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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록의 워싱턴 방문] 클린턴 방북, 무슨 선물 오갈까?

적대관계 청산 디딤돌 마련, 미사일 문제 등은 난제

“50년간의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미래의 양국관계를 여는 이정표.”(뉴욕타임스)

“상투적인 약속만 늘어 놓고 구체적인 알맹이가 전혀 없는 공허한 내용.”(로버트 매닝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방미 활동 후 발표된 10ㆍ12 `북미 공동 코뮤니케'에 대한 미국내의 상반된 평가다.

군복을 입고 50년 적대국의 심장부로 찾아간 북한의 제2 인자와 `깡패국가'의 실세를 웃음으로 맞은 클린턴 미 대통령의 어색한 악수는 향후 전개될 북미관계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북미 공동 코뮤니케에 대한 앞서의 두 극단적 평가는 이 극적인 만남이 가져올 북미 관계 변화의 명과 암을 함축하고 있다.


김정일 클린턴 의중 털어놓을 기회

로버트 매닝의 지적처럼 북미 공동 코뮤니케는 대부분의 북미 현안에 대해 의례적이고 원론적 수준의 선언들로 채워져 있다.

코뮤니케 발표 전까지 우리 언론에서 쏟아냈던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합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합의', `조건 맞으면 미사일 개발포기 제안' 등 거창한 내용은 2쪽 남짓 분량의 코뮤니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문서는 한낱 의례적 외교 문서에 불과한 것일까. 이 문서의 파괴력은 드러나지 않은 행간에 숨어 있다는 게 많은 외교 전문가의 시각이다. 북미가 최고위층의 접촉을 통해 50년 적대관계의 청산을 위한 빅딜의 분위기를 마련한 사실 그 자체야말로 적대적 관계를 정상화의 단계로 이끌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 행정부 관계자들이 조 부위원장에게서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미국의 입장이 비로소 직보(直報)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한 미국통의 지적은 미측이 그동안 북한 대표단과 협상과정에서 “우리의 진의가 북한 최고실력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 얼마나 시달려왔나를 전해주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특사인 조 부위원장의 방미를 통해 이뤄낸 북미간의 합의, 즉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방북과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은 북미의 최고 지도자들이 서로의 깊은 의중을 털어 놓고 현안을 타결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조 부위원장은 미국 방문기간 동안 김 국방위원장의 위상에 대해 설명하고 모든 북미 현안이 김 위원장과 클린턴 대통령의 담판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정상화 3단계 조치 설정

그렇다면 과연 북미 양측의 관계개선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 것인가. 지난해 발표된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의 보고서는 이같은 물음에 대한 미국의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페리 보고서는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3 단계의 조치를 설정했다. 남북간의 적대적 대립 청산과 화해ㆍ협력(1단계), 북한의 미사일 발사중단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2단계), 북미ㆍ북일 수교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3단계)이 바로 그것이다.

향후 미국의 관계 정상화를 실무적으로 끌어갈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은 10월12일 기자회견에서 “페리 보고서에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우리의 우려사항이 잘 나와 있다”며 “정상화는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남북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북미 관계의 정상화는 페리 프로세스의 2 단계를 두고 북미가 얼마나 큰 틀의 타협을 이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문제에서 양측은 그동안의 협상과정에서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은 지난 6일 미국과의 공동성명에서 ▲모든 형태의 테러반대 ▲유엔 테러 협약 가입 의향 등을 밝힘으로써 요도호 납치 적군파 4명의 추방을 제외하고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위한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적군파들을 적절한 시점에 제3국으로 보내는 방향에서 미국쪽의 요구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는 북한에게 있어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저리의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회생을 목표로 하고 있는 김 위원장에게 국제사회의 자금융자는 체제보장의 생명줄에 다름 없다.


구체적 성과는 차기 행정부 몫

미 행정부의 입장에서도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한 미 국무장관이 빈 손으로 돌아올 경우 대북 강경파인 미 공화당의 반격을 받을 것은 뻔한다.

특히 11월7일 치러질 미 대통령 선거는 고어 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낸 클린턴 행정부에 북한으로부터의 `선물 보따리' 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같은 양측의 이해관계를 감안하면 북한의 적군파에 대한 가시적 조치와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올브라이트 장관과 김 위원장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선물 목록에 우선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사일 개발 문제는 사정이 다르다. 이번 코뮤니케에 포함된 `북미 협상 진행기간중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선언'은 지난해 9월 베를린 발표의 재판에 불과하다. 핵 문제에 대한 언급도 1994년 제네바 합의을 이행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공위성 발사를 지원할 경우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는 북측 안이 어떤 수준에서 논의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문제는 임기 3개월밖에 남지 않은 클린턴 행정부가 쉽게 결론지을 사안이 못 된다는 게 외교가의 정설이다.

북한으로서도 미사일 개발은 미국과의 향후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다. 조 부위원장의 `군복시위'가 북한 군부 추스르기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북한 군부가 현실적으로 체제방위의 강력한 무기를 쉽게 포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북미 연락소개설 문제도 타협이 쉽지 않다. 사실 이 문제는 1994년 제네바 핵합의때 이미 거론된 사항이지만 지금껏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 행랑의 판문점 통과 문제에 대한 이견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과연 평양의 핵심부에 성조기가 휘날리는 것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 그 이유를 보다 잘 설명해줄 것 같다.

결국 북미간의 현안 타결과 관계 정상화의 구체적 노력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 몫으로 넘어갈 것이다. 여기서 이 시점에 양측 최고지도층의 방문이 이뤄질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임기내 미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레일을 깔아둠으로써 강경파인 공화당이 집권하더라도 과거로 돌릴 수 없도록 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북한의 선택은 고어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대북 포용정책의 성공적 모습을 미국의 유권자에게 보여주어야 할 클린턴 행정부의 이해와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일종의 정치적 게임을 한 셈입니다.” 한 외교 분석가는 이 게임의 성공여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이 미국과의 빅딜가능성을 열어 둔 것만으로도 이 게임의 목표는 이미 달성됐다는 것이다.

김승일 정치부 차장 ksi8101@hk.co.kr

입력시간 2000/10/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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