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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표 쥐고 DJ·昌과 3각 게임

JP, 생애 최후의 정치적 승부수

“DJP는 사실상 끝났다. DJ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JP에게는 선언만 남았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의 국회 정상화 협상을 위해 날치기 상정한 국회법 개정안을 무효화하기로 한 날,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의 한 측근은 서슴없이 공조파기를 떠올렸다.

그는 그래도 분이 삭지 않는 듯 “두고 보면 안다. 2년여 남은 대통령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누가 가장 아쉬워할지. 여권은 지금처럼 우리를 대했다가 피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총선후 17석으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JP가 충청권을 대표한다고 믿는 자민련 의원들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이재선 의원 등 소장파는 “이한동 총리(자민련 총재)를 당으로 불러오고 공조도 완전히 깨버리자”고까지 주장하는 실정이다.

제3당이지만 교섭단체도 못되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해버린 이들이 큰소리 치는 이유는 차기 대선에서도 충청표가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자신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교섭단체를 만들어달라고 구걸하는 약자의 입장이지만 대선이 가까워지면 자신들의 몸값도 올라갈테니 두고 보자는 배짱이다.


“두고봐라 몸값 올라갈 테니”

의원들은 그렇다 치고 JP도 국회법 개정안 파동으로 DJP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할까.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총선패배 이후 침묵하던 JP는 이렇듯 공조파기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2002년을 목표로 생애 최후의 정치적 게임을 막 시작했다.

JP는 국회법 개정안이 원인무효가 될 당시 “내가 이제 할 일은 칩거와 함구뿐”이라며 “DJ와 만날 생각도 없다”며 DJP관계에 처음으로 적신호등을 켰다.

적색등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발표가 있던 10월13일에조차 꺼지지 않았다. 신당동 자택에서 TV를 지켜본 JP는 한 시간이나 지난 오후 7시에야 김 대통령에게 축하전화를 걸었다. 김 대통령과 단단히 각을 세우며 대여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조차 발표 순간 축하전화를 건 것과도 대비된다.

발표 직후 비서진들은 한술 더 떠 JP의 반응을 알아보려는 기자들의 성화에도 “자민련 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냈는데 무슨 반응을 또 알아보느냐. JP는 그런 일에 별 관심도 없다”며 시큰둥해했다. 짧은 통화에서 DJ는 “김 총리가 도와주신 덕택입니다”라고 기꺼이 수상소감을 나누려했다.

하지만 JP는 “제가 도와드린 일은 없습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발표 한시간이 지나서야 주변의 권유로 마지못해 전화를 건 JP의 태도에서 DJ와 민주당에 대한 그의 틀어진 속내를 엿보는 일이란 어렵지 앐??다.

1998년 DJ의 손을 들어 집권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JP가 3년이 채 못된 지금은 이렇듯 DJ와 애써 거리를 두려한다. 공동정부의 첫 총리에서 물러난 뒤 당내반발에 아랑곳없이 자민련 총재이던 박태준씨와 이한동 의원을 계속 후임자로 내보냈던 그가 현재 DJP관계에 적신호를 보내는 이유는 다소 복잡하다.


DJ와 거리, 昌과는 관계개선 시도

한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JP는 내각제 무산, 이인제 의원을 앞세운 민주당의 충청권 공략에 이어 최근 국회법 개정안 무효화를 지켜보며 DJ에 대해 서운함을 넘어 인간적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JP가 DJ와의 관계를 당장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공조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최근의 경제난 등 국가를 둘러싼 어려운 상황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국가적 상황보다는 오히려 복잡한 JP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무엇보다 JP는 DJ와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한 반면 이회창 총재와는 여러 채널을 통해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자민련과 JP를 `민주당의 2중대'로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불신이 워낙 거세 두 사람 사이가 구체적으로 진전된 물증은 없다.

하지만 JP는 얼마전 출입기자들과 모처럼 저녁을 함께 하면서 이 총재에 대한 상당한 신뢰감을 나타낸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내각제가 될 경우 누가 초대 수상이 될 것 같으냐”는 차기를 묻는 기자들의 우회적 질문에 주저없이 “이 총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입이 무겁기로 납덩이 같은 그가 거의 공개적인 자리에, 그것도 가장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권력과 언론의 생리를 잘 아는 그는 어쩌면 자신의 발언이 DJ와 이 총재 모두에게 전해지길 노렸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JP는 `공조파기'까지 주장하는 당내 소장파의 거센 요구와 DJ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 앙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함구하겠다”, “DJ와 안만난다”는 식으로 변죽만 울릴 뿐 정작 구체적 행동은 주저하고 있다.

총선패배 이후 사면초가에 몰려 운신의 폭이 좁아진 그가 정치판의 중심축인 두 사람을 상대로 줄타기 도박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등거리전략으로 정치적비중 높이기

실제 DJ의 임기가 여전히 2년이상 남은 상황에서 그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늘 권력의 주변에 있어온, 그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 총재와의 관계개선 역시 대선이 2년 이상 남은 현재로서는 서두를 때가 아니다. JP를 잘 아는 한 인사는 ”JP가 총선에서 패배한 자민련이 여야 정상화 이후 교섭단체구성조차 사실상 어려워져 홀로서기가 쉽지않다고 판단, `대선'과 `충청표'를 카드로 DJ와 이 총재를 상대로 3각 게임을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DJ에게는 원거리 전략으로 `JP와 충청표를 잃을지 모른다'는 초조감을 자극하고 이 총재에게는 근거리 전략으로 `JP만 잡으면 차기 대선은 확실하다'는 믿음을 줘 자신의 정치적 비중을 높여가는, 일종의 등거리 전략이다.

양측 모두 경쟁적으로 자신을 붙잡도록 해 총선패배로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몰린 상황을 돌파하고 흔들리는 당도 수습해보자는 계산이다.

사실 여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 운영위에서 날치기 한 7ㆍ24 파동만 보더라도 JP의 이같은 계산은 매우 현실적임을 보여준다.

당시 여당은 “인생선배이자 고향선배, 대학선배를 만나고 싶었다”며 JP를 골프장에 초대한 이 총재를 견제하고 달아나려는 JP를 붙잡기 위해 여론과 정면으로 맞서며 날치기를 감행했다.

JP는 DJ와 이 총재의 이같은 속내를 재빠르게 간파, 자신을 둘러싼 두 사람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1998년에 이어 2002년 또한번 결정권을 쥐어보려는 생애 마지막 정치적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두 사람을 향해 카드를 한장씩 던질 때마다 정치권은 어김없이 요동칠 것이다.

이동국 정치부 기자 east@hk.co.kr

입력시간 2000/10/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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