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무혈 민주혁명, 발칸을 뒤흔든 피플파워

밀로셰비치 13년 철권통치 종식, 새 대통령에 코슈투니차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금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야당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공식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저는 이번 결정이 헌법적 권위를 가진 국가기관에 의해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존중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중략) 지난 10년간 짊어져 왔던 막중한 책임을 벗은 터라 개인적으로 약간의 휴식기를 갖고 가족, 특히 손자인 마르코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코슈투니차 후보의 대선 승리를 축하하며 모든 유고 국민이 새로운 대통령의 재임기간 커다란 성공을 이루길 희망합니다.”

불도저식 철권통치로 발칸의 패권자로 군림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59) 신유고연방 대통령이 10월6일 밤 선거패배를 인정하고 13년간 지켰던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의 무릎을 꿇린 것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이 아니라 10년전 동유럽의 공산정권을 차례로 무너뜨렸던 시민의 `맨주먹'이었다. 시민봉기는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신속하게 밀로셰비치 정권의 몰락을 이끌어냈다.


맥없이 쓰러진 철권

이날 여론에 밀려 TV에 출연해 코슈투니차에게 패배를 시인하는 밀로셰비치의 모습은 더이상 `인종청소'를 감행했던 잔인한 독재자가 아니라 무력한 독재자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를 철옹성처럼 떠받치고 있던 군대와 경찰, 언론도 민심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사실 집권기간동안 수없이 많은 위기를 맞았고 4차례나 전쟁을 벌이면서도 언제나 정상을 지켜온 그가 이렇게 순식간에 몰락하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야당지도자 조란 진지치는 “유혈사태 없이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밀로셰비치의 권력기반이 너무나 빨리 붕괴돼 우리도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밀로셰비치가 지금껏 권력유지의 방편으로 이용했던 `전투적 민족주의'의 폐해는 이미 국민의 인내력을 벗어나 있었다. 유럽의 마지막 공산독재자로 `발칸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서방으로부터 얻은 밀로셰비치는 한마디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권좌를 유지해왔다.

밀로셰비치는 1987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의 민족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으로 `민족적 영웅'이 된 뒤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자 세르비아 공산당 당수였던 이반 스탐볼리치를 내몰고 권좌를 차지했다.

1991년 유고 연방에서 분리독립하려던 크로아티아와의 전쟁, 이슬람교도의 `인종청소'를 꾀한 1992년의 보스니아 내전, 그리고 지난해 100만명 이상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고향에서 내놀았던 코소보 사태에 이르기 까지 밀로세비치는 민족주의 카드를 내걸었다.

세르비아에서 민족주의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유고의 특수성에서 비롯됐다.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는 반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에게 소련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붕괴는 곧 민족문제 해결을 의미했다.

그러나 티토 체제 아래에서 오랫동안 독자노선을 걸어온 유고에는 1989년 변혁의 시기에 소련이라는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이웃 국가의 입김이 작용하고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옛 유고연방 소속 공화국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극단적인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고립과 궁핍을 낳았다. 10여년 전만 해도 동서를 오가가는 줄타기 외교로 동유럽 국가 중 가장 풍요로운 나라였던 유고는 모든 대외원조가 끊겨 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고 국민은 잇단 전쟁으로 인한 국제적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민족주의의 허상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자초한 몰락

밀로셰비치는 지난해 9월 조기 총선거를 실시키로 결정, 위기를 정면돌파하려 했다. 민족영웅으로 대접받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그는 선거승리를 통해 정치기반을 다시 한번 확고히 다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민심은 “민족주의가 일용할 빵을 만들지 못한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간파하고 있었다.

선거전에서 예상 밖의 열세를 확인한 밀로셰비치는 유고좌파연합당(JUL)의 당수인 부인 마리아나 마르코비치(58)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작달막한 체구, 화장기 없는 얼굴에 검은 옷을 즐겨입어 `발칸의 여자 맥베스'로 불렸던 마르코비치는 밀로셰비치 권력의 든든한 후원자였고 반(反)서방의 기수였다.

그러나 그녀의 무차별적이고 원색적인 야당 비난 행보는 도리어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어 밀로셰비치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국민은 정권에 등을 돌렸고 예기치 못한 패배에 당황한 밀로세비치는 선거조작과 결선투표 실시라는 무리수를 동원,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코스투니차가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밀로셰비치의 패배로 해석됐고 그 때부터 유고의 55년 역사상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파업, 도로 봉쇄, 대규모 가두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벼랑 끝에 몰린 밀로셰비치는 TV 연설을 통해 “내가 물러나면 유고 연방은 분열되고 결국 서방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으나 극심한 생활고와 권력연장 시도에 분노한 시민은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밀로셰비치 퇴진”을 외쳤다.

마침내 5일 베오그라드에서 있은 대규모 시위에서 시위대가 밀로셰비치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담당했던 국영 TV 방송국을 폐쇄하고 국회 의사당을 점거하자 경찰과 군대마저 시민측에 가담, 밀로셰비치는 13년만에 처음으로 권력을 완전 상실한 무기력한 개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운명은?

밀로셰비치의 퇴로는 어떻게 될까. 세르비아에 그대로 남을 건지 아니면 우방으로 망명할 것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러시아 중국 등이 이미 코슈투니차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에 그가 우방국으로 망명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해 보인다. 밀로셰비치도 퇴임사에서 “조국의 번영에 공헌하고 싶다”고 밝혀 국내에 남을 뜻을 밝혔다.

따라서 관심 거리는 이미 전범으로 기소된 밀로셰비치가 국제재판을 받을 것인지 여부. 그러나 강력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로 자처하는 코슈투니차 신임 대통령은 밀로셰비치의 헤이그 재판소 인도를 거부할 것이라면서 “국제재판소는 미국 행정부의 정치적 압력 도구에 불과하다”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밀로셰비치가 대선 패배를 인정하고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민중봉기에 의해 축출되는 상황에서는 서방 각국의 압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부정선거 배후 조종, 부정 부패, 대통령직권 남용, 횡령 등 국내법을 위반한 혐의로 유고 법정에 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밀로셰비치는 지금 독재자의 말로를 실감하고 있다.

이동준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11 19:09


이동준 국제부 d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