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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백두산 기행

[길따라 멋따라] 백두산 기행

황금빛 백두숲 그곳은 말고 건강했다

'주간한국'의 여행칼럼 `길따라 멋따라'의 필자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이 지난 9월22일부터 28일까지 남북 교차관광 백두산관광단의 취재단으로 백두산을 다녀왔다.

권 차장은 서울에 돌아와 “백두산은 상상 속에서 보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정감이 있었다. 과연 민족의 영산이다”라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권 차장의 눈에 비친 백두산을 기행문 형식으로 싣는다.

새벽 4시. 차는 어둠 속에서 출발했다. 다행스럽게도 앞자리에 앉았다. 전조등에 비친 백두산 가는 길 양켠은 온통 황금빛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이깔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깔나무는 침엽수.

그렇지만 활엽수처럼 단풍이 들고 잎을 갈기 때문에 이깔(잎갈→이깔)나무라 했다. 낙엽송의 한 종류다. 이깔나무는 막 잎사귀를 털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처럼 쏟아지는 황금바늘이 전조등에 비쳐 반짝거렸다.

양강도 삼지연군의 소백수 초대소를 출발한지 약 40분. 모든 나무가 일시에 없어지고 허허벌판이 나타났다. 해발 2,000m를 넘었기 때문이란다. 마른 풀만 바람에 흔들릴 뿐 아무 것도 안보였다. 둔덕은 밋밋한 바가지를 연이어 엎어놓은 모습이었다.

벌써 눈이 내렸다. 둔덕의 솟아나온 부분의 눈은 녹고 골짜기에는 남아있었다. 얼룩말의 무늬 같았다. 길은 뱀처럼 구불구불 둔덕을 오르고 있었다.


천지에 비춘 백두산 연봉에 넋 잃어

숲길을 벗어난지 다시 30분. 차가 멈췄다. 백두산 연봉 꼭대기에 도착한 것이다. 산 아래의 날씨는 맑았는데 꼭대기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천지는 물론 불과 몇 m 앞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일출도 볼 수 없으리라. 모두 실망하는 기색이다. 리히옥이라는 북측 여성 안내강사가 나섰다.

일출을 볼 수는 없겠지만 이곳의 날씨가 워낙 변덕이 심해 잠시라도 안개가 걷히고 천지를 볼 수는 있을 것이라 했다.

일행은 더 높은 곳으로 올랐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인 장군봉(우리 교과서에는 2,744m이지만 북측은 2,750m라고 주장한다)에 다다랐을 때 이미 떠오른 해가 안개를 걷어내고 있었다. 그 뒤 몇 분.

하얗게 가려졌던 천지가 서서히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천지의 물빛은 파랗다 못해 검은 빛이었다. 머금은 백두산 연봉이 천지 속에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곳 저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만세 소리도 들렸다.

중국 쪽에서는 천지에 내려갈 수 없다. 모두 절벽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측에서는 천지에 손을 담글 수 있다. 장군봉에서 천지에 이르는 길은 약 2㎞. 가파른 계단과 돌길로 이루어져 있다. 내려가는 데에는 30분이면 충분하지만 오르는 데에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천지 부근에는 잠실운동장의 서너 배는 됨직한 너른 벌판이 있다. 말이 달려도 좋을 정도다.

정상과 벌판 사이에 삭도를 만들어 놓았다. 길이 1,700m. 초속 4m로 운햴??하는데 편도에 7분이 걸린다. 4인승 캡슐(북에서는 바가지) 5개씩이 오르고 내린다. 한 번에 40명만이 이용할 수 있다. 130여 명의 일행이 천지로 내려가는데 1시간 이상이 걸렸다.

케이블에 캡슐이 줄줄이 매달린 남측의 스키장 곤돌라를 생각하면 비경제적이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다. 백두산 천지는 연간 270일 이상 태풍(초속15m 이상)에 해당하는 바람이 분다. 격납고에 집어넣은 캡슐은 안전하지만 바깥에 매달려있는 캡슐은 여지없이 날아가버린다.


중앙정부에서 보호하는 천지 산천어

천지의 물은 맑았다. 손으로 떠먹어 보았다. 아무 냄새도 섞이지 않은 물 자체의 맛 그대로였다. 그리고 찼다. 찬 기운이 식도를 통해 내려가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원래 천지에는 아무 물고기도 살지 않았다.

