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제한적 '협력의 틀' 구축

이번 주간은 여야 영수회담 이후 여야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늠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현정권 출범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는 5차례 회담을 가졌으나 번번히 뒤끝이 좋지 않았다.

특히 지난 4월24일에 있었던 3번째 회담에서는 상생(相生)의 정치구현을 선언했지만 최근까지의 대결 정국이 보여주듯 가장 심각한 대치국면은 상생의 정치 선언 이후에 벌어졌다.

이번 회담 이후 정국도 낙관하기는 이르다. 경제위기 극복 등을 위해 하루빨리 국회를 정상화하라는 여론에 떠밀려 여야 영수가 무릎을 맞대고 앉았지만 정국현안에 대한 인식차이가 워낙 커 생산적 여야관계의 확립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연성 높은 정치쟁점 `선거비용실사 개입의혹'에 대한 국정감사와 `한빛은행 불법대출 외압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가 예정돼 있어 정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 총재에게는 이 쟁점이 대선전략 차원에서 놓칠 수 없는 호재여서 결코 만만하게 넘겨줄 것 같지 않다.

특히 검찰이 조만간 신용보증기금 보증외압사건과 관련,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씨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인데 발표 내용에 따라서는 정치권의 공방이 심화할 개연성이 높다.


향후 여야관계에 긍정적 작용

그러나 김 대통령이 이반된 민심을 추스려서 집권후반기를 원만히 꾸려가기 위해서는 이 총재의 협력이 필요하고, 이 총재 역시 차기대선 주자로서 대안을 제시하는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어 제한적 범위 내에서 여야의 협력체제가 구축될 개연성도 높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두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견해와 입장을 털어놓은 만큼 상호이해도를 상당히 높였을 것이고 이것은 향후 여야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 이런 기류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개혁추진을 위한 법안처리가 순조로와지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관계는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자민련의 위상이 모호해진다. 자민련이 국회정상화 협상 결과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탓이다. 자민련은 비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교섭단체 구성 문제에 대해 민주당이 한나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지 않았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양희 총무는 “세상에서 태어나 면전에서 속기는 처음”이라며 민주당 정균환 총무에게 배신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국회법 개정안을 정기국회 회기내에 3당이 합의처리한다고 약속을 했다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민련 주변에서는 “민주당이 자민련을 팔아 먹었다, 공조를 깨자”, “이한동 총리를 복귀시키자”, “특검제 문제와 대북정책에서 독자노선을 걷자”는 등의 강경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일부 인사는 “김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YS인데, YS가 벌이고 있는 김정일 서울방문 반대 서명에 동참하자”는 주장까지 했다. 물론 민주당 정균환 총재는 “협상의 진행과정을 소상히 알리고 협의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했다.


“설땅 잃을라” 자민련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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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그는 10월7일과 8일 골프 약속을 취소했다. 지난 여름 수해 때도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를 칠 정도였던 그가 요즘처럼 골프치기 좋은 시절에 골프 약속을 두건이나 취소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JP는 김 대통령과 이 총재의 회담을 계기로 양당관계가 원만해질 경우 자신과 자민련의 설 땅이 없어진다는 강한 우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민련의 한 관계자는 “JP가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성립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관계가 회복되면 자민련의 캐스팅보트가 사실상 무의미해지고 이를 이용해 교섭단체구성 목표를 달성하려는 자민련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진다. JP는 영수회담을 이런 관점에서 자민련의 최대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민련 인사들은 얼마전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이 “자민련과 손잡는데 한나라당과 손잡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민련 주변에서는 JP의 결단이 임박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하지면 정치권에서는 JP가 독자적으로 교섭단체 문제를 돌파하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채 민주당과 김 대통령에게만 기대려하고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JP가 지난 총선 이후 새로 정립된 정치구도에 갇혀 외부의 구원 손길만 기다리다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역학상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관계가 자민련이 우려할 정도로 호전되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JP가 어떤 카드로 김 대통령 및 민주당과 게임을 할지 궁금하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1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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