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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록의 워싱턴 방문]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진일보

남북·미 新삼각구도 형성

“남북한 및 북미관계가 상생(相生)의 길로 들어섰다.” “6ㆍ15 공동선언에 힘이 실렸다.” ”4자 회담의 유용성이 인정됐다.”

10월12일 발표된 북미 공동선언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반응들이다. 한결같이 북미 관계개선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 숨가쁘게 이어져온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짙게 배여있다.

정부의 공식논평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관계개선 조치는 6ㆍ15남북 공동선언에 이은 또하나의 진전으로 한반도에서 남북관계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외무부도 “북미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고,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균형 발전이 이뤄지게 됐다”고 논평했다.

반세기동안 `철천지 원쑤지간'이었던 북미 관계의 본질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이번 성명에 정부가 긍정적 평가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이번 합의가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환경이 변화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이뤄졌다는 점, 또하나는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 그동안 정부가 주장해온 4자 회담의 틀이 재가동될 수 있게 된 점이다.


상호보완관계로 발전, 4자회담 틀 재가동

우선 북미 공동선언이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남북 및 북미 관계가 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 아래 병행 발전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6월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과 협상하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포기하고 남북 정상회담에 나왔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과속 행보는 한반도 문제에 발언권을 지닌 미국을 소외시키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정부는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미관계도 함께 진전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 당국자는 “김대중 대통령이 6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주문했고 미국측에도 김정일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권유해 왔다”고 말했다.

한반도 냉전구조는 국제적인 문제와 민족적인 문제가 한데 얽혀 있어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북미간의 적대관계 종식 등 냉전구조의 해체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남북 대치의 당사자인 남북관계와 정전협정의 주역인 북미관계의 두축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종착점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현실적으로 남북교류는 북미 관계의 개선이 없이는 근본적 한계에 부딛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대북투자 등이 이어지고 개성공단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없이는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북한에서 생산된 물품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수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장차 미국으로부터 `최혜국 대우'를 부여받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 뿐인가. 남북한 국방장관급 회담 등에서 핫라인 설치와 군사훈련 참관 등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가 가시화할 경우 필연적으로 주한미군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철군론 또는 평화유지군으로의 역할 변경론이 나오게 되면 한미 관계가 미묘해질 수 밖에 없다. 역으로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전략과 연계되는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과 북한과의 관개개선이 전제되지 않고는 다뤄질 수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이번 성명이 “정전협정을 평화보장 체계로 바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4자 회담 등 여러 방도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한데 주목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한반도 냉전 해체를 위해 주장해온 방식, 즉 남북이 당사자로 나서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국제적으로 보장하는 `2+2' 방식의 평화협정체결에 힘이 실리게 됐다고 보는 것이다.


힘 실리는 2+2 평화협정 방식

1997년 12월 처음 시작된 이해 지난해 8월까지 6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반도 4자 회담은 남북한간의 견해 차이로 성과가 없었다. 남한은 평화협정이 남북한 사이에 체결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북한은 미국과 북한이 체결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도 남한은 평화협정 이후 미군이 남한에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 이후는 물론이고 체결 이전이라도 남한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고집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6월 남북 정상회담때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여 입장변화를 시사한 바 있다. 또 이번 성명에도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등 우선 현안과 장기 과제를 구분하는 실용적 자세를 보였다.

정부는 북미 공동성명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더욱 튼튼히 다져나갈 방침이다. 즉, 화해와 긴장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남북관계의 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 회담의 축을 함께 가동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물론 앞으로의 과제도 적지 않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고수하는 북한이 과거보다는 유연해졌다고 해도 우리의 4자 회담 구도에 흔쾌히 호응해올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신뢰구축 다져야

또 남북한과 미국 사이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신삼각구도가 형성됨으로써 한미 공조체제 운용 방법이 새 과제로 떠올랐다.

북한을 한 축으로 하고 이에 맞서는 한미 공조체제가 이제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서로 쌍방향으로 교섭하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각에서 우려하듯 북한이 남한과는 교류협력에 역점을 두면서 통일공세를 펴고 미국과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평화공세를 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과거처럼 남한과 미국을 이간하거나 경쟁시키는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는 북미 관계의 템포 등에 대해 미국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군사적 대치 상태의 해소없이 평화협정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점, 남북간 대치의 당사자이자 한반도 문제의 주역은 남북이라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정부의 입장” 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북미관계의 급진전은 한반도 주변의 역학관계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남북 문제에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다양한 변수들이 개입하게 될 경우 남북관계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국제사회의 변수들이 남북관계 진전을 흐트러 트리지 않도록 북미관계의 진전에 발맞춰 남북간 신뢰구축을 다지는 것도 정부의 과제다.

박진용 정치부 기자 hub@hk.co.kr

입력시간 2000/10/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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