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門島 리포트] 전쟁에서 평화의 가교로

분단 반세기, 중국·대만 화해의 현장

대만령 진먼다오(金門島)에서 태양은 중국에서 떠서 중국으로 진다. 동중국해에서 떠오른 태양은 중국 대륙 푸지엔(福建)성으로 넘어간다. 진먼다오는 대륙의 품에 안기듯 떠있는 대만의 최전선이다. 진먼다오는 대만보다 대륙에서 훨씬 가깝다.

진먼다오에서 마주 보이는 중국의 경제특구 샤먼(厦門)시 까지는 6km, 배로 30분 거리다. 샤먼 앞바다의 중국령 섬 지아오위(角嶼)까지는 불과 2,310m. 하지만 진먼다오에서 대만까지 거리는 173km에 이른다.

타이베이(臺北) 쑹산(松山) 국내선 전용비행장에서 에어버스 제트 여객기로 55분. 진먼다오는 섬 자체가 거대한 군사기지다. 곳곳에 위장망을 친 군사시설과 도로를 주행하는 군용차량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해변에는 섬뜩한 지뢰밭 표지가 방문객의 발길을 잡고, 앞바다에는 상륙정 저지용 철주가 대륙을 향해 촘촘히 박혀 있다. 진먼다오의 면적은 150km². 주민 5만3,000명이 살고 있다. 대만군 주둔 병력은 2만명.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만 총병력의 25%인 10만여명이 이곳에 주둔했다.


대륙수복 염원이 서려있는 땅

베이징(北京) 천안문 광장에서 으레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올리듯이 진먼다오에서는 자연스레 장지에스(蔣介石) 총통을 떠올리게 된다. 진먼다오에는 대륙수복을 위해 와신상담하던 장지에스의 염원이 서려있다.

1949년 국공내전에 패해 대만으로 이주한 장지에스는 대륙회복의 발판으로 진먼다오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진먼다오 마산(馬山)관측소 입구에 쓰여진 `환아산하'(還我山河:나에게 산하를 돌려달라)란 글귀는 장지에스의 염원을 농축하고 있다.

여기서 산하는 다름아닌 중국 대륙이다. 진먼다오는 행정구역상 푸지엔성 진먼현(縣)이다. 대만성이 아니라 대륙의 푸지엔성에 소속돼 있다. 장제스가 비록 대만으로 패주했지만 여전히 대만정권이 중국을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행정구역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시멘트 동굴로 200m를 걸어 들어가 마산관측소에서 바라본 대륙은 손에 잡힐 듯 하다. 망원경으로 건너다 본 지아오위에는 중국군 토치카와 함께 오성홍기가 선명히 보인다. 해변에는 몇몇 중국군 병사의 모습도 눈에 띈다. 지아오위와 진먼다오 사이 좁은 해협에는 어선으로 보이는 작은 배들이 한가로이 떠돌고 있다. 지아오위 건너편 샤먼에는 빽빽히 들어선 고층건물을 배경으로 외항선이 떠있다.

진먼다오가 대륙의 발끝에 박힌 가시였던 만큼 이곳을 둘러싼 중국과 대만의 충돌도 격렬했다. 1949년 10월25일 중국군의 대규모 상륙으로 56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던 구닝터우(古寧頭) 전투가 첫 교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대만군은 중국군 수천명을 사살하고 2,000여명을 포로로 잡으며 승리를 거둬 진먼다오를 사수했다.

이어 1950년 7월, 1954년 9월, 1958년 8월, 1960년 5월 등 모두 5차례의 전투가 있었다. 1949년 전투를 제외한 나머지는 포격전과 공중전의 형태로 전개됐다. 이 때문에 진먼다오의 대부분 군사시설은 지하에 있다. 해발 253m의 타이우산(太武山) 지하는 요새로 만들어져 내부에 병원이 2개나 있다.

중국 대안의 반대편 디산(翟山) 해변에는 유사시 함정을 대피시킬 수 있도록 거대한 화강암 인공동굴이 조성돼 있다. 이밖에도 섬 곳곳에는 지휘소와 대피소를 겸한 수백m 길이의 시멘트 동굴이 흩어져 있다.


중국 대만 직접교류 시험무대

진먼다오에도 마침내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전선이었던 이곳이 중국과 대만간 직접교류를 위한 가교로 탈바꿈하고 있다. 진먼다오가 중국과 대만간 직접교류, 이른바 삼통(三通:무역, 선박, 우편의 자유왕래)의 시험무대로 결정됐다.

대만 입법원(국회)는 지난 3월 진먼다오와 대륙에 인접한 또다른 섬인 마주다오(馬祖島)를 중국과의 직교류 지역으로 한다는 `소(小)삼통안'을 통과시켰다. 중국과 대만 전지역의 직접교류(삼통)에 앞서 양 지역을 시험적으로 먼저 개방한다는 의미에서 `소삼통'으로 이름붙였다.

