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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토속기공 전문가 양운하

[인간탐구] 토속기공 전문가 양운하

장풍도사 양운하(46). 괴력은 괴력이다.

그 하나 때문에 거대한 공중파 방송사 사이에선 최근 맞싸움까지 벌어졌다. 옆에서 '관전평'을 실은 한 일간지에도 불똥. 본인보다 제3자간에 더 소란스런 접전이었다. 발단은 양씨의 운기방사 시범에 대한 조작 시비.

처음 한 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에서 양씨가 기의 힘을 이용해 사람을 쓰러뜨리는 모습이 화면으로 나간 뒤 타방송사에서 이를 교묘한 사기술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뒤이어 양자간에 역증명과 재반증으로 치고 받는 공방 끝에 소동은 겨우 한숨 잠들었다.

그러나 해당 방송사간엔 아직도 완전 소진되지 않은 불씨. 양씨 역시 할 말은 태산같지만 자신까지 떠들어봐야 문제만 더 커지겠다 싶어 입을 다문 상태다. 한 두번 겪은 일도 아니지만 겪을 때마다 답답하다. 그의 '장풍'은 그만큼 해독 불가, 판정 난해한 난제다. 운기방사의 충격파가 자못 크다.

" 그 후 한 달 동안 산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하도 화가 나고 답답해서 처음엔 가슴에서 불 같은게 막 올라오더라구요. 방송에서 다시 확실하게 보여주긴 했지만 나중엔 이도 저도 다 귀찮아져서 그냥 일본으로 가버릴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운기방사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건 한번쯤 보여주고 지나치는 거지, 중요한 건 기공 그 자체입니다. 가능한 한 언젠가 꼭 미국에 가서 MRI나 원적외선 등 현대 최첨단 장비를 있는 대로 다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기가 실재하는걸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일 겁니다. "


우연한 방송출연 뒤 유명인사

그는 도사도, '장풍' 전문도 아니다. 토속기공으로 단련된, 노련한 기 전문가일뿐이다. 9살때부터 태권도, 유도, 쿵푸 등 오래도록 무술을 연마, 17세때 기공에 입문해 전국의 유명산을 다니며 18년간 산중 수련을 쌓았다.

1991년 우연히 후배가 방송국에 출연을 신청을 하는 통에 처음 방송을 통해 운기방사 시범을 보였고, 그 후 방송과 강연 초청이 쇄도, '양PD'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방송가에서도, 세간에서도 유명인물이 됐다.

지난 10년간 양씨의 토속기공을 접한 사람만 국내외의 개인, 단체를 합쳐 약 40만명. 그중 LG전자 구자홍 회장, 이종찬 전 안기부장, 박봉환 전 동자부장관, 윤병철 하나은행장, 가수 장사익, 이선희씨 등은 그가 직접 지도하기도 했고 최근 한국을 다녀간 미 플레이보이지(誌) 휴 헤프너 회장도 그로부터 기를 받았다.

98년엔 일본 아사히 TV가 그를 취재, 방송하기도 했다. 당시 촬영한 내용은 지금도 충격적인 수준. 한강 1,200m 건너편에 사람들을 세워두고 양씨가 차례로 운기방사로 쓰러뜨려 보였다.

그보다 6년 전인 92년엔 중국의 전문 기공사들을 대상으로 300m 거리에서 운기방사를 성공시키면서 현지인들로부터 '기공대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나중엔 '비법을 가르쳐주기 전엔 안 내보내주겠다'는 협박까지 들었던, 양씨에겐 통쾌한 경험이었다.

" 운기방사는 오랜 수련만으로 가능한 건 아닙니다. 아무리 기수련을 해도 평생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기공외에도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한 거죠. 제 경우엔 부모님부터 워낙 기운이 장사같은 분들이라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원력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이뤄진 것 같습니다. "

손가락 굵기가 엄지발가락 만할 만큼 체격 좋고 힘이 장정 같기로 소문났던 어머니, 큰 과자도매상을 운영한 아버지 또한 일찍이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간 남양군도에서 권투만 했다하면 당할 상대가 없었다고 했다.

