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두려워할 필요 없다

■화학이 변명(손 엘슬리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

1976년 이탈리아 밀라노 부근에 위치한 익메사 화학공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불이 나자 시커먼 가스 구름과 먼지들이 1만7,000여명이 사는 인근 세베소 시의 교외에 내려앉았다. 도시를 하얗게 뒤덮은 먼지에는 약 3kg의 다이옥신이 들어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이후 애완동물이 원인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후유증이나 기형아 출산을 두려워 해 임산부 150 명중 30명이 낙태했으며 600여명이 세베소를 떠났고 익메사의 간부들은 징역에 처해졌다.

베트남전 당시 `오렌지 에이전트'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고엽제의 주성분 다이옥신. 국내에만도 수천명의 베트남 참전 군인이 고엽제 후유증 때문에 매일매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다이옥신이 암을 유발하고 여러가지 선천적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음이 입증되면서 다이옥신은 죽음의 물질로 취급됐다.

하지만 만약 수영장이나 공원, 종이 등 일상 생활용품이나 음식, 모유에도 다이옥신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이옥신에 대한 공포로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다이옥신은 지구가 생겨나 최초의 산불이 일어난 이후로 끊임없이 발생하여 왔으며 일상에서 접하는 수준의 다이옥신은 인체에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다. 210가지나 되는 다이옥신류의 화학물질 중 위험한 것은 17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1988년 발표된 세베소 사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낙태된 30명의 태아 중에 1명만이 비정상이었으며 그나마도 다운증후군으로 밝혀졌다.

또 1976년 이후 세베소에서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많은 장애아가 태어났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암발생도 증가하지 않았다. 다이옥신이 인체에 특별히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증거다. 다이옥신이 다른 동물은 몰라도 최소한 인체에는 큰 해가 없음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화학의 변명' 은 이처럼 사람들이 불안해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화학물질의 누명을 벗긴다. 해악적 요소가 크므로 사용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대부분이 사실은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우친다.

근래에 와서 화학물질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는 미세한 양까지 검출해낼 정도로 발달한 현대의 과학기술 탓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전에 다이옥신을 몰랐던 시절처럼 살더라도 아무런 탈없이 무병장수할 수 있다며 일반인을 안심시킨다.

콜레스테롤도 다이옥신과 비슷한 사례. 콜레스테롤은 뇌졸증, 심장마비를 비롯한 각종 질환을 일으키며 비만의 주요인이자 건강을 해치는 최대의 적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름기 있는 요리를 피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콜레스테롤 때문에 군침만 삼킬 뿐이다.

하지만 혈중 콜레스테롤의 대부분이 음식섭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즉 음식을 가려먹는 일은 체내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알코올, 감미료, 향수, 진통제, 이산화 탄소 등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바로잡는다.

영국 켐브리지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존 엠슬리는 화학 물질에 대한 사람들의 근거없는 편견과 오해를 풀어주고 그런 물질을 더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역설한다. 전문용어나 화학 공식은 가급적 자제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동안 매스컴과 환경론자의 호들갑으로 왜곡됐던 화학 관련 지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12 12:46


송기희 주간한국부 bara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