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학교와 펀드 레이징

미국 학교는 새 학기가 9월부터 시작한다. 아이들이 한 학년씩 올라가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고 새 친구를 사귀다 보면 9월 한달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아이들 학습준비물도 이것저것 챙겨줄 것이 많고 학년이 시작할 때마다 부모가 서명해야 할 서류도 많다.

학생은 학교에 대해 어떠한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에서부터 스쿨버스를 태우지 않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등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고는 이를 읽고 이해하였으며 동의하는지 여부에 대한 서명을 받아오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학교가 법적 책임을 물어야 될 경우를 대비하여 고지 의무를 다하였다는 것을 서류로 확보하여두려는 것이다.

이렇게 서명과 학습준비물 등을 챙기면서 새 학기 첫달을 보내고 10월에 들어서면 이제는 펀드레이징이 시작된다.

우리말로 억지로 옮기자면 `기금 모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태여 비슷한 예를 찾자면 과거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육성회비나 기성회비 같은 성격이라고나 할 수 있는데, 대부분 우리나라의 육성회와 비슷한 PTA가 주관하여 펀드레이징을 한다.

지역과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 중 하나는 선물용 포장지를 판매하는 것이다.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만큼, 명절 선물을 포장하는데 어차피 필요한 것이니 이왕이면 학교에서 사라는 것이다.

그외에도 많은 펀드레이징 행사가 있다. 보이스카웃에서는 팝콘을 팔며 걸스카웃에서는 쿠키를 판다. `Creative memory'라 하여 앨범 및 앨범 정리용 소품을 파는가 하면 주방용품을 파는 경우도 있다.

요새는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이나 교육용 소프트웨어도 판매한다. 어느 경우에나 매출액의 일정 부문이 기금으로 적립돼 보이스카웃이나 걸스카웃과 같은 과외활동의 예산으로 쓰이거나 컴퓨터나 기타 실험도구 등의 구입 등에 사용된다.

우리 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연간 예산은 400만-500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 학생수가 300명을 조금 넘으니 학생 1인당 연간 예산이 적게 잡아도 1만3,000여 달러가 된다.

이러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스스로 기금을 모금해 자녀의 교육을 위한 투자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등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새로운 환경에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1인당 1만 달러가 넘는 예산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학교의 특별교육 재원을 제공해줌으로써 학부형의 학교에 대한 영향력도 높아진다.

이것은 공립학교의 경우고 사립학교라면 모금행사의 규모와 정도는 훨씬 더 크다. 학부모들이 기부한 물건이 수천 내지 수만 달러에 경매돼 학교운영의 재원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미국에서 학교 교장의 역량은 얼마나 많은 모금을 하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다.

더구나 요새는 교육 모금행사에 지역공동체도 참여하고 있다. 워싱턴 DC 지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나서 받는 영수증을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학교에 갖다주면 그 액수에 따라 슈퍼마켓 체인에서 학교에 컴퓨터를 기증하는 프로그램이 수년간 있어왔다.

최근에는 영수증을 모았다가 학교에 가져다주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직접 수혜받을 학교를 미리 지정하고 자신의 모든 구매액수가 바로 지정된 학교에 오르도록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인터넷과 전산화의 덕택이다.

미국도 아이들의 교육에 대하여는 만사를 제쳐놓고 관심을 보이는 것이 학부모의 인지상정인 것 같다. 어차피 자식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경제적 기여라면 그러한 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개된 시스템을 마련해놓은 것을 보면 역시 미국다운 발상이다. 나도 내일 사무실에 가면 우선 팝콘부터 팔아야겠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10/1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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