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점검] 기술 경쟁력 없으면 죽는다

불황 타개책 마련에 분주, 업계 재편작업 돌입

외환위기 이후 국내시장의 급격한 위축 속에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맞은 건설산업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해외건설 파동으로 15개 대형업체가 한꺼번에 통폐합된 1986년의 건설산업 합리화조치 때나 97년 외환위기 직후의 연쇄부도 충격 때보다 더욱 거센 업계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현재의 국내 건설산업 구조로는 더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시장기능에 따른 경쟁질서 확립과 글로벌 스탠다드 (Global Standards)이행을 기본방향으로 한 중장기 건설산업 구조개편 방안을 내놓은 상태다.

따라서 시장기능을 통한 자율적 경쟁구조와 영역구분 철폐 등 건설산업에 불어닥친 새로운 질서에 대응한 업계 재편작업이 이미 물밑에서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그동안 정부의 보호막에 안주한 채 기술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건설업체들의 경우 더 이상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자구노력 시급하다

건설업계 불황 타개를 위한 노력은 정부와 업계 양쪽에서 시작됐다. 정부의 건설산업 구조개편이나 업계의 자구노력은 바로 확산되고 있는 `공멸의 위기'를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와 올 상반기 상당수 건설업체들이 영업수지가 대폭 개선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의 결실이라기 보다는 외환위기가 가져다준 자연적인 원가절감 효과에 따른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공사원가에 포함되는 인건비, 자재비 등이 대폭 하락하면서 공사계약 당시 추정했던 비용이 크게 줄어들어 그만큼 반사이익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에는 보유 부동산 매각이나 인력감축 등을 통해 자구노력을 기울이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또 금융권과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기법을 적극 도입하거나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리모델링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부동산투자신탁(Reits)제도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불황타개의 한 방안이 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제2의 신도시 건설방안을 내놓아 업계의 일감 확보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신도시건설 방안은 건설업계로서는 분명 `가뭄의 단비'같은 호재다.

이를 통해 수주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당수 건설업체들이 일감을 확보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위기에 빠진 건설산업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같은 인위적인 공사물량 확보정책은 당장은 건설업계를 살리는 `묘약'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80년대 주택 200만가구 건설을 위한 분당 일산 등 5대 신도시 건설사업은 이름도 없는 중소건설업체들을 단숨에 `벼락부자'로 만들어 줬지만 결국 10년도 채 견디지 못하고 외환위기라는 충격 속에 대부분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비운을 겪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건설산업 재편으로 활로를 찾는다

건설산업은 전통적으로 공사를 주문하는 `발주자'와 이를 따내 실제 공사를 벌이는 `수주자'로 이뤄진 가장 원시적인 주문생산 형태를 띠고 있는 수주산업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공사물량은 급감하는 반면 규제완화에 따른 업체수 증가로 경쟁은 더욱 심화되는 등 시장구조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최근의 시장환경은 건설산업에 대한 고유개념마저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중인 건설산업 구조개편 방안은 건설시장을 정부규제를 통한 인위적 경쟁구조에서 `시장기능을 통한 자율적 경쟁구조'로 전환한다는 데 기본 방향이 설정돼 있다.

현재의 울타리식 건설산업 구조로는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서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건설업계 전체가 공멸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과거의 `보호'와 `육성'이라는 정책 대신 시장기능에 따른 경쟁의 틀을 확립하고, 이를 통해 낙후된 국내관행을 국제규범인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전환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경쟁의 룰이 바뀐다

지역제한, 지역의무 공동도급, 시공능력에 따른 군 편성, 의무하도급 제도 등 과거 건설업체들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제도들이 규제개혁을 통해 하나 둘씩 무너지고 있다.

상반기중 공동도급 운영기?준이 개정돼 종전 중소건설업체 기술력 향상을 위한 보호·육성이라는 목적으로 금지됐던 일반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간 공동도급이 허용됐다.

이로써 일반건설업체가 특정 분야에 노하우가 있는 있는 전문업체와 공사를 공동 수주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브로커의 폐해를 막을 수 있게 됐다.

또한 내년부터는 1,000억원이상 대형 공사에 대해서는 선진외국에서 일반화돼 있는 최저가 입찰제가 도입된다. 특히 공사이행 보증제도를 적극 활용해 최저가 입찰제도의 최대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덤핑입찰을 막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업계관계자는 “공급자(건설업자) 위주의 정책이 수요자(정부,민간) 위주의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며 “각종 진입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능력있고 우수한 업체는 공사를 많이 수주하는 반면 무능한 업체의 퇴출이 보장되는 체계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의 틀이 바뀐다

건설업은 프로젝트별로 기획-타당성조사-설계-시공,감리-유지관리(하자보수)의 라이프사이클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단계별 과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능과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도 실제로는 법률과 소관부처가 제 각각인데다 설계 시공 감리 등 각종 면허제도에 따라 울타리가 처져있었던 게 현실이다.

이는 영역별 진입장벽을 높여줌으로써 기득권자들의 집단화에 따른 폐해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정부가 의도한 `육성'은 없고 `보호'만 남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종전 일반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가 원-하도급자간 하청관계를 철폐하는 대신 동등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업역중심'에서 '기능중심'으로 건설산업의 질서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한국건설경제협의회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는 대형업체라도 법적으로는 건설회사가 아니라 순위만 앞서는 `시공회사'로 전락했다”며 “외국건설업체들이 그렇듯이 우리 업체들도 EC(Engineering & Construction)화를 추진해야 궁극적으로 구조적 불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럴 경우 국내 건설산업은 기획부터 유지관리까지 건설 전과정을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코디네이터(종합건설사)아래 설계, 시공, 감리 등 업종별·부문별로 경쟁력을 갖춘 업체를 두고 또다시 세부 공정별·기술별로 특화된 업체들간의 역할분담을 통해 공존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강황식 내외경제 부동산팀 기자

입력시간 2000/10/1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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