소삼통은 6년전 중국이 먼저 제안했다. 대만측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다 2년 전부터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대만측 일정에 따르면 진먼다오에 소삼통이 실시되는 시점은 올 12월 중ㆍ하순경. 대만인과 중국인, 그리고 양측의 화물이 진먼다오와 마주다오에서 중국의 샤먼과 광저우(廣州), 상하이(上海)를 자유왕래할 수 있게 된다.

진먼다오와 마주다오를 동시 개방하지만 섬의 크기와 위치상의 이점 때문에 진먼다오에 중점을 둔다는 게 대만측의 생각이다. 1단계에서 진먼다오에 들어올 수 있는 중국인 수는 하루 700명으로 제한되지만 앞으로 상황을 봐가며 숫자를 늘려나갈 생각이다. 체류기간은 15일. 대만정부는 나아가 중국과 협력해 진먼다오에서 샤먼까지 해상대교를 건설할 계획도 갖고 있다. 동족상잔의 전쟁터에서 자유교류의 가교로 진먼다오가 거듭나게 되는 셈이다.

대만정부가 뒤늦게 중국측의 소삼통 제의에 화답하게 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교류확대를 통한 긴장완화를 위해서다. 둘째, 대만정권이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중국과의 현상유지 정책이 더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이다.

중국이 조만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대만이 뒤이어 가입할 경우 직접교류를 불허하는 대만의 정책은 WTO 규약에 따라 자연히 폐기돼야 한다. 셋째는 대만내 산업공동화에 대한 우려다.

홍콩을 통한 간접교류에서 오는 불편함 때문에 대만기업들은 지금까지 대만내 생산시설을 상당부분 푸지엔성을 비롯한 대륙으로 이전해버렸다. 소삼통과 장차 본격적인 삼통을 통해 대륙과의 인적ㆍ물적 교류가 자유로워지면 대만내 공업기반은 존립기반을 갖게 된다는 것이 대만측의 계산이다.


주민들 `소삼통'에 장밋빛 기대

소삼통의 실현을 앞둔 진먼다오 주민은 기대감 속에서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주민들은 일단 진먼다오가 중국-대만간 물류중심이 되면서 경제기반이 크게 강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륙과 대만의 상인, 관광객이 몰리고 교역시장이 형성되면서 번영기를 맞게 된다는 생각이다. 진먼현 현청측은 내년 한해 관광객이 최고 150만명(올해 35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택시기사 왕(王)씨는 “소삼통이 되면 승객이 늘어날 것”이라며 희색이다. 580대에 달하는 진먼다오 택시들이 대부분 손님이 없어 하루 3시간 정도밖에 영업을 하지 못한다는 게 왕씨의 이야기다.

군사지역인 탓에 진먼다오는 대만에 비해 산업기반이 매우 열악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대만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인구도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진먼다오의 주요 산업은 고량주와 도자기, 땅콩과자 등 3가지. 소삼통에 따라 이들 산업도 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

진먼다오에서 고량주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섬의 기후 때문이다. 건조한 기후로 인해 수수와 고구마가 잘 자라면서 자연히 이를 이용한 고량주가 발달했다. 직원 786명을 고용하고 있는 진먼다오 최대의 공장인 진먼 고량주 제조창은 지방정부가 주식의 절반을 소유한 공사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신쿠완더(辛寬得) 사장은 “소삼통으로 진먼다오에서 가장 이익을 볼 기업은 우리 제조창”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내수에 의존했지만 소삼통 이후에는 중국으로 대량수출이 가능하다는 것.

그는 현재 대륙으로의 수출이 매달 300상자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대륙에 사무소를 설치해 판촉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진먼 고량주 제조창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65억 타이완달러(2,445억원).

국립 진먼 도자기 공장의 왕한원(王漢文) 공장장 역시 소삼통에 따른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질 좋고 풍부한 고령토와 대만의 예술성을 접목시킨 진먼다오의 도자기는 대륙산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고 강조했다.

왕 공장장은 대륙 도자기산업과의 상호교류도 계획하고 있다. 10월중에 열리는 양측의 민간 도자기 업계 관계자간 회의를 정례화해 기술ㆍ판매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 도자기 산업에서 진먼다오와 중국은 사실상 직접교류에 들어갔다. 언론교류도 마찬가지.

진먼다오 TV에서는 요즘 푸지엔성의 중국인을 불러 소삼통과 관련한 좌담회를 빈번하게 열고 있다. 좌담회에서 푸지엔성의 한 의료관계자는 “소삼통이 실시되면 의료시설이 부족한 진먼다오 주민은 푸지엔성으로 와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두가 소삼통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진먼다오 농민에게 소삼통은 대륙산 농산물의 무관세 유입이나 다름없다.

이미 밀수를 통해 조금씩 들어와 골치를 썩이던 대륙산 고량(수수)이 마구잡이로 들어올 경우 생계기반을 잃게 된다는 걱정이다. 또 일부 주민과 경찰은 치안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진먼 주민은 대륙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다. 5차례 대륙과 전쟁을 벌인 데서 온 적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진먼 주민은 이념보다는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소삼통을 받아들이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17 21:03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