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용산구 남영동(南營洞)

땅이름에는 군사(軍士)관련 지명이 꽤 있다. 옛날 수군(水軍:海軍)의 병영이 있었다 하여 수영(水營:부산), 수군의 통제영(統制營)이 있었다 하여 통영(統營:경남)이 있는가 하면, 군이 진(鎭)을 쳤다 하여 진벌(鎭伐:잠실), 진해(鎭海:경남), 진남포(鎭南浦:평남)같은 땅이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서울에는 남영(南營)이 있다.

남영동 일대는 일제가 청일전쟁에 승리하면서 일본군 기지로 변했다. 일제가 살금살금 군병력을 이 땅에 무단 투입시킨 뒤 서울 도성의 남쪽 한강벌을 끼고 숭례문(崇禮門:남대문) 바로 코 앞에다 군병력을 주둔시켰던 것.

그래서 일본군의 영문(營門)이 있었다 하여 연병정(練兵町)이라고 일제 스스로가 땅이름을 만들어 붙였다. 이때부터 일제는 이 강토를 빼앗을 야심으로 어마어마한 병력을 속속 증강시켜 나갔던 것이다.

한편 1910년 8월 4일 일제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은 자신의 측근 이인직(李人稙)을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 미도리(小松緣)에게 보내 일본의 합방의사를 재차 확인하고 조속한 합방을 제의했다.

이인직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혈(血)의 누(淚)'로 이름난 친일파 신소설 작가로 고마쓰의 도쿄정치학교 후배였다. 고마쓰는 이 일에 대해 뒷날 `조선병합 이면사(朝鮮倂合 裏面史)'라는 저서에서 `그물을 치기도 전에 물고기가 뛰어들었다'고 담담히 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쓰레기 같은 민족 좀벌레 친일파 무리들은 카이젤 콧수염을 기르고는 연병정(남영동)의 일제군영을 마치 제처가집 드나들듯이 훼집고 다녔으니 말이다.

저널리스트 윤덕한(尹德漢)의 `이완용 평전'은 국치일(1910. 8.29)이 있기까지 부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8월 22일 한일강제합방이 조인되기까지 연병정에 주둔하고 있던 일군 병사들이 대거 남산에 포진하고 대포를 수 십기 궁성을 향해 겨누고는 요란한 공포탄을 쏘며, 위협 포사격을 했다. 8월 26일 허수애비 황제인 순종은 이완용에게 최고 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수여하는 등 신하들에게 골고루 `훈장잔치'를 베풀었다.

또 황실종친의 부인부터 상궁에 이르기까지 여인네들에게도 훈장복이 터졌다.합방공포(8. 29) 직후엔 일제가 나서서 대사면령을 내리고 전국의 왕족, 원로유생, 효자, 효녀 등 8만9,800여 명에게 총3,000만엔을 뿌렸다.'

이완용 같은 친일파의 `활약'으로 다소 시일이 앞당겨졌을 뿐, 일제는 오래 전부터 지방의 군병력을 용산 연병정에 집결시켜 늦어도 9월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강제합병할려고 했다.

그 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서울 남쪽에 왜의 영문이 있었다 하여 `남영동(南營洞)'으로 고친 것이 오늘의 땅이름이다. 일제가 우리 국토를 침탈하던 일본군 전초병들이 있었던 남영동에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날 미8군을 비롯하여 전쟁기념관, 군사시설이 있으니 역시 남영(南營)인가 보다!

<이흥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국학연구소 이사장 >

입력시간 2000/10/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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