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순례(29)] 네슬레

인스턴트 커피 원조, 세계 최대 식품회사

한국의 재벌 총수와 얼핏 이미지가 비슷한 다국적 기업의 총수를 든다면 첫 손가락에 네슬레 그룹의 헬무트 마우허 회장을 꼽게 된다. 세계 정상급 CEO의 인생관과 경영철학을 분석한 ‘자신을 믿어라’(볼프강 헤를레스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에 따르면 마우허 회장은 우선 가부장적이다.

그는 일관성 있고 엄격한 경영방식으로 유례없는 팽창정책에 성공했다. 둘째, 마우허 회장은 보수적이고 꼼꼼하다. 사소한 것부터 스스로 챙길 뿐 아니라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없다.

네슬레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다. 네슬레는 오늘의 네슬레를 키워낸 인물로 마우허 회장을 드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적 재벌 총수의 특성으로 지적되는 가부장적, 보수적 경영방식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고 있단 말인가. 마우허 회장은 “절반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머지 절반은 무엇일까. 마우허 회장은 “비판을 허용하는 개방적 시스템과 투명성”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시스템과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은 경영자의 가부장적, 보수적 성향은 독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네슬레의 개방적 시스템은 국제화 전략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네슬레 본사는 레만호 북쪽 끝인 베베에 자리잡고 있다. 본사 소재지로 보자면 네슬레는 분명 스위스 회사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네슬레는 스위스 냄새를 거의 풍기지 않는다. 네슬레의 국제화는 국적이란 거추장스런 탈을 벗어던지는데서 시작했다.


국적을 초월한 '경영의 국제화'

네슬레의 진정한 다국적화는 매출 발생지와 경영진 구성, 주주의 국적, 스위스 본사에서 근무하는 임직원의 국적 등에서 잘 나타난다. 네슬레의 1999년 총매출은 약 500억 달러. 이중 스위스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했고 나머지 98% 이상의 거래가 해외에서 외국통화로 이뤄졌다.

회장 및 기능별·지역별 사장급 경영진 8명은 7개국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주주의 50%가 비스위스계이고 본사에서 근무하는 임직원은 68개국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네슬레는 식품에 관한한 문어발식의 사업 다각화 양상을 보여준다. 영유아식, 인스턴트 커피, 분말 유제품, 초콜릿, 스프, 광천수, 아이스크림, 씨리얼, 애견식품 등에서 8,500개가 넘는 브랜드를 갖고 있다.

여기다 식품과 무관한 의료기기 분야에서 총매출의 4%를 내고 있고, 화장품업체인 로레알의 지주회사 지분 49%도 갖고 있다. 자체 신제품 개발 및 거듭된 인수합병의 결과다. 이같은 사업 다각화에 대한 네슬레측의 대답은 간단하다. “문제는 수익이다.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식품은 역시 맛이다. 입맛에 맞추지 못하는 식품은 팔리지 않는다. 네슬레의 국제화 전략은 ‘입맛의 현지화’로 상징된다. 입맛은 지역 따라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다.

네슬레의 매출에서 식품, 음료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95%에 이른다. 제각기 다른 입맛에 맞추기 위한 제품의 차별화는 네슬레의 주요한 상품개발 목표다. 네슬레는 이를 위해 연간 9억 스위스프랑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4개 대륙에 연구개발센터 16개를 두고 연구원 3,5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연구개발의 중추는 1987년 가동을 시작한 로잔의 네슬레 리서치 센터. 30여개국 출신의 연구원 600여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의 연구는 단순한 입맛을 넘어 생화학과 면역학, 공학, 식품과학, 미생물학, 생리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원재료 연구에서 소화를 비롯한 인체의 신진대사, 영양까지 본질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과제다.


인수합병으로 덩치 키워

네슬레의 로고는 어미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고 있는, 작은 새둥지의 모습이다. 네슬레는 스위스의 공용어중 하나인 프랑스말로 ‘작은 둥지’란 뜻이다. 1867년 네슬레를 창업한 앙리 네슬레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네슬레의 창업은 어린이용 음식을 궁리하던 끝에 나왔다. 그때그때 음식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먹일 수 있는 방법으로 농축 우유제품을 만들어냈다. 네슬레의 근간인 이유식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세계 최초의 유아식 개발에 이어 인스턴트 커피(네스카페)도 네슬레가 원조다. 냉동건조 커피 역시 네슬레가 최초로 개발했다.

네슬레는 20세기 들어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며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웠다. 1905년 앵글로-스위스 농축 우유업체를 합병해 영국으로 진출했고, 1947년에는 가공식품업체 매기를 인수했다.

광천수회사 비텔(1969년), 커피크리머회사 카네이션(1985년), 음료업체 페리에(1992년), 애완동물사료업체 알포(1994년)를 잇달아 인수합병했다. 네슬레는 현재 세계 77개국에 현지법인과 500여개의 생산시설을 두고 직원 23만9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식품회사로는 세계 최대, 기업 규모에서는 유럽내 8위, 세계 31위가 네슬레의 현주소다.

네슬레의 지역별 시장 점유율은 유럽 36.3%, 미주 29.5%, 아시아·태평양·아프리카 18.2% 등의 순이다. 아시아 시장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다. 네슬레가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79년 한서식품과의 합작을 통해서다.

1987년 한국네슬레를 설립했으며 1993년에는 네슬레식품으로 이름을 바꾼 한서식품을 흡수했다. 한국네슬레는 100% 네슬레 본사 소유다. 지난해까지 대한 누적투자액은 1억2,578만 달러에 달해 주한 외국기업 중 11위를 차지했다.


한국서 생산된 커피 동남아 러시아등지로 수출

한국네슬레의 생산시설은 1979년부터 가동한 청주공장이다. 테이스터스 초이스, 네스카페, 커피메이트, 쎄레락, 네스퀵, 네스티, 프리스키 알포 등이 여기서 생산되는 주요 브랜드. 지난해 3만3,406톤을 생산한데 이어 올해는 1,400여톤을 증산할 계획이다. 한국네슬레의 제품은 홍콩, 대만, 호주, 뉴질랜드,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으며 올 7월에는 커피의 본고장인 미국에 처음으로 수출했다.

네슬레의 21세기 전략은 단순하다. 네슬레의 슬로건은 ‘어디서나,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으로 요약된다. 시간, 장소, 방법을 불문하고 네슬레 제품을 소비자에게 팔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네슬레는 1997년 9월 국제적십자 북한 어린이 돕기 캠페인에 동참해 쎄레락 80톤을 증정함으로써 북한땅에 제품을 밀어넣었다. 식품회사로서 네슬레의 성장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연간 매출규모 4%의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네슬레의 목표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9/20 18:19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