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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門島 리포트] 금문도에서 잠든 '영원한 기자' 최병우

1958년 8월23일 진먼다오는 중국군의 선공으로 시작된 국공 양측의 포격전과 공중전으로 아비규환을 이뤘다. 44일간 지속된 이 전쟁을 대만측은 `823 전역(戰役)'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에서는 군인과 주민 뿐 아니라 외국 종군기자를 포함한 기자도 6명이 희생됐다. 이들 중에는 당시 한국일보 논설위원 겸 자매지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으로서 현지에 특파됐던 최병우 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진먼다오 롱위앤(榕園)에 있는 `823 전사관'의 한켠에는 이들을 위한 기념물이 있다. 벽에 걸린 플라스틱판 위에 영정과 이름, 국적, 간단한 이력, 사망경위, 나이 등이 나란히 기록돼 있다. 한국과 일본 기자 각 1명, 대만기자 4명이 그들이다. 최 기자에 대한 기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병우 선생. 한국 국적. 일본 동북대학 사학과 졸업 후 먼저 한국은행 비서로 취직. 신문업무를 동경해 나중에 한국일보로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됐다. 사람됨이 용감하고 솔직담백했다.

중화민국으로 파견돼 전황을 취재함에 있어 책임감이 강했다. 1958년 9월26일 리아오루어완(料羅灣) 해역에서 배를 갈아타고 해변으로 향하던 중 타고 있던 함정이 침몰했다. 헤엄쳐 해변에 올랐으나 또다시 중공군이 쏜 포탄에 맞아 불행히도 순직했다. 나이 35세.>

그는 타고난 종군기자였다. 그는 사망하기 10일전 1차 진먼다오 취재 도중 포탄파편에 다리부상을 입었다. 타이베이(臺北)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또다시 전선으로 향했다.

한국일보 본사에서 타이베이에 머물 것을 종용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한국의 독자들이 뉴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항명의 이유였다. 그는 한국전쟁과 1958년 인도네시아 내전에서도 종군기자로 명성을 날린 바 있다. 823 전사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수년전 미망인이 찾아와 이곳 전사관의 기념물을 참관하고 간 적이 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최병우 기자는 한국 언론계에서 취재도중 순직한 최초의 기자다. 중견언론인의 모임인 관훈클럽은 최 기자를 추모하기 위해 1989년부터 `최병우 언론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입력시간 2000/10/1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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