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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스타열전(32)] 전세호 심텍 사장(上)

6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회의를 마친 간부들과 마주쳤다. 이방인에게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는 그들에게서 어떤 사람이라도 일단 들어오면 고객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얼핏 풍겼다.

인터넷 벤처혁명을 주도했던 닷컴(.com)기업과는 시작부터 다른 무엇이 느껴지는, 그래서 눈 안에 실내 인테리어와 가구 배치까지도 들뜨지 않고 짜임새가 있어 보이는 기업이었다.

심텍. 첨단 전자장치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반도체를 장착할 수 있는 인쇄회로기판(PCB) 전문제조업체다. PCB중에서도 메모리(기억기능). 비메모리(연산기능)형 반도체 분야만을 특화시켜 범용 PCB생산업체와는 기술의 깊이부터 다른 제조벤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기업이다.

그래서 심텍을 창업한 전세호 사장은 `반도체용 PCB분야의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그의 말대로라면 “중소기업이라도 한 우물만 파면 어떤 첨단 기술분야에서도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을 심텍이 입증한 것이다.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세계 점유율 1위

심텍의 주력제품은 D-RAM 반도체의 메모리 모듈과 비메모리형 반도체에 사용되는 서브스트레이트(SUBSTRATE)이다.

메모리 모듈은 메모리형 반도체를 장착할 수 있는 PCB이고, 서브스트레이트는 비메모리형 반도체 기판이다. “인체에 비유하면 반도체가 기억하고(메모리) 계산하는(비메모리) 뇌라면 심텍이 생산하는 PCB는 신경계 역할을 한다”는 게 전 사장의 설명이다.

“메모리 모듈의 경우 세계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점유율로 따지면 세계 1위입니다. `연구개발(R&D)은 이익의 씨앗'이라는 소신을 갖고 한 분야에만 집중 투자한 결과지요. 반도체 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원천기술의 확보와 끊임없는 기술개발뿐입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또하나의 생명력은 Precision(정밀함)이다. 메모리 모듈 생산의 30여 공정에서 어느 한쪽에서 삐끗하면 모든 게 끝장이다.

뛰어난 기술을 뒷받침할 자동화 장비와 숙련된 기능인력, 그리고 종사원들 개개인의 주인의식이 아귀가 꼭 맞는 톱니바퀴처럼 물려돌아가야 가능한 작업이다. 전세호 사장이 무엇보다도 현장경영과 750여 전직원의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0년만에 안정궤도 올라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전 사장은 벤처기업인이라고 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대학 졸업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재정학 MBA)를 거친 그는 부친이 설립한 ㈜청방에서 1985년 기획관리실장을 맡으면서 경영을 배웠고 2년 뒤 분가해 나왔다.

`벤처'를 `모험을 거는 기업'이라고 해석한다면 1987년에 그가 세운 충북전자는 벤처가 아니다. 분야는 기술집약산업인 PCB 제조였지만 특화하지는 않았다. 벤처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사업을 반도체용 PCB분야로 바꾼 뒤부터라고 하는 게 옳다.

“어떤 배짱으로 반도체용 PCB분야를 특화했느냐”는 질문에 전 사장은 “그것만이 유일한 살 길이고 국가를 위한 길이었다”고 답변했다.

“원래 PCB는 기술집약적 장치산업입니다. 1992년 여름께로 기억되는데 반도체와 통신분야가 뜨고 있었어요. 어느 쪽이 더 성장 가능성이 높고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지 따져보았지요.

그때 반도체용 PCB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었어요. 이거구나 싶었어요. 개발만 하면 수입대체 효과도 크고 돈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반도체 산업은 흔히 진입장벽이 높다고 한다. 투자에 비해 과실이 늦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들어가서도 안되고, 늦으면 진입자체가 봉쇄되는 좁은 마케팅 시장이 반도체 분야라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맞아떨어졌다”는 게 전 사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원천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반도체용 PCB 기술을 개발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돈이 더욱 큰 문제였다. 1987년부터 시작된 설비투자에다 반도체 기술 개발에 목돈이 들어가면서 회사재정 상태는 자본잠식 상태로 빠졌다. 연속적자를 기록하면서 `누적결손법인'으로 낙인찍혔다. 전 사장의 그때 심정이 어땠을까.

“반도체 산업은 힘든 투자기간을 거쳐야하지요. 최고경영자의 의지와 지구력이 부족하면 사업을 끌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한번 사업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으면 그 다음은 안정적입니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지요.”

심텍도 PCB분야에 뛰어든지 10여년 만에야 비로소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는데 전 사장의 특유의 지구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전 사장은 마음먹기가 어렵지 뭔가를 시작했다 하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다. 건강관리를 위해 매일 8Km씩 속보로 걷기로 했는데 벌써 6년째 눈이오나 비가 오나 계속하고 있는 그다.


열정과 무모함이 바로 벤처 정신

아무리 꾸준히 계속하고 싶어도 기업경영은 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1995년 2월 상호를 충북전자에서 심텍으로 바꾸고 난 뒤였다.

국내 기술수준에서는 생산이 불가능할 것으로 인식돼 전량수입에만 의존해오던 메모리형 반도체의 조립에 사용되는 SIMM(Single In Line Memory Module) PCB를 독자 개발해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생산라인에 투자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찾아다녔죠. 은행 간부들이 잘 만나주지도 않았어요.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절망감에 가슴이 답답했어요.”

그는 어렵게 만난 모은행 간부에게 뜬금없이 “저는 요즈음 아주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애인 이야기를 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뜨악해하는 간부에게 “저는 지금까지 집과 애인 집 두곳만 왔다갔다했습니다”고 운을 뗀 뒤 “제 애인의 성은 `심'이고 이름은 `텍'입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렸더니 은행간부는 “젊은 친구가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면서 도와주었다. 되돌아보면 그 열정과 무모함이 바로 벤처정신이었다.

위기를 넘긴 심텍은 1996년 9월에 국내 최초로 비메모리 반도체 패키지 보드인 BGA(Ball Grid Array) 기판 생산라인을 준공하는 등 성공의 길로 들어섰다.

“스스로 틀렸다고 생각하면 아침에 내린 결정도 저녁에 바꾼다”는 전세호 사장에게 단한번의 선택에 따라 심텍의 장래가 완전히 바뀌는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1997년 여름이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0/10/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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