 여권에선 “PK지역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 의원이라면 현상황에선 최고의 카드임이 분명하다. 때문에 여권내에선 정 의원의 조기입당설까지 나돌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헌당규를 손질하며 ‘합당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회의를 통해 최고위원 수를 늘릴 수 있다’고 명문화해두었다. 정 의원이 입당 결심만 한다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그는 당장 최고위원이 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차기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도 그는 여권에 꼭 필요한 존재다. 그가 차기 대권후보로 낙점을 받든 안받든 울산의 ‘현대 왕국’을 기반으로 한 그는 PK지역을 뚫을 수 있는 가장 현실성있는 돌파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의원측은 조기 입당 가능성에 고개를 젓는다. 한 측근은 “지금 상황에선 ‘썸데이’(someday)가 아니라 ‘네버’(never)”라고 일축했다.

“정 의원이 정치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던 만큼 지금은 여러사람을 만나 정치적 장래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을 시기”라며 “(여권이)필요하다고 자기 생각에 끼워맞춰 말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측은 “정당을 택해야 하고 정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그에 따른 당과 조직 등의 논리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야당행은 가능할까

정 의원측에선 “누구든 만날 수 있고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유연한 입장. 그러나 그의 야당행을 점치는 사람은 없다. 대권도전이 확실한 이총재의 한나라당을 택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도 이미 그를 ‘여권의 사람’으로 간주하며 거리를 두고 있다. 정 의원측에선 “국회에서의 주요 현안이 있을 때 여당에선 계속 연락이 오는데 한나라당에선 ‘어떻게 하자’는 전화도 한통이 없다”고 말했다.


독자세력화도 가능하다

최근 정 의원의 캠프를 유심히 들여다 보면 그가 국민당을 이끌고 대선을 치렀던 아버지 정주영 전명예회장처럼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돈다. 정가에선 그가 이미 현대중공업 멤버들을 중심으로 대권전략팀을 구성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정 의원의 최측근 인사는 이에 대해 “독자기반을 다질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옛날에 한번 해보지 않았느냐”며 “큰 그림은 그리는 분에게 달려있는 것”이라며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와 관련, 최근 들어 정 의원이 공석인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장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만약 정 의원이 월드컵 조직위원장이 된다면 그의 스포츠 정치는 월드컵과 함께 대선 직전에 화려하게 휘날레를 장식할 수 있게 된다. 월드컵 바람을 등에 업은 그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독자적 대선출마까지 노리는 포석이 그려진다는 뜻이다.

정 의원측에선 이에 대해 “조직위원장직이 오랫동안 공석이 되다보니 나온 이야기”라며 “정 의원은 ‘조직위원장이 경륜과 명망있는 분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완곡하게 말하나 그 가능성을 완전 부정하지도 않는다.

정 의원이 독자세력화 할 경우 여권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가에선 “오히려 여권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권재창출이 최우선 목표인 여권에선 ‘영남권 분열’을 가져올 ‘정몽준 변수’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 의원은 지금도 정가의 풍향을 돌아보며 몸값높이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가에선 그가 앞으로도 정치적 행보를 활발히 하면서 여권의 후보경쟁에 뛰어들든지, 독자 세력화를 하든지, 구체적인 결심은 한동안 미룰 것이라고 관측한다. 대선까지 2년여간 숱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 자명한 만큼 정중동 속에 정치인 정몽준을 이미지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월드컵바람이 불 때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태희 정치부 기자 taeheelee@hk.co.kr

입력시간 2000/09/2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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