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확률 '8분의 1'의 역전드라마

바둑이란 한판 한판마다 그 확률은 꼭50퍼센트다. 따라서 1승3패를 가둔 고바야시가 나머지 세판 중 한판만 이길 확률은 8분의 7이다. 즉 조치훈이 내리 3연승을 거둘 확률은 8분의 1이다.

그러나 인간의 승부가 어찌 산술적 확률로만 계산될 수 있겠는가. 한판을 따라 붙는다고 치자. 그러면 3:2. 어차피 남은 두판 중 한판만 이기면 되는 , 그래도 유리한 상황이지만 맘이 약한 쪽에서는 '또 지면 동점'이라는 불길한 상상부터 하기 십상이다.

고바야시는 맘이 약한 승부사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조치훈의 정신력은 고바야시를 능가한다는 점이다. 본인방전 시리즈가 진행될 때만 해도 정신력은 기량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고 믿는 분위기였고, 그것이 고바야시가 주인공이 되면 더더욱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런데 바로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다. 1승3패에 몰린 조치훈은 기적 같은 연승을 거둔다. 제5국에서는 7집반승, 제6국에서는 6집반승을 거두어 곧장 타이 스코어를 만든다. 이제 확률은 8분의 4로 높아진 것이다.

운명의 제7국이 찾아온다. 드디어 최후. 그때서야 사람들은 조치훈이 엄청난 예언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제1국이 벌어지기 전날 전야제에서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만약 7국까지 가게 된다면 제가 이기겠지요."

본인방 방어의 터닝포인트가 된 제5국과 비슷한 포석으로 출발한다. 흑을 든 고바야시는 소위 고바야시류로 나왔고 조치훈은 양화점으로 당당하게 포진한다. '지하철' 고바야시에 맞서 당당하게 세력바둑을 두어보겠다는 뜻으로.

조치훈이 중반 들어 무리하게 나온다. 이미 상대의 세력이 자리를 잡은 곳에서 무리하게 전투를 벌인다. 무리라곤 하지만 그것은 조치훈의 몸 속 깊이 흐르는 투쟁심의 원류이다.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던 조치훈이 아니던가.

드디어 고바야시는 우세를 잡게 되었고 검토실은 흥분했다. 하기사, 어찌 이 한판이 단순하게 도전기의 한판이 되겠는가.엄밀히 말해 검토실이 흥분한 것이 아니라 고바야시 스스로 우세하다고 믿는 착점들이 이어지자 검토실은 고바야시가 낙관무드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지막 순간, 고바야시는 단 한번의 웅크림이 있었고 그 순간 노도처럼 밀려드는 조치훈의 살기에 '냉혈' 고바야시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운명의 한수를 고바야시가 평생 잊지 못할 패착인 줄은 그도 시대가 지나서 알 수 있게 된다.

운명의 그 한수를 고바야시는 10분이나 장고하다 두었다. 그리고 대국이 끝난 뒤 "크다고 보았다"며 말했다. 왜 크다고 본 것일까. 거기까지 추궁하는 건 너무 가혹할 지 모르니, 왜 크다고 볼 수 밖에 없었는가 라고 물어야 하나 그것은 본인도 모르는 일이다.

한판의 대국을 임하다 보면 사고를 마비시키는 `마의 시간대'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기이한 일로만 받아들이고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려 한다. 처음 대국관은 고바야시가 조치훈을 능가하였다. 그래서 국면을 리드했다.

조치훈은 뒤쳐짐을 눈치채고 따라붙으려 했고 고바야시는 어디론가 도망가려 한다. 도망갈 기운이 싹트는 순간 바둑은 어느새 어울려 가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역전이 되어있음을 감지하지 못한다. 감지했을 때엔 이미 종국에 이른 시점이다.

조치훈은 1승을 올린 후 내리 3연패를 당한 뒤 다시 3연승으로 본인방을 방어해낸다. 천하의 기성 명인인 고바야시를 물리친 기쁨이 참으로 클 터인데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리고 바둑저널도 작은 역전에 대해 대서특필했지만 고바야시의 `대삼관왕'에 대한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뉴스와 화제]




ㆍ삼성화재배 4강 확정-한국 3명

제5회 삼성화재배 4강이 확정되었다. 10월 4,5일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벌어진 8강전에서 한국은 서봉수 유창혁 양재호 등 3명의 9단이 4강에 올랐고 일본은 신예 야마다 기미오 8단이 루이나이웨이를 꺾고 4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는 이창호 조훈현이 탈락한 상태여서 저마다 우승을 노릴 호기로 삼을 것으로 보이는데, 4강전은 10월26일 벌어진다.


ㆍ이창호 패왕전 12연승 행진

'기록제조기' 이창호가 패왕전 본선연승전에서 내리 12연승을 기록중이어서 한 시즌 단일기전 최다연승에 타이기록을 세웠다. 이창호는 본선12국에서 '불패소년' 이세돌을 꺾고 1972년 서봉수 9단이 세운 명인전 최다연승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는데, 이9단은 현재 전승을 위해서는 7승을 남겨놓고 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10/1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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