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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파워 엘리트 배출

경기고 개교 100주년, 한국 최고의 파워 엘리트 배출

새세대 등장 '학연타파'에 나서야

경기고등학교. 근대화 시기를 거치며 우리나라 최고 명문의 고등학교로 인정받아왔다. 적어도 고등학교 평준화가 실시된 1974년까지 경기고는 엘리트를 뜻하는 속어 `KS'의 `K'로서(`S'는 서울대학교)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사회적 평가와 아울러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숱한 일화를 낳았던 경기고가 10월3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있는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金玉均)의 집터에 배움터를 연 경기고는 지난 한세기동안 4만3,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중에 상당수가 정계, 재계, 관계로 진출해 명실상부한 한국의 파워엘리트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최초의 관립중학교, 학생들에게 매일 용돈

고종 광무4년(1900년) 10월3일 경기고는 최초의 관립 인문중등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 이 무렵 대한제국에는 교동 등 4개의 관립소학교와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 이화, 숭실 등 중등 수준의 학당 만이 있었다.

중학교의 효시이자 당시 최고학부였던 경기고는 관립중학교라는 우월성을 유지하기위해 입학생에게 파격적 대우를 해줬다. 교과서와 지필묵(紙筆墨)등 일체의 학용품을 무상으로 지급했으며 매일 용돈으로 백동화(白銅貨) 한푼씩을 줬다.

“학생들은 이중 2전으로 점심을 사먹고 5전으로 담배를 사서 피울 정도로 학비 걱정을 안했다”고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경기백년사'는 전한다. 심부름 가다 선생님에게 잡혀 그 자리에서 머리 깎여 입학한 학생 등 85명을 모아 이필균 교장 외 교사 7명으로 수업을 시작한 경기고는 1904년 7월에 첫 졸업생 20명을 배출했다.

개교 때의 명칭은 그냥 `중학교'. 이후 한성고(1906년), 경성고등보통학교(1910년), 경성제1고등보통학교(1921년), 경기중학교(1938년), 화동중·장안고(1952년), 경기중·고등학교(1952년)에 이어 1971년부터 지금의 경기고등학교로 불려졌다.

이처럼 경기고의 다양한 명칭과 학제의 변화는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극심했던 굴곡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경기고는 1954년 고교입시제도 실시와 함께 전국의 내로라 하는 수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면서 최고 명문고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당시 경기고 재학생은 서울대 등 명문대의 예비대학생으로 대접받았다.

재학생의 90% 이상이 세칭 일류대에 진학했으며 특히 1970년 졸업생의 82%가 서울대에 진학, `남들 따라 묻어서 들어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경기고를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입시전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결국 고교 평준화제도를 불러오게 했던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때 경기고는 우리나라 중등교육 정책수립의 기준이었다.


막강한 영향력의 `경기 마피아'

경기고의 자랑은 무엇보다 폭넓고 화려한 인맥이다. 정, 재, 관계 등 각 분야에 골고루 퍼진 졸업생은 어느 집단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경기 마피아'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과 이재형 전 국회의장, 조용순 전 대법원장 등을 비롯, 이범석 진의종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고 건 서울시장 등이 있으며 역대 정부 3부요인 14명이 이곳을 나왔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와 김기배 사무총장, 정인봉 손학규 의원 등과, 민주당의 정대철 김근태 최고위원과 유재건 의원 등 현역 국회의원만 25명에 이른다.

최인기 행자부장관과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을 위시한 전현직 장차관들 또한 상당수에 이른다.

재계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을 비롯, 조석래 효성그룹회장, 이준용 대림그룹회장, 박용오 두산그룹회장, 조양래 한국타이어회장 등과 박용성 대한상의회장이 경기고를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권성 김영일씨가 나란히 헌법재판소에 입성, 헌법재판관 9명중에 4명이 경기고 출신이며 신명균 사법연수원장, 강철구 광주고법원장, 김효종 서울지법원장과 한부환 대전고검장 등 현역들이 있으며, 변호사는 너무 많아 숫자파악 조차 안된다는게 동창회 관계자의 말이다.

박용현 서울대병원장을 비롯해 전체 서울대 교수의 30%가 이곳 출신이며 동창회장인 오명 동아일보사장과 홍석현 중앙일보사장, 오인환 전 공보처장관 등 언론계에도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경기고 동창회가 최근 49회(65세)∼74회(40세) 졸업생 1만4,772명 가운데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파악이 가능한 8,773명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 1,971명(22.5%)이 기업체 임원급 이상의 간부였고 1,6154?명(18.4%)이 교수, 의사(852명) 한의사(16명) 등 의료 전문가가 901명(10.3%)이나 됐다.

이밖에 회사원 874명(10.0%), 과학 컴퓨터 공학전문가 395명(4.5%), 법조인 347명(4.0%), 정부관리 281명(3.2%), 기자(67명), 정치인(39명) 등으로 분포돼있다.

여기에 75회 이후의 졸업생까지 합칠 경우 그 엄청난 인맥 앞에 타고교 출신들은 기가 질릴 정도다. 이렇다 보니 경기고 동문들 사이에서 “제대로만 뭉치면 대통령도 만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허언만은 아니다.


신세대 경기인, “전통이 부담스러워요”

지난 10월2일 오전 10시 강남구 삼성동 교정에서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식은 내외 귀빈과 동문 교직원 등 2,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축사를 맡았던 이돈희 교육부장관은 “경기고는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줄 것”을 당부했으며 민흥기 교장은 “경기인 뿐만이 아닌, 전 국민의 학교로서 선배들이 가꾼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이토록 전통과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학풍 탓인지 현재 경기고 재학생은 이웃 학교보다 엄격한 생활교육을 받는다. 재학생의 머리길이는 5cm를 넘지 않아야 하고 염색도 안되며 중학생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있는 핸드폰 또한 교내에 들여오면 압수당한다.

하지만 이같은 전통중시의 교풍에 `신세대 경기인'들은 “구시대적 유물”, “다 지난일”이라며 거부감을 갖는다. 1학년 이모(16)군은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분이 지나치게 전통을 강조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학연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2학년 김모(17)군도 “명문대 진학률 등을 보더라도 더이상 최고는 아니다”고 말하는 등 재학생에게서 예전 `경기인'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1974년 고교평준화이후 서울대 등 명문대 진학률은 급격히 하락했다. 올해 졸업생의 경우 서울대 20명, 연세대 31명, 고려대 26명 등이 들어갔으며 이는 일부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에 비해 턱없이 뒤지는 숫자다. 단순히 진학률로만 본다면 강남권의 다른 학교나 지방 명문고와도 비슷한 수준으로 과거 선배들 시절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오명 동창회장은 기념식사에서 “과거의 역사와 전통에 안주하지 말고 동문이 힘을 합쳐 새로운 경기의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을 다짐하자”고 힘주었다. 하지만 기념식장에서 만난 또다른 40대 동문은 “최초의 공립학교였듯이 이제는 경기인이 가장 먼저 학연타파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훈 사회부 기자 hoony@hk.co.kr

입력시간 2000/10/1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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