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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보는 세계] 일본- 정치·군사적 변화에 촉각 곤두세워

“6월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연대 강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한·미·일 3국의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반대축의 3국, 특히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서둘러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맞았다.”

지난달 북일 국교정상화 10차 교섭이 끝난 직후 일본 외무성의 한 고위관리는 본격적인 대북 관계 개선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과거 청산, 핵·미사일 문제 등 현안도 현안이지만 한반도 주변 정세가 워낙 복잡해지고 있어 정책 판단이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일본에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가 북일 관계 개선에 자극제가 되리라는 기대가 무성했다. 7월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사상 최초의 북일 외무장관 회담이 이뤄졌고 도쿄와 치바(千葉)현에서 열린 10차 수교 교섭도 원만하게 끝났다.

미국 항공사의 엄격한 탑승 수속에 반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평양으로 되돌아 가는 바람에 불발했지만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서의 모리 요시로총리와 김위원장의 정상급 회담도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서두르는 대북관계 정상화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주변의 정세 변화에서 뒤처져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 직전에 이뤄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중·방북을 통해 러시아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부각했다. 순조롭지는 않지만 북미 대화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만이 홀로 북한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상황은 시급한 해결을 요하고 있다.

북한도 일본을 제쳐둘 입장이 아니다. 게이오대학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우선은 미국과의 교섭이 한계에 이르러 있다. 또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북미 교섭축을 제대로 가동하기 어렵다. 먼저 남북 화해와 보조 장치인 대일 관계개선 기조를 다져 미국 차기 정권으로 부터 온건 노선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한편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대일 접근의 직접적인 요인이다. 최악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경제가 바닥을 기고 있다. 2002년 2월 김위원장의 환갑때까지 경제를 궤도위에 올리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 들여야 한다. 한국이 우선 고려 대상이지만 궁극적으로 일본의 지원이 불가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국교 정상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양측의 현안은 대화를 거듭하면서 풀려 나가겠지만 대규모 자금 이동으로 이어질 ‘식민지 보상’은 경제적 차원을 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액수에 대한 협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예에 비추어 100억 달러, 심지어 200억 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

외무성의 고위 관계자는 얼마전 사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거액의 자금이 일시에 북한에 흘러 들어갈 경우 한반도의 세력 균형이 흔들릴 가능성까지 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주변의 새로운 정세와의 정합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군사적 영향을 포함한 포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남북 화해 흐름을 타고 대북 관계 개선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지만 최종적인 관계 개선에는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의 고민을 요약하고 있다.


민족주의 돌출에 경계심

남북 화해를 지켜보면서 일본이 느끼는 또 하나의 불안은 한동안 잠잠했던 한국의 민족주의가 폭발, 모처럼 밀월기를 맞은 한일 양국 관계를 해칠 가능성이다. 그 경우 독도 문제가 가장 먼저 뇌관이 되리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남북 민간이 공동으로 독도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고 일본의 여론이 자극될 경우 언제든 정면 외교 충돌을 부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는 주한 미군 문제로도 이어진다. 통일 이후에도 주한 미군의 존재는 필요하다는 김대중대통령의 설명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감을 표했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오사카대학 사카모트 가즈야 교수는 “당장은 아니지만 중국·북한의 태도로 보아 남북 화해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민족주의 시각에서 북한이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국에서 주한 미군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될 경우 일본에서도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한 주일 미군 문제가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다. 일본의 안보가 주일 미군의 존재를 핵으로 한 미일안보체제를 축으로 해 왔다는 점에서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위협’부각, 새로운 고민거리로

남북 화해를 바라보는 방위청 주변의 시각에도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긍정적인 시각은 남북의 화해, 북한의 온건화가 한동안 일본 안보의 현안이었던 ‘북한 위협’을 제거할 것이라는 관측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북한 위협’의 희석이 결과적으로 ‘중국 위협’의 부각을 부른다는 점에서 방위청의 우려는 남는다. 한 관계자는 “북한 위협은 보다 거대한 중국 위협을 가려주는 측면도 있었다”며 “앞으로 중국을 직접 겨냥한 방위정책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은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본은 중국과의 사이에 우호국인 한국, 적대적이지만 커다란 위협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북한이라는 2중의 완충지대를 갖고 있었다. 남북 화해로 완충지대가 한겹으로 줄고 중국이 한결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런 진단은 북한 위협을 이유로 추진해 온 일련의 방위력 증강이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공중급유기나 정찰위성의 도입 계획은 물론 미국과 공동연구에 나서는 전역미사일방위(TMD) 등이 모두 그렇다.

북한 위협의 감소가 일본의 방위력 증강에 대한 중국의 보다 강한 반발, 나아가 중일 양측의 군비경쟁을 부를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주변에 꿈틀거리는 새로운 질서는 외교·안보 양면에서 일본에 기대와 고민을 동시에 안기고 있다.



황영식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0/09/2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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