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중랑구 묵동(墨洞)

묵동(墨洞)은 본래 옛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의 일부 지역으로써 먹을 만드는 곳이었으므로 `먹굴' 또는 `먹골'이라 부르는데서 비롯된 땅이름이다.

1914년 4월1일 일제가 경기도 지역의 구역확정 때 먹골, 큰말, 뒷굴을 병합하여 `묵동리'(墨洞里)라 하다가 1963년 1월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묵동'으로 고친 것이 오늘의 땅이름이다.

그 땅이름 속에 묻혀버린 이름 가운데는 `큰말'은 `대리'(大里), `뒷굴'은 `후동'(後洞)으로 뜻옮김(意譯)이 돼 불리기도 했다.

큰말은 묵동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큰말 뒤에 있는 산이 봉화산(烽火山)이다. 봉화산은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를 피우는데 변방에서 변란 또는 내란이 있을 때, 나라 안에서 내란이나 큰 도적이 있을 때, 즉 함경도 강원도 경기도의 여러 봉수대를 거쳐 이곳 봉화산 아차산에 이어져 서울의 중심 남산 봉수대에 이어졌다. 봉화의 첫 연결 코스인 제일 봉수로 가운데 간봉의 하나가 바로 봉화산이다.

조선조 시대에는 나라안에서 봉화연결의 본선인 직봉이 369개소,지선인 간봉이 254개소로서 도합 623개소가 운영되었다. 또한 제주도에서도 나름대로 직봉 25개소, 간봉 38개소가 있었다.

이렇게 직봉이든 간봉이든 옛날 봉화를 올리던 산이름이 거의가 봉화산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도 이 마을 토박이들은 봉화산을 다른 이름으로 `봉우재'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봉화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묵동 하면 서울에 오래 머물러 산 사람이라면 `먹골배'를 떠올린다. 먹골배는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모래흙(沙土)이 많고 통풍이 잘되는 봉화산 먹골 일대에 신품종 배를 들여와 재배하면서 새로운 명소가 되었던 것이다.

먹골배는 독특한 단맛으로 서울시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10월 중순에 수확되는 먹골배는 `신고'(新高) 품종으로 껍질이 노랗고 얇으며 당도가 높아 “배가 익을 때 비료 대신 설탕을 뿌려준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이 먹골배의 원산지 배밭골인 묵동, 태능, 신내동, 공능동 일대가 택지개발이 시작돼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하면서 어디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게 되었다. 때문에 `먹골배'의 값어치는 지금은 남양주군 별내면 광천리, 화접리로, 구리시 갈매, 사능 등으로 옮아가 그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슈-사이.// 애수에 젖어/ 소리에 젖어/ 오늘도 나는 이 거리에서/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계절을 잃은 남루를 걸치고/ 숱한 사람들 속 사람에 부대끼며 수없는 시선에 사살(射殺)되면서/ 하늘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인제 저 푸른 하늘이 마시고 싶어/ 이렇게 가슴 태우며/ 오늘도 이 거리쐑m 서/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간판이 커서 슬픈 거리여/ 빛깔이 길어서 서글픈 도시여….'(이하 줄임) 김규동의 `하늘과 태양만 남아 있는 도시'를 읊조려본다.

묵동(墨洞)! 땅이름의 뜻대로라면 `검은 마을'.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먹골(墨洞) 일대를 중심으로 한때 서울시민의 연료공급원이었던 석탄 하치장이 있어 검은 석탄이 산더미처럼 쌓였던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10/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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