물에 독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천지에서 쏟아지는 폭포들이 워낙 길고 물줄기가 강해 물고기가 뛰어오를 수 없었다. 지금은 산천어가 산다. 1984년 두만강 산천어 100마리를 집어넣었다. 10일마다 3분의1씩 천지의 물을 늘이는 등 적응 기간을 거쳤다.

지금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중앙정부에서 천지의 산천어를 신경써서 보호한다. 손을 댔다가는 큰일이 난다. 천지에서 점심을 먹을 때 산천어 어죽이 나왔다. 모두들 천지 산천어인줄 알고 있는데, 실은 두만강에서 공수해온 것이었다.

백두산을 내려오면서 광활한 백두벌판을 대할 수 있었다. 나무가 없는 둔덕에서 내려다 본 백두의 밀림은 벼가 잘 익은 평야를 보는 것 같았다. 이깔나무의 황금빛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사자봉, 포태산 등 기묘한 봉우리가 드문드문 허수아비처럼 서 있었다. 북측 안내원이 둔덕과 숲이 만나는 곳에 가끔 호랑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기억에 남을 소백수 초대소이 '깔끔한 미인'

소백수 초대소의 리경옥씨는 얼굴을 보이는 적이 없었다. 우리 일행이 바깥으로 나가면 자기 방에서 나와 손님 방을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던진 양말을 빨아놓곤 했다. 발소리나 문을 여는 기척이 있으면 부리나케 제 방으로 들어갔다. 리경옥씨는 소백수 초대소의 안내원이다. 숙박객의 편의를 돌보는 역할이다. 남쪽 식으로 이야기하면 호텔 직원이다.

소백수 초대소는 백두산을 찾는 VIP 여행객에게만 개방되는 고급 숙박시설이다. 북에서는 초대소가 호텔보다 수준이 높다. 외국의 손님, 당 간부, 특별한 표창을 받은 북쪽의 인민이 이 시설을 이용한다.

2층 단독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고 지붕이 모두 뾰족하다. 한 겨울 이곳에는 150㎝ 이상의 눈이 쌓이기 때문이다. 한 때 스위스풍의 지붕 뾰족한 집이 남쪽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것은 스위스풍이 아니라 백두산풍이었다.

한 동에4개의 방과 안내원이 기거하는 작은 방이 있다. 모두 28개 동이다. 숙소는 언덕에 놓여있고 식당이 있는 센터는 그 아래에 있다. 센터에는 술을 먹을 수 있는 바와 노래방도 있다. 센터를 둘러싸고 삼지연을 모방한 풀장이 세 군데 있다. 아름다운 숙소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리경옥씨를 강제로(?) 불러냈다. 남남북녀라는 말이 꼭 맞는 깔끔한 미인이었다. 술을 권했지만 받기만 할 뿐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그도 남측 사람이 처음이라고 했다.

고향은 김책시이고 나이는 23세라고 했다. 이름도 그 때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였다. 남쪽 남자들 생김새가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습네다.” 짧은 대답만 했다. 우리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들의 생활과 공부와 일에 대한. 차분하고 조리있게 대답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입을 가리고 웃음으로 넘겼다. 우리 모두가 농반진반으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인 것이 한”이라고 말했다.


산자락 곳곳에 수줍은 듯 숨어있는 명소들

백두산에는 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봉이 굽어보고 있는 산자락에는 아름다운 명소가 즐비하다. 지금은 모두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이깔나무 숲속에 숨어있다. 리명수폭포는 그중에서도 기이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백두산 천지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있어 물이 밑으로 샌다. 샌 물은 수십 ㎞의 땅속을 지나 어느 벼랑으로 뿜어져나온다. 물은 샤워 꼭지의 구멍에서 나오는 것처럼 수없이 많은 구멍을 통해 쏟아진다. 샤워의 꼭지에 해당하는 단위의 물줄기만 44개이다. 꼭지에 뚫린 구멍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물의 온도는 항상 섭씨 영상 7도. 땅속을 흐르느라 외부의 기온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얼지 않는 대신 수증기를 내뿜는다. 물에서 떠난 수증기가 주변의 나무에 얼어붙는다.

그때의 모습은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북측 안내원이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봐도 좋은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가히 선경일 것이리라.

백두산 자락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빼놓을 수 없다. 압록강은 혜산시 보천보읍 곤장덕 일대에서 잘 조망할 수 있다. 곤장덕이란 지명이 독특하다. 조선시대 한 관리가 파견됐다. 중국과 국경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백두산의 높은 봉우리에 질린 관리는 산에 올라 국경문제를 논하기는 커녕 보천보의 강물에서 낚시질을 하며 소일했다. 당연히 국경문제는 중4?국 관리가 좌지우지했다. 백성들이 그 관리에 대해 고운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모두 “곤장을 쳐 죽일 놈”이라고 했다. 그래서 보천보 뒷산의 이름이 곤장덕이다.


