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노벨 평화상 이야기

모든 일이 그렇지만 노벨 평화상도 받고 싶다고 받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9월 27일 마지막 정례회의를 마친 노르웨이 노벨 평화상 위원회는 “10월13일 공개될 노벨 평화상 후보가 결정되었으나 그 이상은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발표 당일까지는 평화상 위원회 위원(전 노르웨이 국회의원 5인)과 투표권 없이 참가한 사무총장 등 6명만이 올해 수상자를 알고 있을 뿐이다.

올해에는 “아시아에서 관계개선에 노력한” 김대중 대통령, 미국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 카터 전 대통령, 전 핀란드 대통령 마르티 아티사리(발칸 평화노력) 등 115명이 후보로 올랐다. 단체로는 구세군, `인권감시기구'등 35개 단체였다.

특이한 것은 코소보 사태에 15만명의 난민을 도운 알바니아의 쿠크스 마을이 들어간 점이다. 투표권 없이 선발회의에 참가한 룽데슈타트 사무총장은 “우리는 앞으로 2주동안 비밀을 지킬 것이며 그 때까지 언론의 추측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 이후 14차례 후보에 올랐다.

노벨상 위원회와는 별도로 노르웨이 베르겐에 본부를 둔 라포트 인권재단8?은 김 대통령을 올해의 `라포트 인권상'수상자로 선정했다. 이 상은 90년 미얀마 반체제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가 수상 한 바 있다.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을 정치판에서는 어떻게 볼까. 김영삼 (YS)전대통령과 야당은 비아냥거렸다. YS측의 2,000만 서명운동을 이끄는 전위대 노릇을 할 `민주 산악회'의 오경의 새회장(13대 국회의원. 전 마사회장)은 색다른 주장을 했다.

“통일은 내가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라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호언은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의 대북 저자세 외교는 “잘 모르지만, 노벨상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끌려 다니기만 하면 대한민국이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월간조선 10월호)

어떻든 노벨 평화상은 수상 후보자가 바란다고 주는 것도 아니고 수상자가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미국 26대 대통령 1901~1909)는 미국 대통령으로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05년 미국 포츠머드에서 러.일 전쟁을 중재한 공로로 1906년의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이 조약으로 한국을 병합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미국이 러시아 편에 섰다고 미국과 `맞 붙겠다'고 했다. T.R(루즈벨트의 약칭)은 이 때문인지 이 평화상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 퇴임후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즐긴 뒤 유럽에 들러 오슬로에서 수락 연설을 했다.(1910년 10월)

8? T.R는 “평화 자체는 선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의로 만들어 지지 않을 때는 최선이 아니다. 어떤 국가든, 개인이든, 이런 덕목이 침략당할 때 싸우지 않는다면 그 개인이나 나라는 없다.”고 강연했다. 루즈벨트의 유럽 여행에 돈을 댔던 철강왕 카네기가 원했던 군축에 의한 평화와는 전연 다른 개념의 평화론이었다.

미국 대통령으로 두번째로 평화상을 받은 이는 우드로 윌슨(제28대. 1913년~1921년 재임)이었다. 그는 1920년 국제연맹을 창설한 공으로 이 상을 받았다. 그는 1차대전을 마무리하는 베르사이유 조약을 위한 평화회담에서 오늘까지도 계속되는 국제기구를 통한 무력 없는 평화를 주장했다.

그가 구상한 국제연맹은 평화를 보존하는 기구이기 보다는 평화를 둘러싼 각국 정책의 잘못을 토론하고 시정하는 `최상위 국제의회'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구상이 세계 인민의 여론과 양식으로 실현되리라고 보았고 이를 주장했다.

미국에 돌아온 그는 이런 이상을 상원의 다수를 차지한 공화당을 제치고 전국민을 상대로 유세를 벌이다 1919년 10월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연설대에 나섰으나 끝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나머지 17개월 임기를 마쳐야 했다.

미국은 국제연맹과 평화조약에 가입도, 서명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차 대전으로 유엔 창설로 향했다.

평화상은 수상해도 그렇게 그 정신을 지키기 어렵다. 아직도 오른쪽, 왼쪽의 목소리가 높은 한반도에 평화상은 준다 해도 거절하는게 나을지 모른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 교수

입력시간 2000/10/0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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