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냅스터' 인생 뒤바뀐 숀 패닝

음악파일 교환프로그램, 18세 대학중태생이 개발

새벽녘인데도 숀 패닝은 개조된 바 카운터 밑에 깔린 카페트 위에 누워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미 60시간째 뜬눈으로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었다. 머리 속에는 흐릿하나마 손에 잡힐 것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을 정리해서 사용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했다. 윈도우 API 표준규약(프로토콜)과 유닉스 서버 명령어를 다듬어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게 그의 아이디어였다. 엄청난 도전에 나선 패닝.

당시 나이는 18세. 대학중퇴생 신분이었다. 그때 매사추세츠에 있는 그의 삼촌 사무실에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선 패닝에게는 친구도, 가족도 없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사이트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소위 `냅스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1999년 중반에대한 그의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정확한 날짜도 모른다. 그냥 삼촌집 소파나 마루에서 델 노트북과 씨름했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소프트웨어 회사가 자신보다 먼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강박감에 밤낮으로 노트북에 매달렸다. 냅스터는 그의 고등학교 별명이다. 친구들이 그의 곱슬머리를 빗대 지어준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컴퓨터 사용자가 서버나8? 중간 교환기를 거치지 않고 직접 다른 사람과 음악 파일을 교환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웹상에서 음악 파일을 찾는 게 얼마나 귀찮고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파일 찾기 및 파일 공유 기능과 커뮤니케이션 및 메세징 기능을 이용하면 음악의 지적소유권 문제와 음악이 깨지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채팅프로그램의 메시징 기능과 윈도우의 파일 공유 기능, 각종 검색엔진의 찾기 및 검색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의 구상을 믿지 않았다. 채팅을 즐겼던 그의 형조차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누구도 공유하려고 하지 않을 것”라고 개발을 말렸다. 패닝은 형을 설득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자신이 있었다.

그의 구상은 적중했다. 형을 이론적으로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끝내 세상을 바꿔놓고 말았다. 냅스터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음반회사들은 비즈니스 모델을 재검토해야 하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음반 회사를 대표한 전국음반협회(RIAA)는 냅스터가 컴퓨터 이용자들에게 지적재산권의 침해를 부추기고 있다며 제소했다.

법적인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냅스터는 이미 엄청난 인터넷 응용 프로그램으로 등재됐다. 냅스터 사이트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 사이트 개설 1년만에2,500만 회원을 기록했다. 사용자에게 냅스터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토스터나 식기세척기와 같다.

로그온하고 다운로드를 받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리고 조작은 너무나 간단하다. 프로그램 개발에 석달이 걸렸다는 8?패닝은 “프로그램에 여러 기능을 첨가하려 했으나 시간이 없었다. 몇가지 기능을 만들어 붙였으나 마지막에 다 없애버렸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P2P시대 개막

1990년대 중반은 디지털 음악에 대한 욕구는 높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디지털 음악의 표준기기는 독일의 프라운호퍼사가 1987년 개발한 MP3. 음악CD로부터 노래를 디지털로 바꿔 MP3로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지적재산권 침해였다. 또한 보다 빠른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은 MP3파일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게 만들었으나 지겹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냅스터가 나타났다. 냅스터의 사용은 온라인상으로 CD를 주문하는 것 보다도 더 편리하고 쉽다.

그러니 “사태를 어떻게 되돌리겠는가. 중단시킬 방안이 없다”고 아틀랜틱 레코드사의 발 아졸리 공동회장은 탄식했다. 그는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음악에 한정된 게 아니라 냅스터와 같은 프로그램에 의한 모든 지적 소유권의 침해”라고 말했다.

냅스터 아이디어는 보스톤의 노스이스턴 대학 기숙사에서 시작됐다. 음악을 좋아하는 룸메이트가 MP3의 연결이 끊어진데 대해 투덜대는 소리를 듣고 패닝은 “웹사이트를 거치지 않고 사람들의 하드 드라이브에 있는 자료를 가져올 수 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라이코스나 스카우어와 같은 검색엔진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PC에 직접 들어가 음악 파일을 가져올 수 있지않을까로 미쳤다.

그 후 그는 농구장에 가든, 피자집을 가든 노트북을 갖고 다녔다. 그러던 1월 어느날 저녁 그는 사촌인 브라이언 패닝과 캠퍼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뜻밖이었다. 뭐든지 한번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 때문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렸다. 그러자 패닝은 집을 나와 컴퓨터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삼촌의 사무실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냅스터 개발을 시작했다.

냅스터는 음악 비즈니스를 바꿨을 뿐만 아니라 고객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소프트웨어인P2P(PC2PC, Peep2 Peep)의 시대를 열었다. 이것은 고객들이 서버를 통하지 않고 직접 파일을 교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냅스터 인덱스와 디렉토리만 중앙서버에 있고 파일은 윈도우 프로토콜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송된다. “옛날에는 모든 것을 중앙에서 통제했는데 이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칼레파 네트워크 공동 CEO 마이코 마추무라는 말했다. 이회사는 P2P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법정싸움으로 번진 지적소유권 문제

냅스터는 지적소유권 문제와 관련,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냅스터를 사용하는 소비자도 불법인가.

변호사 데이비드 보위는 “상업적 이용이냐 아니냐가 핵심”이라면서 “소비자가 스스로 즐기기 위해 음악을 다운받았다면 비상업적이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1992년 판례를 보더라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음악을 녹음해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냅스터의 법정싸움은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을 때까지 6개월~1년 걸릴 것이다. 그동안 음반회사들은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까?.

또 그동안 그누텔라, 프리네트 같은 P2P 회사들이 사업을 진척시키면 주변 여건이 달라질 수 있다. 냅스터가 스쿠터처럼 밀레니엄의 새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버릴지도 모른다.

패닝은 이미 스포츠 스타나 팝스타에 못지않는 스타가 됐다. 경져??전문지 포춘 비즈니스위크 포브스 등에서 표지인물로 등장했고 미시간 대학 야구모자를 쓴 그의 이미지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 천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프로그램 개발자로서 10만달러 가까운 연봉을 받고 회사 지분 8%를 갖고 있지만 아직은 큰 부자가 아니다. 냅스터의 가치가 아직 높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여전히 검소한 생활을 한다. 방두개짜리 아파트에 친구와 함께 산다.

72인치 대형 TV정도가 값나가는 물건이고, 식탁 위에는 피자 박스와 빈 콜라 깡동이 나뒹굴고 있다. 가구는 임대, 자주색 소파는 13살때부터 쓰던 것이다. 여자친구가 있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는 혼자서 프로그램을 만들던 시절의 `패닝'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잡지 표지 인물과 TV인터뷰가 없었던 그 때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냅스터를 개발했던 그 사무실로 되돌아가 냅스터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의 야무진 말이다.

정리: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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