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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비상] 한국경제 앞길 '캄캄'

IMF 이후 최대위기, 물 건너가는 '고성장 저물가'

에너지는 경제의 피다. 대동맥을 타고 에너지가 돌아야 기계도 만들고 공장도 짓는다. 문제는 그렇게 번 돈으로 혈액을 사들여와 지속적으로 수혈해야 한다는 점이고, 현재 그 가격이 우리 경제 자체를 결딴낼 기세로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과천의 한 경제부처 모 국장은 점심식사 도중에 “유가 도입단가가 배럴당 30달러 위에서 지속되면 솔직히 별 대책이 없다”고 고백했다. ‘고성장-저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몰이의 경제운용 목표는 고사하고 무역수지 목표(100억 달러 흑자) 달성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년은 더 큰 문제다. 유가급등에 따른 물가인상 효과는 당장에도 문제지만 6개월 후부터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타이밍도 썩 나쁘다.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물가인상-실물경기 추락’의 악순환(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산업투자·생산 위축을 감소해야 한다. 그렇다고 환율로 물가를 잡을 경우 무역이 결딴 날 형국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초대형 태풍 사오마이 이상의 메가톤급 태풍 앞에 놓여있다.


유가인상분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

정부의 에너지가격 현실화 방침에 따라 국제유가 인상분은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에 그대로 반영될 전망이다. 국제원유가 배럴당 1달러 인상될 때마다 국내 휘발유가격은 ℓ당 약 12원이 오른다는 정유업계의 계산을 적용하면 현재 1,329원대(27달러 기준)인 휘발유 ℓ당 가격은 내달에 약 1,353원(29달러 기준)에 이르게 되는 셈이다.

등유 벙커C유 등 난방유나 액화석유가스(LPG)도 예외는 아니다. 그뿐인가. 전기요금도 오른다. 정부가 추진중인 전기요금 현실화방안은 주택용의 경우 사용량에 따라 7단계로 구분한 현행 요금체계를 4~5단계로 줄이거나, 체계는 현행대로 두되 일정량 이상을 소모하는 다소비계층에 한해 단계별 할증요율을 50% 이상(가격기준 20%) 인상하는 방안을 놓고 부처간·당정간 협의를 벌일 방침이다.

이 경우 400kWh 이상 사용가구의 전기요금부담은 월 7만1,000원에서 8만8,000원선으로 조정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전력소비의 60%를 차지하는 산업용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산업용 전기의 요금은 대만의 80%, 일본의 30% 수준이고, 주택용에 비해서도 54%에 그치고 있다. 이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교통·공공요금은 물론 국제 원자재가격 인상과 생산비용 증가에 따른 제품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의 올 물가 억제선은 연 2.5%(하반기 2.8%). 원유가격이 10% 오르면 물가는 0.27% 인상된다는 한국은행 공식에 9월 현재 유가인상분(약 50%)을 대입하면 1.5% 포인트라는 답이 나온다.


원자재가격 상승, 무역수지에 치명타

고유가는 무역수지에 치명적이다. 올해 흑자 목표는 유가 배럴당 25달러를 기준으로 최소 100억 달러. 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수출이 1억 달러 줄고 수입이 9억 달러 늘어난다는 무역협회 추정에 근거하면 평균 유가가 27달러에 이르더라도 20억 달러 이상 목표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들어 지난 7월까지 원유 도입량은 4% 늘어난 반면 수입액은 141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105.4%)늘었다.

수출업계의 여건도 최악의 국면을 넘나들고 있다. 고유가는 석유화학의 주원료인 나프타는 물론이고 철강, 비철금속 등 원자재 가격을 동반상승시키고 있다. 임금 인상폭도 만만찮다. 게다가 달러당 환율은 1,110원대의 안정세를 벗어나 강세로 반전, 총 생산량의 70%를 수출에 의존하는 섬유 등 일부 업종은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폭증한 생산비용을 수출가격에 전가할 경우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당수 업종에서 이미 본전수출, 적자수출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수산업도 위축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자동차산업연구소는 최근 국내 휘발유 가격이 10% 오를 때마다 자동차 수요는 5.1~8.3%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즉, 휘발유값이 평균 1,300원이면 내수는 전체 158만대의 4.1%인 6만5,000대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자동차업계의 매출은 약 7,790억원이 줄어든다. 항공업계도 국제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연간 100~300억원 안팎의 비용이 더 들고 생산비용 대비 원유(나프타)비중이 절대적인 정유·유화업계도 죽을 맛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유가가 25% 오를 경우 제조업체 경상이익률이 0.5% 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고물가 저성장 경기침체' 악순환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물가상승-소비위축-경기침체’의 악순환이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금융경색으로 돈의 흐름이 막힌데다 국내 경기도 하강국면에 접어들어 ‘고물가-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분석을 보면 내년 원유도입 단가가 40달러까지 상승하면 GDP 성장률은 정부 예상(약 6%선)보다 최소 0.5% 포인트 떨어지게 된다. 소비자물가도 3.5% 포인트 높아져 6.5%대에 이르게 된다. GDP 성장률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대로 주저앉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세계 경기도 낙관하기 힘든 실정이다. 세계 석유소비의 15%를 차지하는 유럽의 경우 최근 유가상승으로 물가상승률이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인 연 2.0%를 크게 웃돌고 있다. 물가압박에 못이겨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잇달아 인상하면서 경기둔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심상찮다.

세계 경기 침체기를 상정한 우리 경제의 앞길은 너무나 암담하다. 수출로 지탱하는 국가경제에 수출 활로가 막히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시나리오다. 당연히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도 무역수지 흑자기조가 흔들릴 지 모른다는 것.

정부 고위관계자는 “하반기와 내년에 우리가 도입하는 원유가격이 30달러대에서 지속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25달러대 안정유가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든 만큼 정부와 민간이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변동에 따른 주요 경제지표 변화

▲30달러 경제성장률 -0.6%
          소비자물가 1.15%
          무역수지 -50억달러

▲35달러 경제성장률 -1.2%
          소비자물가 2.30%
          무역수지 -100억달러

▲40달러 경제성장률 -1.8%
           소비자물가 2.55%
          무역수지 -150억달러

<자료 : 삼성경제연구소>

최윤필 경제부 기자 walden@hk.co.kr

입력시간 2000/09/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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