협곡 사이를 굽이치는 압록강

곤장덕에 오르면 조금 헷갈린다. 수백 m 협곡 아래로 가느다랗게 압록강이 흐른다. 강 건너는 중국땅이다. 그 중국땅 너머로 백두산이 보인다. 지금 협곡에는 오색단풍이 찬란하다. 그 사이를 굽이치는 맑은 압록강 물이 환상적이다. 또 만세를 불렀다.

두만강은 무산지역에서 가깝게 볼 수 있다. 압록강이 물가에 내려가지 못하고 언덕 위에서 조망하는데 만족해야 한다면 무산지역의 두만강은 중간까지 건너갈 수도 있다. 폭 32m의 강 양폭에 나무 난간이 놓여있다. 난간의 사이는 약 7m. 건너편은 중국의 지린(吉林)성이다.

저쪽에는 조선족 몇 명이 신기한 듯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사람이 다가왔다. 담배를 던져 건넸다. 담배를 받는 저쪽 사람은 우리가 남측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일행에게 이야기했고 모두 박수를 쳤다. 박수가 터져나오자 이쪽에서는 노래가 터져 나왔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 최상류여서일까. 두만강물은 노랫말처럼 푸르렀다. 김일성 주석이 항일유격전을 펼칠 때 이 근처에서 낚시를 했다고 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강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백두산에 많은 것은 혁명유적지다. 모든 명소가 혁명유적지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록을 담은 커다란 비(碑)가 세워져 있고 비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야기를 붉은 글씨로 새겨놓았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두산이 김일성 주석이 항일유격전을 펼쳤던 곳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인민은 1년에 한번 꼴로 이 곳을 답사한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삼지연에 있는 삼지연 기념광장이다. 백두산, 삼지연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기념광장에는 김일성 주석의 동상, 기념탑, 4가지 주제를 다룬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 중에서는 유격전의 모습을 그린 `진군의 나팔'이 으뜸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도 놀랍거니와 조각의 섬세함과 역동성도 빼어나다.


마음 녹이는 삼지연의 아름다움

김일성 주석의 동상 뒤로 삼지연이 펼쳐진다. 말 그대로 세 개의 연못이다. 원래는 강이었단다. 화산의 불똥에 물이 막혀 세 개의 연못으로 고였다. 이상한 점은 물이 흘러들어오는 곳도, 흘러 나가는 곳도 없다는 점이다.

바닥 어딘가에 넘치지 않을 정도의 샘물이 솟는다고 했다. 삼지연의 물도 명징하다. 백두산의 하얀 머릿채가 그 물속에 비친다. 마음을 녹이는 아름다움이다.

백두산에서 가장 의미있는 북측의 유적지는 백두산 밀영(密營)이다. 밀영의 의미는 비밀 군영. 김일성 주석이 항일 유격전을 펼치며 일본군의 눈을 피해 깊은 골짜기에 차려놓은 아지트다. 백두산 밀영은 단순한 아지트가 아니라 별다른 의미가 갖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난 곳이다. 깎아지른 벼랑봉우리 아래 이깔나무를 엮어 만든 귀틀집이 있다. 지붕은 이깔나무를 잘 깎은 너와를 얹었다. 그 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났다. 벼랑봉우리는 정일봉으로 명명됐다. 붉은 색으로 정일봉이라는 글씨를 썼다. 물 맛이 아주 좋은 샘이 곳곳에 있다.


길에서 10m만 벗어나도 원시림

백두산 자락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었다. 더 인상적인 것은 맑음이었다. 백두산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나무도 물도 그리고 그 자락에 사는 사람도 맑았다.

길을 벗어나 10m만 숲으로 들어가도 원시림이었다. 저절로 넘어진 나무 위에 다시 나무가 뿌리를 내렸고 그 위로는 몇 겹의 이끼가 끼어있었다.

하늘을 가린 나뭇가지의 건강한 기상, 거의 1m는 쌓인 낙엽, 곳곳에 펼쳐진 늪지…. 산자락의 물은 모두 마실 수 있다. 계곡을 흐르면서 백색의 포말로 미끄러지는 물을 보면 오장이 시원해진다. 한반도에서 가장 건강한 자연을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 koh@hk.co.kr

입력시간 2000/10/0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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