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뉴스포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KoreaTimes
대한항공 대우통신
주간한국  
www.hankooki.com  


 
주간한국 홈
구독신청
독자 한마디
편집실에서


   벤처 스타열전
   인터넷 세상
   신동의보감
   땅이름과 역사

[이대현의 영화세상] 제한상영관보다 시네마테크부터

벌써 5년 전이다.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온 한 젊은 청년이 국내에 예술영화를 소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그 청년은 `백두대간' 이란 거창한 이름의 영화사를 만들었고, 야심차게도 러시아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국내에 상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 로 이름을 빛낸 이광모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영화사에서나 읽었던 타르코프스키를 보았고, 칸영화제에 수상 소식으로만 접하던 영화들을 만났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이란의 거장 키아로스타미도 처음 알게 됐다. 처음 그가 이런 필름을 찾았을 때 외국 제작자나 감독들은 신기한 듯 반문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상영하겠다고요?”

그만큼 한국의 예술영화시장은 해외 영화사나 배급사가 다 알 정도로 불모지였다. 당연했다. 70, 80년대는 외화수입 쿼터제였다. 한국영화로 수상을 한 영화사에 제한적으로 외화 수입을 허용하니 흥행작 우선이었다. 그래야 한국영화에 들어간 돈을 빼낼 수 있으니까.

1988년 미국 직배사의 한국 진출과 함께 시작한 외화수입자유화 역시 수익성 높은 상업오락물 중심의 경쟁만 가속시켰다. 영세 수입사들이 가끔 예술영화를 들여오지만 우선 상영할 극장을 잡을 수 없었다.

설령 잡는다 해도 `블록버스터'와 같은 방식의 배급 구조, 광고, 마케팅을 해야 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극장들은 조금만 관객의 발길이 늦어도 일주일만 에 영화를 내려 버렸다. 그래서 이광모는 자나깨나 예술전용관을 노래했다. 극장없이 예술영화가 설 자리는 대학 강당이나 어쩌다 한번 하는 영화제 뿐이라고.

한때 예술영화관을 자청하는 곳이 있었다. 동숭시네마텍이 그랬고, 코아아트홀이 그랬다. 씨네하우스도 거창하게 `예술관' 이란 것을 따로 두었다.

그러나 그것도 다 한때 유행이고, 상업적이었다. 상업적 계산으로 관객을 마니아로 착각하도록 하는 잡지들의 상술과 허위의식이 만들어낸 예술영화에 대한 거품에 편승한 일시적 예술영화에 대한 관심이었다. 클래식 전용관을 자처하고 문을 연 `오즈' 역시 백기를 들었다. 최근 동숭아트센터가 개관한 하이퍼텍 `나다' 도 모호하다.

이런 상황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늘어나면서 극장은 점점 상업영화에 집착하게 됐다. 말이야 1개관은 극장잡기 어려운 예술영화와 그것을 보려는 관객들을 위해 할애하겠다고 했지만 한 군데도 그런 곳은 없다. 그래서 지난해 이광모는 예술영화 개봉을 중단했다.

그에게는 아직도 영화팬이라면, 영화학도라면 한번쯤은 봐야 할 영화들이 20편은 있다. “그야말로 수익보다는 문화운동과 예술적 사명감으로 운영할 시네마테크가 필요하다. 그것이 확보되지 않은 한 예술영화의 안정적 상영은 불가능함”을 그는 뼈저리게 깨닫고, 지금 그는 그것을 확보하러 자신의 두 번째 영화 작업까지 보류하고 뛰어다닌다. 다행이 어떤 기업이 뜻을 같이해 그는 곧 소원을 이루게 됐다.

또 한 사람. 시네마테크를 만들기 위해 뛰는 계간 `필름 컬처' 편집주간 임재철씨. 그는 일간지 영화담당기자 출신이다. 글로 예술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헛헛하고, 안타까운지 그는 절감했다. 그래서 정동 스타식스 6관을 서울 시네마테크로 만들자고 나섰다.

그는 시네마테크를 영화도서관이라고 했다. 우리가 공부를 하려면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들을 찾듯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책인 필름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했다. 영화를 안보여주고 영화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느냐고 했다.

굳이 지금처럼 비싼 값에 필름을 살 필요도 없다. 예술영화이면서 상업성을 가졌거나,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알려진 것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주제별, 감독별, 시대별, 국가별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고, 영화제처럼 필름을 임대해 일정기간 상영하고 돌려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운영할 돈이 문제다. 당장 관객이 몰려들지는 않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관객이 늘지 않더라도 예술영화상영관은 있어야 한다.

이 영화 저 영화 보여주는 영화제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나라는 예술영화를 상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예술영화를 보지 않고, 예술영화를 모르는 나라에서 예술영화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다.

정부는 상업영화제작에 돈을 쏟아 붓지만 말고 이런 것에도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한다. 상업영화로 돈을 번 영화사들 역시 같은 생각이어야 한다. 그곳을 찾게 될 관객들이 결국은 자신들이 만든 예술영화의 관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화관광부는 저질 제작사와 수입사에게 돈을<?/font> 벌어줄 포르노성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세 번이나 법을 바꾸겠다고 앙앙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제한상영관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예술영화를 상영할 시네마테크이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dh@hk.co.kr

입력시간 2000/10/12 12:00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