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31)] 버추얼텍 서지현 사장(下)

국내 무선인터넷 시장 석권이 목표

유무선 인트라넷 전문업체인 ㈜버추얼텍은 외국에 더 많이 알려진 업체다. 그 과정에는 서지현 사장의 남모르는 설움과 눈물이 숨어있다. IMF 외환위기로 누구나 어려움을 겪던 1998년.

서 사장은 국내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해외투자유치 파견단이 가동되고 있었다. 서 사장은 그 일원으로 미국 영국 등 각국을 돌아다녔다. “열심히 외국 기업체를 찾아다녔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는 게 그녀의 회고다.

그녀가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순간은 1999년초. 매일 비행기를 갈아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인트라웍스 영문판인 조이데스크를 설명할 때였다.

“그 때 몸을 너무 혹사했던 것 같아요. 밤만 되면 파김치가 되곤 했는데 다음날 일정 때문에 마음놓고 쉴 수도 없었어요. 몸에 무리가 갔나봐요. 지금 몸이 굉장히 안좋은데 그 후유증이죠.” 그러면서도 얼굴은 밝다.

“여자라서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자가 참 대단하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을 만큼 그녀의 미국시장 개척일화는 지금까지도 관련 업계에서 유명하기 때문인 듯하다.


순간적 직감으로 미국지사 설립

그녀가 홀홀단신으로 미국 전역을 휘젓고 다닐 때 시장진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맡았던 것은 미국 지사. 그녀의 말대로라면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직감 때문에 지사를 만들었는데 IMF위기를 이기는 효자노릇을 했다고 한다.

“1997년 초엔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선배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미국 이야기가 나왔어요. 순간적으로 미국에 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에게는 순간적인 판단력이 아주 중요한데 가끔 직감이 무섭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미국 지사 설치가 대표적입니다.”

해외진출 이야기가 나오면 서 사장에겐 할 말이 많다. 어려움도 겪을 만큼 겪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화 도중에 절대로 어려웠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언제나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기면서 살아왔다”는 게 그녀의 생활철학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시행착오가 없었겠는가. “미국시장에서 한국제품은 모두 3류 취급을 당했어요. 아무리 질좋은 제품이라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Made in Korea'는 선진국의 눈에 촌스럽고 낙후된 상표로 비쳐지는데 허탈하더군요.”


미국인 기호에 맞춘 제품전략으로 성공

서 사장은 몇달 만에 영업전략을 수정했다. 제품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한국'을 연상시키는 부분은 완전히 빼버렸다. 오로지 제품으로 승부하자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사는 현지인으로만 뽑아 영업일선에 내보냈다.

미국인이 좋아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제품포장도 바꿨다. 조이데스크가 현재 미국에서 사용자가 1,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영어권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디자인에서부터 서비스 체계까지 제품 전체를 완전히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서 사장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그만큼 성격도 급하다. 그러나 큰 일이 터지면 오히려 실무진보다 더 의연하게 대처해 직원들로부터 여장부라는 소리를 듣는다.

“팀장이 아무리 초조해 해도 그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주변에서는 사장님의 낙천적인 성격탓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버추얼텍의 영업실적이 올 상반기에도 상당히 괜찮은데 사업이 단순해서 그런지 투자자들이 제대로 기업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털어놓으면서도 그리 심각한 표정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버추얼텍은 매출 규모 이야기만 나오면 불만이다. “소프트웨어 업체는 제조업체와 달라 이익가득율은 40-50%입니다. 인트라넷과 화상회의 시스템, 웹 메일 솔루션 등 소프트웨어 판매로 상반기에 3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면 제조업체의 매출 300억원과 맞먹는데 투자자들은 그걸 몰라줘요.

언론이 그런 차이를 잘 이해시켜줘야 합니다.” 애교섞인 항변에 걸맞게 버추얼텍의 올해 수익률은 코스닥 업체중 2위, 영업이익률 분야에서는 4위다.


연구비 지원 위해 코스닥 상장

서 사장은 벤처기업에게 기술력은 아주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승부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다. 기술력만으로는 물량공세를 펴는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9월 그녀는 버추얼텍을 코스닥에 상장했다.

싱싱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구현하는데는 돈이 필요했고 돈 때문에 R&D (연구개발) 인력이 연구에만 몰두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올 1월 중순 코스닥 시장에서 첫 거래가 시작된 버추얼텍은 높은 공모 비율과 상한가 행진으로 많은 투자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 사장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여성 중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언론에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돈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다르다.

“다들 돈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돈이 없어요. 모두 주식인데 지금처럼 코스닥이 요동칠 때 대주주가 주식을 판다면 기업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어요? 속만 상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너는 돈이 많으니까 돈을 내라'고 하면 속이 상하지요. 그게 다 회사돈이고 주주들 돈이지 않습니까?”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도 일부러 자상하게 일러주는 품새가 모두 직원에게 다정한 누나처럼 대할 것만 같다.

서 사장은 최근 영업쪽에 부쩍 신경을 쓴다. 무선 데이타 통신의 국제표준인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을 적용해 무선통신상에서 자유롭게 인트라넷을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조이데스크 WAP판'의 판매에 매달리고 있다.

`조이데스크 WAP판'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WAP 표준을 토대로 인터넷 뿐 아니라 인트라넷까지 이용할 수 있는 무선 통신용 소프트웨어로서 세계적으로도 첨단제품이다.

이동전화나 PDA와 같은 무선 통신단말기에도 사용할 수 있으며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자우편이나 주소록, 일정관리, 게시판 등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나라 무선분야 시장이 좁아요. 미국쪽에는 유선과 무선이 절반 정도인데 반해 우리는 80대20, 아니 70대30정도나 될까요. 내년에는 부쩍 늘어나겠죠.”그녀의 내년 목표는 우리나라 무선인터넷 시장의 석권이다.

그녀의 야망은 회견내내 은근히 드러났다. 얼마전 지하철 홍대역 부근 LG팰리스 빌딩으로 버추얼텍 사무실을 옮긴 것도 그 꿈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1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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