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열풍] 골프 국민 스포츠 되려나…

골프는 일반 국민에겐 호화 사치 풍조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온 스포츠다. 그래서 신문 방송 등 언론 매체마다 부유층의 사치 행각을 꼬집을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이런 주변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IMF 직후 한 때 주춤했던 국내 골프 인구가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일부 부유층에 한정돼 있던 골프는 이제 일반 직장인은 물론이고 가정 주부, 심지어는 청소년들에게까지 폭 넓게 확산되고 있다.

골프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동호인 수가 웬만한 스포츠를 능가하지만 아직도 골프에 대한 사회 인식은 따갑기만 하다.


IMF 이후 최고 인기 스포츠, 관련산업도 번창

국내10대 기업 한 계열사의 영업부 과장인 김만식(35)씨는 요즘 회사 동료와 친구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사내에서도 알아주는 `두주 불사'형 주당인 그가 금주를 선언하고 매일 빠짐없이 새벽 운동을 나가는 성실한 스포츠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애주가인 김과장을 변화시킨 것은 다름아닌 골프. 술로 모든 접대 등 영업 일을 처리해 왔던 김과장은 지난해부터 자신이 사무실 동료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는 느8?낌을 자주 받았다. 동료 과장 9명과 부장 등 중간 간부급들이 골프를 안하는 자신만 빼놓고 매달 한번씩 필드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었다.

사무실내에서도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골프 얘기로 꽃을 피우는 바람에 김과장은 고심 끝에 올해 여름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 채를 잡은 지 꼭 3개월만에 김과장은 거의 골프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그는 학창시절 처음 당구를 배웠을 때처럼 요즘에는 잠자리에서도 `녹색 잔디를 가르는' 골프 공이 눈에 아른거린다. 현재 김과장 사무실내 직원 40여 명중 과장, 부장 등 중간 간부들은 물론이고 30대 초반인 대리 고참 사원들은 거의 골프를 한다. 사무실 직원의 절반 이상이 골프를 즐기는 셈이다.

국내 골프 인구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간 `귀족 스포츠'로만 여겨져 왔던 골프가 지난해 탈 IMF 이후 경제 회복과 함께 중년층의 최고 인기 스포츠로 급부상한 것이다. 골프가 상류 계층의 전유물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셈인데 이를 입증하듯 전국의 골프장은 주중에도 초만원 상태다.

골프 입문의 첫 관문인 골프연습장도 새벽부터 몰려드는 골퍼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골프 용품 시장도 덩달아 크게 성장하고 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골프를 즐기는 부류는 정치인, 재벌 회사의 경영진, 정부부처 간부 등 권력층과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로 우리 사회의 극히 적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생활 수준 향상과 스포츠, 레저, 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양에서도 고급 스포츠로 간주되는 골프가 새롭게 부상했다.


공무원 골프금지가 여성골퍼 증가로 이어져

여기에 1980년8?대말 노태우 정권시 전국에 걸쳐 무더기 골프장 건설 허가가 나면서 골프장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골프 붐을 이끄는데 한 역할을 했다. 최근 여성 골퍼들의 갑작스런 증가는 김영삼 문민정부가 실시한 `공무원 골프 금지령'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일반 고위직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골프장 근처에도 얼씬 거리지 못해 골프 인구가 줄어들자 골프장측에서 여성들에게 갖가지 특별 할인 요금을 적용하는 등 `여성 우대' 상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IMF는 이런 골프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메어 터지던 골프장은 불황 여파로 주말에도 팀 수를 채우기 힘들 정도. 그래서 당시 회원권 분양을 실시했던 상당수 골프장들이 부도를 맞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런 IMF 회오리속에서 탈출구가 된 것은 바로 혜성처럼 나타난 `골프여왕'박세리의 미국 무대 석권 낭보였다.

만 20세 순박한 소녀인 그녀가 기라성 같은 외국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하자 침체했던 국내 골프계는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골프가 단지 사치스런 운동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프로야구처럼 당당한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때부터 골프 연습장에는 자식을 `프로 골퍼'로 키우려는 학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골프장사업협회는 현재 국내 골프 동호인 수는 대략 3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96년 200만명이던 것이 불과 4년만에 50% 가량이 증가한 것이다. 골프 인구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내장객 숫자를 살펴보면1990년 328만명에 그치던 내장객 숫자가 매년 15~30% 정도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왔다.

노태우 정권 집권기인8? 1992년까지 30%가 넘는 증가율을 보이다 YS집권 이후에는 평균 10%대로 줄어 들었다. 그러다 IMF가 한창이던 1998년 처음으로 전년도 987만명에 달하던 내장객 수가 847만명으로14.2%나 줄었다.

그러나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이 `골프 대중화'를 선언한데다 경기 회복의 탄력까지 받아 사상 처음으로 1,045만명을 기록, 골프장 내장객 `1,000만명' 시대를 열었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30% 가까이 증가한 1,30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활성화·대중화방안 모색이 바람직

이런 골프 동호인의 급격한 증가세에 힘입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제 골프를 더 이상 사치 스포츠로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서서히 일고 있다.

어차피 300만명이라는 엄청난 국민이 즐기고 있는 골프를 단지 `비용이 많이 든다'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터부시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골프를 활성화하고 대중화 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이 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골프가 일찌감치 정착한 외국과 마찬가지로 골프 이용의 차별화 정책 시행을 든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고액 회원제 골프장에서 즐기도록 하고 일반 서민들은 비용이 저렴한 퍼블릭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나 공익단체가 주최가 돼 유휴지에 퍼블릭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골프의 천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경우 6홀 규모의 퍼블릭 골프장이 전체의 61%를 차지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3~6홀의 퍼블릭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퍼블릭 숫자가 25.3%인 38개에 불과하8?다.

비용도 9홀 기준 평균5만원을 상회해 거의 회원제와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정부가 9홀 골프장에만 적용되던 특별소비세 면제 혜택을 18홀 퍼블릭 골프장에 까지 적용한 것은 적절한 조치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골프 컨설팅사인 GMI의 안용태 사장은 “그간 정부는 조세 정책상의 편의를 위해, 각 언론 매체들은 눈에 띄는 기사를 위해 골프를 호화 사치 스포츠로 몰아 붙여온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하며 “이제 동내 골프연습장에 가면 이웃집 아줌마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골프는 본격적인 대중화 단계에 접어 들었다.

우리 사회도 이제 골프를 건전한 스포츠의 하나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골프 대중화는 국민 위화감 조성, 국토 훼손, 식수 및 토양 오염 등 적잖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00만명에 가까운 국민이 즐기는 골프를 마치 `있는 자들의 사치스런 유희'로 백안시 하는 것도 이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0/10/04 17:37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