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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門島 리포트] 정치는 냉전, 민간교류는 자유화

중국-대만 분단 반세기, 한국과는 딴판

미 국방부는 지난 9월28일 대만에 대한 13억 달러 상당의 무기판매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F-16 전투기에 장착할 공대공 암람(AMRAAM) 미사일 200기, 하푼 대함 미사일 41기, 155mm 자주포 146문, 통신장비 등이 그 목록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과 대만을 격렬히 비난했다. 대만에 무기를 파는 것은 대만의 분리주의를 조장하는 행위라는 게 비난의 이유였다.

중국은 1990년대 이래 대만의 군비증강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전의 장지에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 부자의 집권기 때와는 다른 시각에서 대만의 국방력을 주시하고 있다.

이것은 대만의 진로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됐다. 장지에스와 장징궈 시대의 대만 정부와 중국 정부는 적어도 한가지에서는 확실한 일치점이 있었다. 대만이 결코 독립을 선포하거나 독립지향적 노선을 걷지 않는다는 서로간의 확신이 존재했다.

실제로 장 총통 부자는 대만을 대륙수복을 위한 기지나 임시 피난정부로 생각했지 결코 항구적인 독자 국가로 생각지 않았다.


1987년 이후 대륙투자 크게 늘어

이같은 일치점은 1988년 대만에서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집권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대륙 출신인 장 총통 부자와 달리 대만 출신인 리덩후이 총통이 민주화와 함께 대만의 독립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중국과 대만관계에 대해 리 총통이 표방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중국측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하나의 중국'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리 총통의 노선은 역시 대만 출신인 천쉐이비엔(陳水扁) 현 총통에게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으로 중국은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천 총통은 대만독립을 강령으로 내세우는 민진당 출신이라 중국의 우려는 더 크다.

올해 2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대만백서(`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문제)는 `평화통일'과 `1국가 2체제'원칙과 함께 `무력사용 불포기'원칙을 재확인했다. 현재 중국과 대만은 정치적으로 모든 공식접촉이 중단된 냉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적, 경제적 교류는 전혀 딴판이다. 오히려 공동체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다. 양측간 민간교류는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과 8년 뒤 이에 대한 장징궈 총통의 화답에서 물꼬가 트였다.

장 총통이 1987년 대만인의 대륙친척 방문과 대륙투자를 개방하면서 민간교류는 확대일로를 걸어 왔다. 중국의 대만백서에 따르면 1987~1999년 대륙을 방문한 대만인은 연인원 1,600만명에 이른다. 상호교역 누적액이 1,600억 달러를 넘어섰고 대만기업의 대륙투자 실현액은 240억 달러에 달했다.


양측 체제유지 자신감, 교류 활성화

정치와 달리 민간교류가 활성화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체제유지에 대한 양측의 자신감에서 기인한다.

중국은 1971년 10월 중화민국(대만)을 대신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고 1978년 미국과 수교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대만을 완전히 압도했다. 국방력으로도 대만이 맞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민간교류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대만 역시 민주화를 통해 국민의 체제 결집력을 강화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대륙에서 경제적 기회를 모색하게 됐다.

대만과 중국간에는 공식채널이 없는 대신 대륙에 투자한 대만기업인이 비공식 접촉채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관계는 상호 체제유지에 대한 보장을 전제로 해서 정치가 경제를 선도하는 한반도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0/10/1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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