그 양친아래 자란 양씨는 어려서부터 박치기로 동네아이들을 휘어잡던 악동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강적을 만났다. 자신이 때린 친구의 형으로부터 처음으로 흠씬 두들겨 맞고 들어온 것. 전승무패를 자랑하던 그가 꼼짝할 수 없었던 건 그 형의 태권도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 중고 시절까지 안 배워본 무술이 없었다. 장래희망도 최고의 무술인이 되는 것이었다.


타고난 힘, 우여곡절 겪으며 기 터득

17세때 서울 망원동에 있는 한 중국무술 도장의 사범 노릇도 하던 중 만난 스님에게 이끌려 기공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스님처럼 산속에서 무도와 기공을 닦겠다며 이름난 산중 기공사들을 찾아 태백산, 지리산 등 전국의 유명산은 모두 돌아다녔다.

산 가까이 방을 얻어 지내며 한때 솔잎과 생식만으로 살아보기도 했고, 긴 수염과 도인같은 자태가 멋있어 따랐던 어떤 돌팔이 스님 아래에선 잘못된 호흡법을 배워 수련 3년만에 장염을 얻어 고생하는 등 갖은 시행착오도 겪어보았다.

제대로 기를 알게 된 건 김식 선생의 가르침 아래서였다. 수련중 어느날 갑자기 아랫배에서 뭔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온 몸을 타고 전류가 흐르는 듯 뜨겁고도 시원한 느낌이 찾아들었다.

단전이 열렸다는 첫 징후였다. 비로소 본격적인 기의 힘을 받게 된 것이다. 그 후 수련을 계속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공법도 만들어냈다. 그것이 토속기공. 어느날 산을 내려오면서 지켜 본 한 연로한 농부로부터 힌트를 얻어 연구한 결과였다.

" 한 할아버지가 몇 시간째 쉬지 않고 똑같은 자세로 보리를 베는데도, 물어보니 전혀 허리가 아프지 않다는 겁니다. 가만히 보니 보리를 베는 동작 자체가 전혀 급하지 않고 마치 춤을 추듯 느리고 부드럽더라구요.

결국 어떤 동작이든 천천히 움직여주면 탈이 생기지 않더라는 거지요. 그게 기공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상모돌리기' '접시돌리기' '물지게 비틀기' 등 토속기공 체조도 그런 선조들의 일상생활과 자연을 본 따 만든 겁니다. "

머릿속에 떠오른 동작들을 다듬고 체계화하는데 무려 12년이 걸렸다. 서울사회체육대학 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실제 기 수련뿐 아니라 이론적인 공부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동양의학은 물론 신경의학, 생체학 등 인체에 관련된 거의 모든 서양의학서들을 두루 공부했다.

그의 설명 가운데 심심찮게 전문적인 의학용어들이 섞여 나오는 것도 그 영향이다. 뿐만아니라 침과 지압, 뜸, 스포츠마사지, 카이로프랙틱(척추지압) 등 다방면의 양 한방 지식들을 현장에서 고루 경험, 토속기공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몸을 통해 몸을 다스리는 토속기능

그중에서도 토속기공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실용성이다. 기존 기공법이 의념(意念)적 기공, 즉 정신으로 기를 움직이는 방법을 쓰는 반면 토속기공은 몸을 통해 몸을 다스려 운기방법이 대조적이다.

기본적인 관점 자체가 정신이 아닌 인체에서 출발, 생물학적 대상으로 인체와 기를 다루다보니 의념적 기공이 보이는 신비주의나 종교적 색채와도 거리가 멀다.

" 특히 의념적 기공법에서 위험한 것으로 자주 지적되는 게 소위 '주화입마'와 같은 정신질환의 부작용인데, 토속기공엔 그런 게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수련 효과도 즉각 나타납니다. 인체에 바로 기를 보내기 때문에 그 영향도 보다 직접적으로 미치는 거죠.

