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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수사' 2라운드, 결론은?

1차 수사결과 '단순 사기극'에 검찰도 당황, 재수사 서둘러

“우리가 믿지 않고서야 어떻게 국민을 납득시키겠나”

9월 14일 오후4시 서울지검 6층 소회의실. 청사 전체가 추석 연휴의 여파로 느슨해진 것과 달리 회의장안은 김각영 지검장의 기조 발언으로 싸늘하게 식어갔다.

중간수사 결과 발표이후 일주일이 흘렀건만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에 대한 의혹은 도깨비불처럼 검찰청사를 떠돌고 있었다. “검사인 우리들도 납득하기 힘든 수사결과”라는 내부 비판마저 일자 마침내 검사장이 나서 부장검사 이상 간부들을 상대로 수사 설명회를 겸한 확대간부회의를 열었다.

김 지검장은 1989년 ‘이철규군 사망사건’당시 수사팀장으로 수사결과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을 통해 비난여론을 잠재운 사례까지 인용하며 내부단결을 강조했다. 회의는 퇴근시간을 목적에 둔 5시40분께야 끝이 났다.


수사결과에 국민들 냉소

시간을 앞으로 돌려 8일 오후2시, 장소는 마찬가지로 지검 소회의실. 수사팀을 지휘했던 홍석조 2차장 검사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창섭(구속) 전 한빛은행 관악지점장과 아크월드 등 중소기업 대표들이 기존 대출금 상환을 위해 공모한 단순사기극’이라는게 발표요지였다. 이 과정에서 신씨는 4개 업체 대표로부터 사례비로 4,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발표후 홍 차장검사는 기자들을 만나 “능력이 부족해 밝혀내지 못한 부분은 있을지 몰라도 필요한 수사는 다했다”고 수사 결과에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검찰이 완결판으로 자신했던 이 사건은 수사 결과에 대한 일반 국민의 냉소는 물론 여권 내부의 불신마저 낳았다.

시중은행의 한 간부직원은 “한빛은행의 시스템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나 일개 지점장이 본점 몰래 처리할 수 있는 여신이 그처럼 방대했다는 검찰발표엔 웃음밖에 안 나온다”고 비꼬았다. 서울 서초동의 한 개업변호사는 “수사에 있어서 우리나라 최고라는 서울지검이 20여일동안 얻어낸 것이 고작 은행의 고발내용을 확인한 정도라면 누가 믿겠나”고 반문했다.

급기야는 지난해 검찰과 여권을 사면초가로 몰아넣은 옷로비사건의 악령을 되살리지 않기 위해 국정조사와 특검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이같은 위기감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되는 14일 확대간부회의에선 수사상 미진함에 대한 강도 높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간부들은 “하루 평균 2시간밖에 잠을 못잤다”는 수사팀의 노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건의 출발선인 불법대출 동기부터 석연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불법대출 행태는 소상히 밝혀졌지만 정작 왜 불법대출이 이뤄졌는지는 별로 밝혀진 것이 없다”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린다고 사실 관계를 규명하지 못한다는게 말이 되나” 등의 직격탄이 날아들기도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부장검사는 “사건의 ABC인 불법대출 동기에 대한 수사의 미진함이 결국 갖가지 외압설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고 전했다.

회의가 격렬했음을 반증하듯 홍 차장검사는 이튿날인 15일 “수사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 전반적으로 다시 되짚어볼 계획”이라며 사실상 재수사 돌입을 선언했다.


검찰 “재수사 아니다” 과민 반응

그는 그러나 재수사의 성격에 대해선 “중간수사결과 발표이후의 후속조치”라며 일정한 선을 그었고 대검 고위관계자도 “전면 재수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찰이 굳이 재수사란 말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사결과가 나오더라도 후유증을 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수사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당초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반면 중간발표 때처럼 단순사기극으로 수사를 매듭짓는다면 “여론의 눈치에 못이겨 해명성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본전찾기도 쉽지않게 됐다”는 한 검사의 말에서 검찰의 곤혹스런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재수사의 방향은 중간수사 발표의 기본 줄거리를 유지한채 불법대출이나 은행감사 과정에서의 압력 행사와 관련된 ‘뇌관해체식’ 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검찰은 국정조사나 특검제 도입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치공세에 빌미를 줄 수 있는 위험요인을 사전에 제거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검찰수사는 한빛은행의 대외접촉 창구로 불법대출 및 감사과정 전반에 등장하는 이수길 부행장의 석연치 않은 행적 추적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수사팀도 지난 1월 은행검사실에서 관악지점의 150억원 부실대출을 발견하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부분을 가장 의심쩍은 대목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 검사실 관계자들이 이 부행장의 외압행사 의혹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짜맞추기식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당시 검사팀장이자 신씨의 입행동기인 도모씨가 전결사항이 아님에도 자체적으로 1월 감사를 전결처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도씨는 1차 조사때 “상환 가능성을 감안할 때 관악지점의 대출액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은행차원의 압력을 부인한 바 있다.


외압여부에 맞춰질 재수사 초점

결국 재수사의 관전 포인트는 안팎의 비판에 떠밀린 검찰이 은행 관계자들 진술의 허점을 얼마나 파고들 수 있을지에 집중된다고 할 수 있다.

은행내압과는 별도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의혹의 정점으로 하는 은행외부의 대출압력도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당초 아크월드 대표 박혜룡(구속)씨가 박장관의 조카를 자칭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외압의혹은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건과 맞물려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다.

현재는 박장관의 보증 압력과 이에 따른 사직동팀의 청부수사설을 제기한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수배중)씨가 도심에서 ‘게릴라식 폭로전’을 벌이면서 여권 실세의 관련설이 속속 양산되고 있다.

박 장관이 지난 5월과 8월 3차례에 걸쳐 이씨측과 접촉, 이씨의 검찰출두를 조건으로 선처약속을 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박 장관의 사후개입은 기정사실화됐다. 또 이씨의 모교(동국대) 동창회장인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이 동창회측으로부터 당시 박지원 공보수석의 부당한 압력을 호소하는 문건을 전달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한빛은행의 이 부행장과 신용보증기금 손용문 전무가 절친한 사이이고 각각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의 고종 사촌과 고교 후배로 알려지면서 검찰이 별개라고 해명한 두 사건이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재수사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운영씨를 둘러싼 정·관계 실세 관련설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국정조사와 특검제로 이어지는 검찰로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검찰이 불과 1,300만원의 대출 사례비를 받은 혐의로 기소중지된 이운영씨에 대해 800여명의 병력을 동원, 검거에 목을 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손석민 사회부기자 hermes@hk.co.kr

입력시간 2000/09/2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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