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삶의 질을 찾아서?

미국은 이민사회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수많은 유럽인이 새로운 삶을 찾아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서 신대륙에 정착했다. 알다시피 초기 유럽의 이민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넜고 그 이후에는 식민지를 건설하여 본국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이민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건설한 국가가 바로 미합중국이므로 과연 미국은 이민사회일 수밖에 없다.

미합중국이 설립된 후에도 이민의 역사는 계8?속된다. 19세기 초에서 중반에 걸쳐서는 독일 농민이 땅을 찾아 미국으로 이주해 와 중서부 지역에 많이 정착했다. 그후에도 유럽에 대기근이 있거나 재해가 있으면 그 지역 주민이 새로운 삶을 찾아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해왔다.

19세기 말에는 아일랜드인이 기근을 피해 이주해왔으며 20세기 초에는 이탈리아인이 왔다. 2차대전을 전후해서는 나치의 압박을 피해 수많은 유태인이 이주해와 뉴욕을 비롯한 동부지역의 상권을 거머쥐었다.

우리나라의 미국 이민사는 하와이에 사탕수수 노동자로 이주한 것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일본에 강제합병된 후에는 많은 애국 독립지사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였다. 지금도 필라델피아에 가면 당시 서재필 박사가 활동하던 흔적을 여기저기서 8?볼 수 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됐으며 1970년대 초 미국에 의사가 부족하게 되자 이주한 의사들도 많이 있다. 그후로도 한국에서의 미국 이민은 꾸준히 계속됐다.

요즈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최근 들어 부쩍 젊은 층 사이에 해외이민이 인기있다고 한다. “한창 사회의 중추 역할을 30대 젊은이들이 국내의 안정된 직업을 팽개치고 해외이민을 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들에게 “왜 이민을 가느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간다”는 것이다. 즉, 국내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끊임없는 경쟁에 환멸을 느끼며, 이런 경쟁을 헤치고 나가보아야 그 결과가 그리 희망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일찌감치 이민 가서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녀의 교육문제도 이민을 결정하는데 커다란 이유가 된다고 한다.

삶의 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 상대적으로 맑은 강과 바다, 깨끗한 공기, 넓은 주거환경이나 곳곳에 산재한 수풀과 녹지만 본다면 미국의 삶의 질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

더구나 요새 우리나라에서 크게 문제되고 있는 의료 서비스나 노인의 복지를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아이의 교육문제에 들어가면 대학 입시를 위해 저당잡힌 우리나라 어린 학생의 삶은 정말 안타깝다.

그러나 그것이 곧 경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직장인도 동료보다 앞서가기 위해 여러가지 형태의 경쟁을 한다. 능력이나 실적에서의 경쟁은 물론이고 보다 힘있는 사람한테 줄을 서려고 하는 `직장정치'(Office Politics)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름이 없다.

아니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우리처럼 체면이나 남의 이목을 별로 신경쓰지 않을 뿐더러 연공서열이나 연장자 우대의 원칙 등이 이미 파괴돼버린지 오래되기 때문에 오히려 특정 집단이나 그룹에 의한 권력의 행사가 당연히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또 보다 질 높은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쾌적한 대기와 우거진 수풀 등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와 죸?¼민, 기업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 모든 것이 사회적 비용이고 세금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 살다가 귀국한 사람이 농담삼아 이야기하듯 `재미있는 지옥'을 떠나 `재미없는 천국'으로 삶의 질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떠나려면 질 높은 삶을 위한 대가로 `지옥의 재미'를 포기할 준비가 돼있는가를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마음의 준비만 돼있다면 무한 경쟁의 신대륙에서 마음껏 젊음의 정열을 불태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신군자삼락'(新君子三樂)이 되지 않을지.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10/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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