예를 들면 뇌에 생긴 문제는 발가락으로 잡아줍니다. 왼쪽 발가락은 우측 뇌, 오른쪽 발가락은 좌측 뇌와 연결돼있습니다. 사실 어떤 건강의 문제든 알고 보면 우리 몸안에 그 답이 다 들어있습니다. "

토속기공의 기본은 5형 기공, 그가 재정리한 22경락 7규를 이용한 5가지 종류 365개의 동작으로 이뤄져있다. 매 동작마다 최대한 느린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느리디 느린 움직임이 독특하지만, 잠깐 사이에도 온 몸이 땀범벅이 될만큼 운동효과가 크다.

'경영자기공''성형기공' '시력강화기공' 등 자신이 창안한 프로그램중에서도 그가 요즘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토속기공 다이어트'. 지난 8월 5박6일 캠프로도 개최돼 닷새만에 최고 4kg 감량효과를 입증한 이 다이어트법은 특히 식사량을 제한하지 않고도 체중을 감량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비결은 인체를 구성하는 속근, 중간근, 지근중에서도 체지방이 쌓이는 지근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면서 적절한 호흡법으로 그 속 체지방질을 태워 없앤다는 것. 속근을 움직이는 에어로빅이나 테니스 등 격렬한 운동보다도 효과가 더 높고 지속적이란 것이 양씨의 설명이다.


"인간이 물욕을 쫓으면 끝장"

인기도 꾸준하고, 사업도 그만하면 번창일로지만 이상하게도 돈과는 별 인연이 없다.

현재 그가 가진 거라곤 서울 강남의 토속기공학회 사무실과 제주도 감즙으로 물들인 개량한복 몇벌, 그리고 각종 강연과 방송 출연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정도. 그 수입마저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대부분 지출한다.

최근 이혼의 아픔을 겪은 그는 거처조차 부모님댁으로 옮겨 함께 살고 있다. 사실 양씨가 가난한 이유는 뻔하기도 하다. 따라오는 돈도 제 발로 걷어차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한 프로모터에 의해 8억원대 규모의 미국 진출 제의도 받았지만 거절, 자신의 '흥행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에겐 어지간히 비협조적인 인물이다.

그가 지닌 인생의 지조 하나도 '인간이 물욕을 쫓으면 끝장'이라는 거지만, 그 유별난 자존심 때문에 앞으로도 양씨의 재테크는 요원하게만 보인다.

한번 마음에 삐끗하면 얼마를 줘도 절대 두 번 돌아보는 법이 없다. 몇해전 과로에 지친 한 인기드라마 작가가 그로부터 기를 받고자 했을 때도 누구에겐가 "그까짓 기 몇번 받는데 뭔 값이 그렇게 비싸냐"고 했다는 소리를 전해듣고 그도 일언지하에 의뢰를 거절했다.

" 자신의 일만 대단하고 다른 사람의 일은 함부로 우습게 본다면 잘못된 거죠. 가령 제가 반대로 '재료비라곤 볼펜이랑 종이값 밖에 안 드는데 웬 원고료를 그렇게 많이 받냐'고 한다면 어떻겠어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진 않습니다. "

한창 피끓는 무도청년시절엔 별명이 '휘발유'였던 양씨. 후배들에게 뭔가를 말한 뒤 0.3초안에 바로 응답이 없으면 곧바로 '불이 붙는다'고 해서 그리 불렸던 그가 이젠 '머털도사'로 통한다. 기공과 더불어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나이.

요즘은 어쩌다 무고하게 멱살을 잡힌 채 500m를 끌려가도 자제할 수 있을 만큼 여유와 인내의 살이 붙었다. 유명세란 것도 그렇다. 요즘도 술집에만 갔다하면 심심찮게 겪는 이런 스트레스에도 그는 이제 요령쟁이가 다 됐다.

" 느닷없이 찾아와서는 시비를 걸 듯이 '어디 한번 나한테도 지금 장풍을 써보라'는 사람들이 한둘쯤 꼭 있어요. 몹시 불쾌하죠. 그럴 땐 긴말도 안 해요, 그냥 제 일행들 모르게 슬쩍 상대를 쿡 찌른 뒤 제 눈에다 힘을 빡 주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딱 한마디합니다. '당신, 정말 혼 나 보고 싶어?' 그럼 바로 꼬리를 내리고 내뺍니다. 기선제압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웃음) "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김명원 사진부 기자 kmx@hk.co.kr

입력시간 2000/10/0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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