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논란] "동성애자에게도 인권은 있다"

홍석천 '커밍아웃' 계기로 불 붙은 동성애자 인권운동

홍석천의 커밍 아웃은 그 자신에게는 당장의 불이익이 될지 모르나 동성애자 전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래도록 기다렸던 사건이기도 하다. 대중적 지명도가 있는 홍석천이 커밍 아웃을 함으로써 동성애 문제, 특히 그들이 받는 부당한 차별과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이 인권운동을 벌이기 시작된 것은 4년전. 1996년 서동진씨의 커밍 아웃이 계기가 되었다. 서씨의 커밍 아웃 이후 개별적으로, 비밀리에 움직이던 동성애자들이 음지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들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진전과 함께 점차 자신들의 권익찾기에 나섰다. 그 결과 `동성애자 인권운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움직이는 단체도 여럿 생겨났고 동성애자간의 친목도모가 주였던 인터넷에서도 사이버 동성애 인권운동이 활발해졌다.


차별에 저항하는 일반적 운동 돼야

현재 동성애자의 인권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곳은 `동성애자 인권연대'와 서동진씨가 조직한 퀴어 영화제 사무국, 남성동성애자단체인 `친구사이'와 여성동성애자 단체 `끼리끼리', 그리고 동성애 월간지인 버디 등이다.

이중 동성애자인권연대는 활동가 집단이고 끼리끼리와 친구사이는 회원 단체다. 퀴어영화제 사무국과 버디는 각각 영화와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동성애자의 인권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 단체의 문제의식은 동성애자들이 단지 사생활에 속하는 성적 취향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인권이나 직업선택 등과 같은 기본생활까지 제한받고 억압받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게 동성애자는 장애인, 빈민, 노동자, 여성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차별받는 소외집단 중 하나가 된다. 따라서 동성애 운동도 단지 소수 동성애자 만의 운동이 아니라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일반 운동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있다.

동성애자들이 당하는 차별을 단지 부당하거나 억울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제도 개선이나 법개정 같은 적극적 조치를 통해 보다 근본적으로 막아내야 한다는 이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여기에 근거한다. 때문에 이들은 세미나, 상담, 강좌 등 일상적 활동은 물론, 중요 사안이 있으면 집회, 서명운동, 반대성명 등 별도의 활동도 벌인다.

홍석천의 커밍 아웃 이후 즉각적 지지모임 결성과 각계 지지자의 공동 기자회견, 인터넷 서명 등이 이루어진 데에도 이들 단체의 조직된 힘이 컸다.


사회통념에 맞선 동성애자들

또한 이들은 동성애를 무조건 반사회적 이단 또는 변태로 보는 일반적 통념에 맞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한다.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 다수가 곧 진리이자 정의가 되는 분위기에서 남과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이들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월간지 버디의 한채윤 편집장은 “차이와 차별은 다른 것이다. 남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고 혐오하는 것이야말로 옳지 않은 일,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성숙한 사회라면 서로간의 다양한 차이를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 단체들 가운데 동성애자 인권연대는 노동, 여성, 학술, 문화, 장애인 등 다양한 부문 운동과의 연대를 주장하며 홍석천 지지 움직임 등 최근의 동성애 인권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1997년 민주노총의 집회 때 임태훈 대표를 비롯한 몇몇 동성애자들이 동성애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참여,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것을 계기로 그해 9월 만들어졌다.

동성애자 인권연대는 지난해와 올해 두 가지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하나는 교과서 내용 수정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위원회에 동성애 단서조항을 집어넣은 것이다.

동성애자 인권연대는 지난해 가을 뜻을 같이 하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교육부에 동성애가 후천성 면역결핍증을 발병시키며 성도착증이라고 묘사한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와 교련 교과서를 수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실이 아닐 뿐더러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물론 일반 학생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교육부는 다음번 교과서 개정 때 이 부분을 고쳐 쓰기로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동성애 단서조항을 포함시킨 것은 교과서 내용 수정보다 더 큰 성과다. 동성애자 인권연대는 2년여의 노력 끝에 현재 입법예고중인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적 지향과 병력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토록 했다.

즉, 성적 지향이나 에이즈 등의 질병을 이유로 인권침해를 받는 경우 국가가 이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임태훈 대표는 “실정법상 동성애자들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권위원회는 동성애자의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동성애자 인권연대는 지난해 NGO대회 참가에 이어 서울 아셈 회의에 맞춰 계획되고 있는 비정부기구들의 안티 아셈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인터넷 통해 대중속으로 다가가

이러한 단체 외에 인터넷도 동성애 인권운동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비공개 또는 반공개로 활동하던 동성애 단체들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인터넷의 공이 컸다.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홈 페이지(www. outpridekorea.com)는 검은 바탕에 분홍색 삼각형이 뜨면서 시작된다.

`핑크 트라이앵글'은 나찌가 수용소에서 동성애자에게 붙였던 표시로 나약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지금은 동성애자의 상징으로 쓰인다. 홈 페이지에는 동성애 억압의 역사를 비롯, 자신들의 활동일지와 투쟁연혁을 기록, 동성애 인권이 억압과 저항의 역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끼리끼리의 홈페이지(user.Chollian.net/~kiri9411)에는 인권소모임이 펼치는 성폭력 추방 캠페인과 호주제 폐지에 관한 글이 올라있다. 레즈비언 인권운동이 여성운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행복한 사랑(www.happylover.pe.kr), 고려대 동성애 인권모임인 사람과 사람(www.go.to/saram), 버디(www.buddy79.com) 등 많은 사이트에서는 게이 커뮤니티, 자기 커밍 아웃, 동성애와 질병, 동성애자의 심리, 동성애의 원인 등 동성애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을 소개하는 글을 볼 수 있다.

동성애 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활동가는 “무지는 편견을 부른다”며 “동성애에 관한 이론이 발달할수록 동성애는 뿌리뽑아야 할 문제가 아닌 객관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한다.

동성애 인권운동 진영에서는 앞으로 평등권과 사생활 보호에 대한 헌법소원 등 동성애자의 차별금지를 위한 적극적 행동을 실천에 옮길 계획이다. 나아가 동성애자 보호법 제정이나 동성 커플의 합법화 등과 같은 원대한 목표도 가지고 있다.

단번에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면 먼저 제도와 법부터 바꾸어보자는 것이다.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는 사회, 그것이 동성애 인권운동이 지향하는 멀고도 험난한 최종목표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10 21:38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