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북한과 미군

얼마전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가 통일된 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또 며칠이 지난 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삵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돌아왔다”면서 “식량원조가 북한을 기사회생시켰다”고 1면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미국이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공화·민주 양당 대통령 후보의 대외정책 방향에 관심이 쏠리면서 한반도 정책 방향이 각 당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강한 미국, 위대한 미국’을 내세우는 공화당의 부시 후보 진영에서는 핵무기나 미사일 등의 위협 요인을 안고 있는 북한에 대해 보다 강경책을 써야한다며 현 민주당 행정부의 북한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의 고어 후보 진영에서는 현정부의 정책을 별 수정 없이 따라갈 것 같다.

공화당의 전통적인 대북 강경정책은 북한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던 역대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환영받아 왔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우리나라 국민은 미국에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와 북한 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 정상간의 만남이라든지 이산가족 상호 방문 등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과거처럼 공화당 정부 식의 대북 강경책이 우리의 이해에 맞지 않을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요사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주한 미군에 대한 여러가지 시비를 고려할 때 통일을 준비하는 새 천년에 한미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미국민에게 있어서 한국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보면 뉴욕이나 로스엔젤레스가 별 차이 없이 느껴지는 것처럼 대다수의 미국민에게는 한국이나 한반도는 싱가로프나 대만처럼 별반 다름이 없이 느껴질 것이다. 다만 한국이 다른 점은 자신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물론 한국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주한 미군으로 주둔하거나 외교 공무원으로 한국에서 근무한 사람 중에 각별히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밖에 여러가지 사업상 이유로 한국에, 아니 어찌 보면 한국 기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물론 많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다수의 미국민에게 있어서 한국과 한반도는 아시아의 한 조그만 국가일 뿐이다. 그만큼 미국은 전반적으로 국제 문제에 대해 둔감한 편이다.

지난 20세기 후반 동안 한국민에게 있어서 미국은 항상 화두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함께 싸운 혈맹이며 수출입국을 통한 경제개발의 시장을 제공해 주었으며 현대 정치·사회제도의 모델이 되어온 나라였다.

따라서 영어교육의 열풍은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를 더해가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면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미국은 타도의 대상으로서, 민족의 원수로서 자리매김되어 역시 지난 50년간 화두의 중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미국이 21세기를 맞이하여 한반도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려는 것 같다. SOFA 개정을 요구하며 주한 미군의 독극물 방류를 격렬히 규탄하는 모습을 보면 남쪽에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미군철수를 요구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반면 반도의 북쪽에서는 통일 후에도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여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앞으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러나 대다수의 미국민에게 있어서 한반도는 여전히 아시아의 많은 국가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럴진대 SOFA 협상이건, 노근리 배상문제가 되었건 미국을 대하는데 있어서 굳이 우리가 감정적으로 먼저 흥분한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09/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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